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한 인생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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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작가님의 신간 소설이라는 말에 덥썩 집어들게 된 소설이었다. 예전의 인기있는 책들도 내가 다 읽어보았던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이름이 너무나 귀에 익으면서도 정작 작가님 책을 장편소설로 읽어본 적이 없음에 부끄러워졌다. 많은 관심과 기대 속에 읽어내려가기 시작한 책, 태연한 인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던 류의 아버지의 강렬한 첫 만남 이야기로 이 이야기는 시작이 되었다.

류는 누구일까 보다도 그녀의( 처음에는 류가 남자인줄 알았다.) 부모의 이야기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어떤 이야기가 진행이 될지 가늠하기가 좀 힘들기도 하였다. 사랑에 빠진 여자의 환희를 보고, 짝사랑에 빠졌던 한남자, 류의 아버지. 그는 거의 맹목적인 짝사랑으로 류의 어머니의 환심을 사 결혼까지는 성공하였다. 그리고 같이 유학길에 오른 후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에게 고정되지 못하였다.

 

영사기가 돌며 보여주는 것은 흘러가는 시간이었고 그동안 어머니의 왼쪽 가슴 아래에서는 자기 삶에서 고통을 추출하는 원심 분리기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고통의 분량이 많을 때는 영화 상영 1회 분의 시간을 더 설정해야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는 매번 영화가 끝난 뒤 고통이라는 침전물이 담긴 자신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환한 극장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제 몫의 인생 속으로 태연히 되돌아갔던 것이다. 그 침전물이 고통이 아니라 고독이었다는 걸 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제부터는 쓸쓸할 줄 뻔히 알고 살아야한다.(허연, <일요일>중)  거짓인줄 알면서도 틀을 지켜야하고 더이상 동의하지 않게 된 이데올로기에 묵묵히 따라야 하는 것이다. 72p

 

제목을 잊고 책에 몰두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끝없이 제목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무슨 뜻일까.

그 의미가 간간히 들어있는 구절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태연한 인생은 쉽사리 재미있다 판단내리기 힘든 책이었다. 류와 요셉의 사랑이야기, 그러나 이미 십년 전의 일이었고, 이별 직전에 눈물을 흘리긴 하였으나 홀연 떠나버린 류, 그리고 그런 류를 잊지 못하고 끝없이 뒤쫒는 요셉의 이야기가 큰 골자라고는 해도 둘의 사랑 이야기보다는 작가이지만 어엿한 소설을 내지 못하고 있는 요셉의 현재 일상과 류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재미있다. 이해하기 쉽다 라고 평하기는 어려워도 그녀의 소설이 사랑받을 수 있는 까닭은. 아니 내 마음에 든 부분을 들자면, 그녀만의 감각적인 표현이 귓가에, 마음에 남는 구절들이 있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같은 상황을 겪어도 그녀가 아니면 표현해내기 힘들 그런 언어들로 살려낸 표현들. 그런 구절들이 콕콕 와닿았다.

그래서 재미면에서는 부족하게 느껴졌어도 때떄로 와닿는 그런 표현만으로도 마음에 드는 작품이 되었다.

 

이안 : 선생님은 남의 말 인용 안하면 말을 못하시거든. 그것도 몇 가지 안되지만 229p

 

이안 : 반드시 위기의 작가들을 영화로 만들 거예요. 한 여자의 인생을 완전히 파괴했다구요. 그런 위선적이고 타락한 인물에게 복수하는 게 특정 이익인가요? 잘 아시잖아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230p

 

사실 요셉이라는 그 등장인물은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니었다. 작가로서의 인지도도 많이 떨어졌지만 무엇보다도 사생활이 깨끗한 사람이 아니었다. 처복이 있다는 말을 들을정도로 좋은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으나, 떠도는 그의 마음은 한 여자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끝없이 다른 사랑을 갈구하였다. 그 중 그의 기억에 사랑으로 남는 여인이 바로 류였다.

 

이안은 요셉의 제자였으나 그와 다소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제자였다. 이안은 그를 등장시킬 영화를 제작중이었고, 말로는 그를 존중하는 듯 했으나 실제로 그를 출연시키는 비공개영화 촬영장면에서는 독설을 내뱉으며 자신의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었다.

얼마전 본 영화 은교가 생각났다. 처음에는 아끼는 애제자와 존경하는 스승의 관계였으나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자 스승을 잡아먹을듯 공격하고, 스승 또한 제자를 할퀼듯 매섭게 쫒고 말았다. 이안과 요셉을 보니 으르렁거리는 사제지간의 은교가 생각났다.

 

사랑을 갈구하지만 고독한 인생인 그들의 이야기.

류의 부모, 류와 요셉, 이안과 요셉의 처, 이채, 도경 등등.. 그녀와 그의 이야기들.

은희경 작가가 쓴 태연한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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