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와 나 - 2012년 제3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영하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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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 한참 전에 읽었는데, 막상 정리를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지금 내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상 문학상 작품집은 1회 수상작품이 바로 이문열님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이후로 양귀자, 은희경, 신경숙, 권지예,김훈, 전경린, 공지영 등 우리 귀에도 많이 익숙한 우수한 작가들을 많이 배출한 문학상이다. 올해의 대상 수상작은 김영하님의 옥수수와 나였다. 요즘 내 독서가 두루두루 읽는다 생각했음에도 많이 편독에 치우쳤는지 김영하님의 작품을 이번 수상작으로 처음 만나는 것이어서 사실 조금 죄송스러운 기분도 들었다. 그 외에도  귀에 익숙한 작가님들로는 하성란님과 최제훈님 등이 있었다.

 

김영하님의 옥수수와 나는 가장 잘 알고 있는 본인의 직업인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독자들은 미처 몰랐을 그런 소설 한 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재미나게 비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문학이 순수한 창작을 위해 쓰이면 좋으련만, 막상 현실이 그렇지 못함을 이야기한달까. 얼른 작품 하나를 뚝딱 써내라고 독촉하는 전처, 자신의 작품에 순수한 광팬이라는 출판사 사장, 둘의 사이가 불륜이 아닐까 의심하다가 그냥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잘 안 팔리는 책 한권 써주고 말겠다며 출판사 사장이 제공한 뉴욕의 한 아파트로 떠난 주인공 소설가. 그는 뜻밖에도 그곳에서 사장의 아내를 만나 격정적인 관계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러면서 신기하게도 안쓰이던 소설이 줄줄 써지기 시작했고,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의 빠른 속도의 집중력과 집필이 마치 영화 리미트리스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자신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의 힘을 받은 그런 느낌으로 말이다. 주인공 뿐 아니라 나까지 감쪽같이 사장에게 속아넘어갔었는데, 한걸음에 달려와 작가와 자신의 아내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사장의 말을 들으며 나까지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었다. 문학에서 갑자기 현실로 팽개쳐진 그런 느낌으로 말이다.

 

"나하고 둘은 문학적 견해가 다른가 보군. 모든 광기가 예술혼은 아니지. 통성기도하고 방언한다고 다 성인은 아니듯이 말이야. 쓰레기라도 잘 읽힐 수는 있는거야. 그리고 작가가 무슨 생활의 달인이야? 타이핑 속도가 뭐가 중요해? 좋아 책은 내겠어. 작가 박만수의 마지막작품.미완성 유고 소설이라고 선전하면 계약금은 회수할 수 있겠지. 뭐 운이 좋다면 꽤 많이 팔릴 수도 있겠어." 61.62p

 

소설은 무척 재미가 났다. 옥수수와 내가 어떤 관련이 있을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이 작품이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뜬금없는 정신병원의 이야기로 시작하나 싶었는데 이내 빠져들었던 이야기를 통해 다시 갑자기 현실로 홱! 돌아와버린 느낌, 그러나 작품 구석구석 박혀있는 옥수수 알갱이같은 잔재미들이 무척이나 유쾌하게 느껴지는 감칠맛 나는 작품이기도 했다.

 

사실 여러 작품들이 있었지만 가장 시기적절하게 와닿은 작품이 김숨의 국수였다.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반가워하며 받았는데 갑작스레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너무 놀라 아이를 맡기고, 한걸음에 달려갔는데 그때 버스 안에서 읽었던 작품이 김숨의 국수였다. 처음에는 그냥 국수를 만드는 과정을 어쩜 이렇게 상세히 묘사를 했을까? 하지만 이게 무슨 내용일까 싶은 궁금증으로 시작하는 작품이었다. 그렇게 혼자서 밀가루 반죽을 하고, 국수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상념에 젖으며 그녀와 그녀의 새엄마에 대한 국수에 얽힌 사연이 흘러나온다. 자식을 낳지 못해 자신의 계모로 들어왔던 새엄마, 사춘기 소녀의 마음으로 흔한 고명 하나 없이 멀건한 국수 한대접 말아왔을때 소녀의 마음은 차갑게 닫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자식을 낳지 않았어도 키우는 마음만큼은 그저 한결같았을, 그 엄마의 마음이 국수에 오롯이 담겨있었다. 이제는 병색이 너무 짙어져 국수 하나 제대로 먹을수 없는 엄마가 되었기에 그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마음이 국수를 만드는 과정에 슬프게 담겨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 잘 해드리지 못했던 부모님에 대한 죄송한 마음을, 친구를 생각하며 다시 되새기려는 그 순간에 마침 이 작품을 읽어서 앞으로도 잊혀지지 않을 그런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김경욱의 스프레이도 읽고 나니 그 강렬함이 쉬 사라지지 않을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실수로 잘못 가져왔던 스프레이가 들어있었던 택배, 이후로는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택배를 몰래 가져와 뜯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너무 시끄러운 옆집의 고양이로 인한 이웃 여자에 대한 불만. 그렇게 시작된 작은 장난이 걷잡을 수 없이 치닫는 불안한 국면이 아주 잠깐 발을 잘못 내딛어도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사실 쓰려다보니 작품 하나하나가 다 깊은 인상을 주었기에 어느 하나만을 쓰기도 빼놓기도 곤란한 그런 느낌이라 정리가 되지 않고 복잡한 기분이 들었던게 아닌가 싶다. 미루의 초상을 그린 최제훈님의 이야기나 조현님의 그순간 너와 나는은 초현실주의적인 이야기를 다루었기에 좀더 신비한 느낌이 들면서도 사실 살짝 소름이 돋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를 써내었다. 현실적인 이야기보다 오히려 약간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더 좋아하기에 재미면에서는 두 분의 작품을 빼놓을 수 없었다.

 

두툼한 문학 수상작품집을 수상 소감, 선정경위와 심사평까지 모두 꼼꼼히 읽어보았다. 예전의 나 같았으면 그냥 작품만 읽고 말았을텐데, 심사평을 읽으며 얻어지는 작품에 대한 이해가 작품을 두번 세번 읽는 것 이상으로 훌륭한 도움이 되는 것을 알았기에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가 없었다.

 

문학 뿐 아니라 미술 작품 역시 배경지식이 있으면 더 재미나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독자의 입장에서 나만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중요함을 인식한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내게 충분히 재미난 작품집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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