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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제철밥상
이영미 지음, 김권진 사진 / 판미동 / 2012년 2월
어제 친정 어머니께서 간장 담고 건져 낸 메주만으로는 부족하시다며, 콩을 사다가 삶아서 메주를 만드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실 넘 어려운 일 같아서 설명을 해주시고 직접 봐도 잘 모르겠다고 내 머리가 거부하고 있었다. 김치도 그렇듯이 알아도 따라하기 힘든, 그런 과정이 아닌가 해서였다. 이 책의 저자분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된장도 간장도 너무 쉽다고. 직접 담가먹기 시작한지 10년쯤 되었는데, 이 편한 것을 왜 그리 겁을 냈을까 싶었다고 한다. 아, 그러고보니 처음에는 나와 같으셨나보다.
지금은 양가에서 간장, 된장, 김치까지 갖다 먹지만, 언제까지고 우리의 가장 중요한 먹거리를 이렇게 신세지고 지낼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다먹는 간장, 된장은 집된장만큼 건강한 맛도 아니고 뭔가 이상한 맛이 나는 것만 같다. 입맛은 이렇게 적응되어 있는데 만드는 솜씨가 없다면 그보다 괴로운 일은 없을터. 나 또한 언젠가는 반드시 간장, 된장 등의 장담그기에 도전해봐야할것같다.
이 책의 저자분은 요리를 전공하신 분이 아니라 국문과를 나와서 연극 평론가, 대중 예술 평론가로 활동중이신 분이시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생활한 분이 부부가 뜻을 모아, 이천에 내려가 20여년을 텃밭을 가꾸며 제철 식재료의 맛과 건강에 취해 살다보니 다시 돌아온 서울에서도 그때 즐긴 제철 음식들의 맛과 향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요리라기보다는 제철 식재료에 대한 찬사와 정보를 아낌없이 나눠줄 수 있는 에세이, 이 책의 취지가 그러한 듯 하였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과정 등을 지켜보지 못하고 마트의 하우스 채소와 과일에 익숙해서, 사시사철 쏟아져나오는 채소 덕에 제철이 언제인지를 모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건강에 가장 좋은 것은 어떻든지간에 인위적이지 않고 가장 자연적인 것, 자연이 제대로 베풀어준 것을 온전하게 품고 나고 자란 것들을 먹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삶을 아주 사랑하였다.
간혹 제철 재료로 요리해먹는 방법도 나온다. 허나 그 방법이 양념 몇 스푼 식으로 정확한 계량이라기 보다 한국식 돌나물로 샐러드를 만들땐 액젓과 무엇무엇을 넣으면 좋다, 이런 식으로 친정엄마가 두루뭉술 설명하듯 설명을 해주다보니 베테랑 주부가 아닌 내가 맛을 따라잡기는 힘들 것같다. 다만, 어느 재료에는 어떤 양념이 어울릴 수 있다 정도를 배울 수 있을 뿐. 수십년의 노하우를 자랑하는 베테랑 주부들이라면 얻어갈 것이 나보다 훨씬 더 많을 그런 책이 아니었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철 식재료의 중요성 등에 대해서는 나 또한 깊이 배워갈 수 있는 책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마트에서 구입하던 채소와 해산물 등을 장보던 내가, 이제는 몇월에는 뭘 사다먹으면 좋을지 이 책을 보고 장보는 습관을 들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우리 가족만 먹기에도 부족하다는 영양 가득한 첫부추는 그러고보니 맛도 못 봤던 것 같다. 언제나 몇 십센티씩 쑥쑥 자라 끝이 잘린 그런 부추만 먹어봤다. 야채보다는 고기를 좋아하고, 싱싱한 채소를 고를 줄 몰라 진열된 팩 상품을 그냥 사오곤 했던 나였는데 책을 읽고 나니 신선한 생채소로 버무린 샐러드가 먹고 싶어졌고 연할때 따 먹으면 새로운 별미라는 풋고추도 심어보고 싶어졌다
바싹 말린 멸치가 쪄서 말린 건지 몰랐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저자가 보여준 생멸치의 모습은 이것이 꽁치인가 싶을 정도로 싱싱해보이는 모습이었다. 저자는 그런 생멸치를 박스째 사서, 바로 뼈째 회로 비벼먹고 나머지는 멸치젓을 담근다 하였다. 멸치젓까지는 못담그더라도 생멸치로 맛 볼수있는 국 등은 새로운 맛이 될 것 같았다.
제철 음식에 대한 학술적인 이야기로만 채워지지 않고, 본인이 20년을 살고 지낸 시골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야기라 그런지 참 맛깔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해보고 싶구나, 다는 힘들더라도 씨가 금색이 된다는 금적색 노지 딸기도 기다려 보고 싶고, 몸에 안 좋은 합성 화합물들의 복합물인 탄산음료를 자제하고 몸에 좋은 차와 음료로 대신하는 식습관을 들여보고 싶었다.
뭐든 용기있게 자신있게 차리고 도전하는 저자분의 요리 정신이 부러워졌다. 아직은 레시피북에 많이 의존하고 계량에 의존해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렇더라도 재료부터라도 조금씩 바꿔봐야겠다. 이번 달 제철 식재료는 무엇이지? 하고 메모해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