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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식당 - 먹고 마시고 여행할 너를 위해
박정석 지음 / 시공사 / 2012년 2월
품절
나는 먹는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언제부터였을까? 뺑뻉이로 가게 된 고등학교가 너무 먼 곳에 있어서 주위에 그 흔한 분식점 하나 찾을 수 없는 고립된 곳이어서, 더욱 그랬을까? 뭔가 풍족한 곳에 있으면 되려 집착하지 않게 되는데, 마치 기숙사처럼 고립된 그런 곳에 있다보니 먹을 것에 대한 환상과 집착이 더욱 강해진 그런 느낌이었다. 그때부터였나보다. 먹지 않아도 음식 이야기를 하는게 즐겁고, 맛집을 꿈꾸는게 행복하게 되었던 때가 말이다.
이 책은 정말 제목부터 알 수 있듯이 본격적인 먹을거리 이야기이다.
그저 맛집 한 두군데 소개하는 그런 여행가이드북, 혹은 에세이가 아니라, 정말 먹고 마시는 그 모든 먹을 거리를 , 저자의 동남아 여행과 발맞추어 이런 저런 일상에 얽혀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동남아의 풍족한 해산물과 과일등으로 만든 국수, 꼬치, 각종 먹거리들을 모두 사랑하기에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았는데.. 나의 그런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택배가 오자마자 맛이나 볼까? 하고 펼쳐들었던 책을 내리 읽어버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마 살림이나 다른 기타 일들 할 게 없었으면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정신없이 책에 빠져서 동남아 야시장을 허우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엄마~ "하고 아들이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해외여행을 많은 곳을 다녀보진 못했지만 동남아중에서는 방콕,파타야(태국)과 발리(인도네시아), 코타키나발루(말레이시아)에만 다녀왔다. 두번의 여행이 패키지 관광이었고 딱 한번이 자유여행이라곤 해도 리조트에서 내내 방콕하고 지냈던 여행이었던지라, 저자처럼 자유로이 야시장, 골목 등을 거닐며 현지인들이 먹고 즐기는 그 문화를 직접 즐겨보지는 못했다. 관광객들이 먹는 식당에서 먹고 호텔에서만 먹고, 나의 식생활은 여행지에서도 그렇게 한정적이었는데, 정작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찾아본 많은 여행기들에서 수많은 여행가들이 태국의 먹거리, 동남아 그 열대 식당의 후끈한 열기와 값싸고 맛있는 음식들에 대한 예찬들을 늘어놓자, 나도 모르게 다시 허기가 동하는 느낌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나의 허기를 제대로 채워주는 그런 책이었다. 잘 몰랐던 동남아 음식의 재료와 음식 이름 등에 대한 설명을 딱딱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해주면서도 그녀의 여행이야기와 재미나게 섞어서 나 또한 이런 즐거운 여행 경험을 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글들.
치앙마이에서도 네시간이나 떨어진 프래라는 태국의 시골 마을에서 그녀가 만난 소박한 밥집의 여인
잘게 다져놓은 고기 조금과 푸른 채소 한 웅큼, 그리고 양은 솥의 하얀 밥, 피시 소스 등의 몇가지 양념. 이것이 그녀가 가진 전부다. 보잘것없는 재료들을 요령껏 조합하여 수십가지 음식을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요리를 넘어서서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이다. 26.28p
한국에서도 적은 재료로 신의 재주를 부리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태국의 시골 어느 마을에서 영어까지 잘하는 주인을 만나 그녀가 만난 계란 볶음밥은 정말 꿀맛이었을 터였다.
그런가하면 외국 음식에 살짝 겁을 집어먹은 독일인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녀와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 묵은 손님 중 절대로 길거리 음식이나 안전해보이지 않는(?) 음식에 손을 대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날 모두들 게스트 하우스 주인의 집에 현지식 저녁을 초대받아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진심으로 감동하게 되었단다.
"아로이(맛있어요)!. 아로이 막막(아주 맛있어요)!"
독일에서 경험했던 태국 요리와는 많이 다르다고, 훨씬 더 맛이 좋다고 했다.
"당연하지.거기선 고추나 향신료를 충분히 넣지 않을테니까. 자고로 어떤 음식이든 현지에서 현지 재료로 만들어 먹어야지 외국에서 먹는 음식은 진짜가 아닌겁니다." 81p
느긋한 태국의 이야기를 듣다가 베트남으로 넘어가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음식은 웰빙에 가깝게 맛있으면서도 사람들은 팍팍하단다. 어른들은 무섭사리만큼 매섭게 대하고 그래서인지 상처받기도 쉬울 것 같다. 물가는 싸지만 관광객에게는 이중 물가제를 적용해 쌀국수 한그릇도 현지인과 관광객의 값 차이가 월등하게 달라진다니 나같이 소심한 사람은 거리에서 쉽게 맛 볼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저자가 태국음식보다 미묘하고 우아하다는 베트남 요리를 현지에서 먹어보지 못한다면 그것 참 후회되는 인생일 거란 생각도 들었다.
월남쌈,쌀국수 등 우리가 귀에 익은 수많은 음식을 제쳐두고 저자의 지인이 추천한 베트남 최고의 요리는 반미, 길거리에서만 먹을 수 있는 바게트 샌드위치였다고 한다. 정체불명의 햄이나 고기 조각에 고수, 쪽파 거기에 피시소스(멸치액젓)까지 들어가는 반미. 저자의 친구는 미식여행을 마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최고의 맛으로 반미를 꼽았다. 저자는 우리네 부대찌개의 슬픈 역사와 함께 혼혈 샌드위치인 반미를 비교해 설명해주었다. 놀랍게도 베트남에서는 제사상에 바게트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유명한 볶음밥 나시고렝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한가지 희한한 점은 나시고렝의 경우 제대로 된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길거리 리마카키(이동식 노점)에서 먹는 것이 언제나 확실히 더 맛나다는 사실이다. 비위생이 품고 있는 특별한 조미료라도 있는 것일까? 196p 그러면서 저자가 알고 있는 채식 나시고렝 레시피도 간단히 소개해주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재대로 못 먹고, 말레이시아에서 즐기고 왔던 그 맛을 잊지 못해 코스트코에서 가끔 사먹고는 했던 나를 위해 집에서도 레시피대로 한번 만들어봐야겠단 생각이 불쑥 들었다.
외국에 나가 한식만 고집하기보다 두루두루 현지식을 다양하게 접하고 이왕이면 더 맛있는 집을 좋아하고,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곳이면 더욱 좋겠다 생각하는 한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저자의 글은 반갑기 그지없다. 꼭 저자처럼 자신있게 길거리 모든 맛집을 섭렵하지는 못하더라도, 용기를 내어볼수는 있을 것 같다. 어린 아이가 걸음마하듯 조심스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감쪽같이 둔갑해버리는 비싼 음식들이 현지의 재료로 제대로 맛낸 음식이 훨씬더 맛있으면서도 저렴하게 먹을수있음을 즐겁게 경험하면서 말이다.
열대식당은 그런 여행을 하고픈 나의 바램을 더욱 부채질해주는 그런 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