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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아래 봄에 죽기를 ㅣ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표지부터가 무척이나 수수했지만, 무척이나 끌리는 소설이었다. 1999년에 일본추리 작가협회상에서 단편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 작품집은 3년만의 단편 수상작이었고,(많은 추리소설들이 장편으로 돌려지거나, 단편의 경우 마감기한에 쫓겨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다. 이후 단편연작집도 장편에 포함되기 시작했기에, 거의 마지막이나 다름없는 단편 수상작품집이 되었다 한다. 추리소설계에서는 꽤나 의미있는 작품집이 아닐 수 없었다. -해설 참조
하이쿠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얼핏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적이 있었다. 잘 모르는 하이쿠의 분위기였지만 동양적인 그 신비함 등을 분위기로도 충분히 추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첫 단편서부터 마음에 쏙 들기 시작했다.
책의 첫 단편은 나이든 하이쿠 시인의 외로운 죽음에서 시작된다. 하이쿠 동인들만이 그의 장례를 주관할 정도로, 가족도 아무런 연고도 알 수 없었던 가난한 노인 소교의 죽음, 가진 것은 없었어도 희미하게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었던 그였기에 자신도 모르게 그와 하룻밤을 통하게 된 젊은 여자 나나오가 있었다. 그의 죽음 이후에 웬지 모를 의무감에 이끌려 그가 남긴 하이쿠 수첩 등을 통해 그의 족적과 미스터리한 삶을 추적하게 되었다. 절대로 알아낼수 없을 것 같던 그의 삶을 찾아가는데 전적으로 도움을 준건 가나리야라는 맥주바의 주인 구도였다. 소교로서는 도피할 수 밖에 없는 삶이었겠지만,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했음에 가슴아픔도 느끼게 되었다.
첫 단편에서는 주로 나나오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흘러가다보니, 구도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참 뛰어나다 정도로 인식이 되었는데, 그 다음, 또 그 다음 이야기를 읽어가다보니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이미 모든 수를 다 헤아린 눈을 지닌 구도의 눈빛과 설명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러나는 탐정은 아니고, 그저 맛있는 요리를 솜씨있게 내어놓는 주인인 것 같지만, 어느새 맥주 바 안은 수수께끼를 내어놓는 자와 풀이하는 자 등으로 나뉘어 모두가 동참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단...'
손님에게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놀랄 정도의 박식함을 발휘해서 이렇게 기묘한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때의 구도는 조금 악동 같은 얼굴이 되어, '확실한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같은 말을 하면서 자기 전용의 필스너 글라스로 맥주를 홀짝인다. 173p
구도가 입을 여는 순간이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혹은 그 뒷 이야기에, 이런 의도가 숨어있었구나 함을 느끼게도 된다.
자극적인 소재가 난무하는 그런 미스터리는 아니다. 원하건대 꽃 아래 봄에 죽기를 그 추운 음력 이월의 보름에 62p라는 말처럼 아주 잔잔한 느낌으로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 그저 모르고 넘어갈지 모를 그런 이야기들이 맥주 바 주인 구도의 남다른 눈썰미로 인해 (인생의 고민들을 이렇게 잘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집 나간 사람도 되찾아주고, 15년이 되어가는 남동생 살인범(?)의 비밀도 파헤쳐준다.) 가슴 속 갑갑한 응어리들을 모두 스르르 풀어낼 수 있는 느낌이었다.나또한 궁금한 점이나 인생의 고민이 있으면 구도를 찾아가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구도의 이야기만 중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나오, 소교, 그리고 중간 중간 등장하는 인물들이 또다시 다음 단편에도 등장을 하기에 총 6편의 단편이 모두 연계된 느낌이었다. 따로 또 같이. 그렇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어쩐지 애잔함이 자꾸만 남는 미스터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을 알 수 있어 개운하기도 한 그런 소설이었다.술술 정말 재미나게 읽히는 미스터리 단편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