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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용골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5월
구판절판
일본 미스터리와 중세 기사 시대 영웅담, 그리고 마법사가 등장하는 환타지, 이 세가지는 전혀 안 어울릴 듯 하면서도 부러진 용골 내에서 멋지게 조화를 이루었다. 북미권이나 유럽 등의 소설에 비해 일본 소설 등이 읽기가 편할 때가 많다. 나라별로 담아내는 정서가 달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알듯 모를 듯 애매한 거리의 일본의 이야기가 같은 아시아권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문학적 깊이보다 대중화에 성공해 그런것인지 몰라도 아뭏든 읽기에 편안하다는 것만은 사실인듯 하다. 그렇다고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소설이 재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고.
일본의 무사 하면 사무라이가 떠오르는데, 이 책의 표지에는 철로 된 값옷을 입은 기사의 일부가 보인다. 배경이 일본이 아님을 표지에서부터 드러내주고 있다. 그럼에도 작가의 이름때문이었는지, 처음에 브리튼 섬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기사 등의 이야기가 나왔을때 당황하고 말았다. 허를 찔린 기분이었달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작했지만 이내 빠져들게 만드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매력.
중반까지의 이야기도 재미나지만, 후반부 본격적으로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과정에서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대부분의 재미난 미스터리들이 그렇듯이 독자들이 미처 예상치 못한 작가의 반격이 가해질 수 있기에 나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한다 생각했는데, 내 예상을 살짝 빗겨 나갔다.
브리튼 섬 근방에 큰 솔론과 작은 솔론으로 이루어진 두개의 솔론 섬이 있었다. 시대적 배경은 1190년 무렵. 12세기말 유럽이다. 사자왕 리처드의 시대이자 로빈후드의 전설이 깃든 무렵이라고 하나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가 이 시대를 선택한 까닭은 미스터리계에서 위대한 인물 시루즈베리 수도원의 캐드펠 수도사의 흔적이 남은 시대였기때문이었다라고 작가후기에서 언급하고 있다.
솔론 섬의 영주 로렌트 에일윈은 저주받은 데인인들의 침략에 대비해 솔론을 구하기 위해 용병들을 모집하는 중이었다. 용병들과의 접견이있는 자리에서 성 암브로시우스 병원 형제단의 기사인 팔크와 그의 종사 니콜라가 방문을 해 암살기사단이 솔론 섬의 영주를 노리고 있다는 말을 전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영주는 밤사이 작전실에서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상태로 발견이 되고, 이 사건의 배후에 암살기사의 마술에 의해 조종된 미니온의 소행임이 밝혀진다. 미니온을 밝혀내고, 암살기사를 찾아내기 위해 영주의 딸 아미나가 팔크, 니콜라의 도움으로 작전실에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용병들과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하기 시작한다.
목을 베지 않는 이상, 불사의 몸으로 살아가는 괴력의 소유자 저주받은 데인인 일족, 의심 가는 부분이 많은 다양한 출신의 용병들, 아버지의 대를 이을 아들이면서도 정작 중요한 전쟁터나 사건해결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오빠, 기사이면서도 능수능란한 다양한 마술을 부리는 병원 기사단과 암살기사단의 존재 등. 현실의 이야기와 환타지 세계의 이야기가 마술과 불사의 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적당히 조합이 된 이야기였다.
애초에 실험작으로 씌여졌을때는 완전한 이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였다는데, 중세 유럽으로 무대를 옮겨오면서 이계보다는 더욱 친근한 설정으로 바뀌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국적이 완전히 다른 미스터리로 만들어냈으니 작가의 필력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미스터리에 자주 등장하는 소거법 등이 등장하고 하나하나를 배제해나가는 재미 속에 그럼 도대체 범인이 누구인가를 찾게 되는 호기심을 증폭시키게 된다.
미스터리 마니아들이 주목하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2위를 수상하고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에서 1위,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에서 1위 등을 차지하는 등 일본 내 많은 미스터리 대회가 주목했던 소설 부러진 용골, 국내 미스터리 팬들에게서도 역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색다르고 신선한 접목이었기에 나 또한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몰두할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어쩐지 후속편이 만들어져도 좋을, 여운을 남긴 소설이었기에 다음 편의 등장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