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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구판절판
어떤 느낌일지도 모르면서 마냥 읽고 싶었던 프랑수아즈 사강을 드디어 첫 작품으로 만나 읽게 되었다. 바로 <한달후 일년후>였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먼저인지 한달후 일년후가 먼저인지도 몰랐던 나로썬 그냥 두 작품이 연관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정도로 프랑수아즈 사강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바로 한달후 일년후의 여주인공 조제에서이름을 따와 조제로 불리기 바랬다 하였다. 프랑스로부터 일본까지 날아와 영화의 제목이 될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 사강.
사실 조제는 바로 사강 본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짧은 작가소개나마 닮은 부분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작가는 주인공이든 아니든 간에 자신의 모습이 어디로든 투영되기 마련인데, 베르나르가 사랑해 마지않는 애끓게 하는 연모의 대상 조제는 바로 사강의 삶 자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녀 또한 조제처럼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고, 외모 또한 출중하면서 자유 분방한 남성 편력을 갖고 있었다.
사실 그렇기에 조제와 사강이 바라보는 조강지처와 같은 남편 하나만 바라보는 여성들에 대한 불우한 시선은 그것이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나같은 사람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적 배경이나 관습이 달라 빚어지는 가치관의 차이일 수도 있다.)에게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의 아내 니콜에게는 전혀 애정이 없는 남자 베르나르. 그는 주변인들에게 지성미 넘치는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 지성으로 아내를 걱정하게 만들고(남편을 사랑하지만 자꾸 자기와 거리감이 느껴지기에), 또 다른 여성들과 무수한 연애편력을 자랑하면서 정작 조제라는 단 하나의 여인에 빠져드는 캐릭터가 되었다. 조제, 그녀는 스물 다섯살의 나이로 엄청난 부를 소유한 부모님 덕분에 경제적인 곤란을 전혀 겪지 않고 큰 곤란과 걱정 없이 그저 마음 가는대로 사람을 만나고 즐기는 삶에 빠져 있었다. 그렇다고 생각이 없는 사람인가 하면 또 그렇지 않다. 다만 사랑에 대해 지나치게 통찰력이 뛰어나다고 해야할까? 보통 여성들처럼 끝을 예상 못하고 마냥 빠져드는 불나방식 사랑을 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먼저 끝을 내고 지겨워할만큼 사랑이라는 족쇄에 쉽게 차이지 않는 그런 여성이었다.
소설의 첫 시작은 베르나르가 조제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집에 전화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전화를 받은 이는 조제의 새 남자친구인 연하의 의대생이었고 그와도 한순간의 사랑을 나누고 헤어지리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자크와의 삶은 긴 동거기간으로 이어졌다. 베르나르는 사실 니콜이라는 자신만 바라보는 아내를 두고 있었다. 밤새 오지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얼굴을 문쪽으로 하고 기대감에 차 잠이 드는 아내. 불행하게도 베르나르는 그런 니콜을 경멸하고 그런 헌신적인 모습에 오히려 넌더리를 낸다.

조제와 베르나르를 만나게 한 모임 주선자 부부는 베르나르를 후원하는 출판사의 알랭과 파니 부부였다. 50대인 부부는 지성과 교양으로 중무장하였으나 알랭은 꽃다운 나이의 연극 배우 베아트리스의 젊음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조카 에두아르와 함께 말이다. 에두아르의 잠깐동안의 연인이 되어준 베아트리스는 실제 남편을 따로 두고 애인이 있음을 당당히 공언하고 남편에게도 이별을 선포할 정도의 나름 자기 가치관을 세운 여성이다. 자신을 출세 가도에 올려줄 남자 졸리오를 만나자 에두아르를 잔인하게 내팽개치고
알랭과 같은 연배인 졸리오에게 푹 빠져들고 말았다.
여자들이 남자 문제에 대해 어떤 형태의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조제는 그 사실때문에 조금씩 신경질이 나고 니콜이 경멸스러워졌다. 91p
그저 남편을 사랑하고 싶었던 아내 니콜은 남편을 질리게 할뿐 아니라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까지 질리게 하고 말았다. 그녀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그렇게 니콜을 경멸하고 있었다. 아내의 입장에 서서 가정을 지키고 싶은 나같은 한국의 보통 여성이라면 아마 이런 부분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비슷한 시기에 읽은 다른 책에서도 비슷한 문맥이 언급되고 있었다. 악당들의 섬이라는 책이었는데 아내와 결혼한 이후부터 아내에게 애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아주 싫어하는 사람으로 아내를 꼽고 말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훨씬 젊고 부유하고 똑똑하기까지 한 새로운 연인을 만나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로 초반부가 시작되는 소설이었다.
'세상에, 성서에나 나오는 여자가 바로 여기 있었네. 남자를 붙잡아두려면 아기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남자를 그런 무시무시한 상황 속으로 몰아넣는 여자 말이야. 난 결코 그런 여자는 되지 않을거야. 만약 그렇게 되면 아기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불행할거야.' 92p
우리나라식 표현으로 하면 아마 조선시대 여성쯤으로 현대여성들이 폄하하는 보수적인 여성관을 말하는 것일게다. 성서에나 나오는 여자라는 표현은 말이다. 그러나 현대여성들의 자유분방한 애정관보다는 다소 진부하다 평할지라도 지켜야할 가정이 있음에 더 충실해야한다 믿는 나로써는 이런 표현들이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베르나르는 니콜이 자신의 것이라는 느낌과 그들 자신에 대한 연민에 사로잡혔다. '사람은 모두 고통의 외침 가운데서 태어나. 거기엔 아무런 이유도 없지. 그 다음에 이어지는건 그 외침이 완화된 형태일 뿐이야.'이런 괴상한 말이 그의 목구멍까지 올라왔고, 그 말은 자신이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여자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있는 그를 힘 빠지게 했다. 그 말은 그가 태어날때 외쳤던 최초 울부짖음의 귀환이었다. 그 나머지 것들은 모두 도피이고 감정의 폭발이고 희극이었다. 135p
너무 하지않나. 자신의 아이를 유산하고 목숨을 잃을뻔한 아내를 방치해두고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져 지냈다 온 남자의 말론 말이다.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한 남자 베르나르는 자신의 사람인 니콜을 끝내 사랑하지 못한다.
아홉 등장인물들의 얼키설키 꼬여있는 사랑 관계는 처음에는 혼란스럽기도 하고, 우리나라 정서와 많이 위배되어 놀랍기도 하였으나 우리보다 훨씬 자유분방한 서구, 그것도 프랑스의 이야기니까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결혼을 하였으되 결혼이라는 제도의 구속보다는 나 자신을 철저히 사랑하고, 내 자신의 즉흥적인 감정에만 솔직한 그들의 이기심에 놀랍기도 했지만, 사실 그들의 관계도보다 눈에 더 들어오는 것은 군데 군데 드러나는 사강의 표현문구들이었다. 그 표현이 마음에 쏙 들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프랑스 소설가이자 문학 비평가가 지나칠 정도로 재능을 타고난 작가라 평한 사강이기에 그녀의 재주는 숨겨질리 없이 책 속 구석구석에 배여 있었나보다. 마치 태연한 인생을 읽고 얼킨 사랑 이야기에는 태연할 수 없었으나 그 표현에는 매료되었던 기억처럼 말이다.
그러고보니 문학 속에서 유난히 참 비슷한 내용들이 많은 것 같다. 데자뷰를 보는 듯이..(사강 작품의 영향을 받은 탓일수도 있고, 문학 속에 등장하는 사랑이 실제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그런 걸수도 있고..)
문학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의 사랑이 이렇다고한다면, 현대인들은 모두 이렇게 비정상적인 관계를 지향하고, 새로운 사랑, 무조건적인 젊음만을 갈망한다라고 이야기한다면 세상은 여성들에게, 같이 나이들어가도 남성들과 달리 '남겨진 존재'가 되어야 하는 여성들에게 유난히 잔인한게 아닐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