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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 전아리 장편소설
전아리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2월
평점 :

앤하면, 좀더 어릴적에는 빨강머리 앤이 생각났고, 지금은 애인의 준말인 앤이 생각이 난다. 한국 이름답지 않은 앤이라는 이름.
책 속 주인공들을 엮게 만드는 과거의 한 친구의 이름이었다.
본명은 달랐지만 몇몇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앤이라 불렸던 한 소녀, 그녀는 바닷가 마을에서 보기 드문 빼어난 미모로 많은 남학생들의 환심을 사고 있는 퀸카였다. 그런 그녀에게 기완이 구애를 했다 너무나 잔인한 모욕을 당하며 거절당하자, 기완의 친구들이었던 재문, 해영(나), 진철, 유성 등은 앤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기로 결심하였다. 바로 그녀의 추종자인 쌍라이트 자매 중 한명을 그녀의 옛 애인과 만나게 하여 그녀를 괴롭게 만들려는 장난이었다. 장난에서 시작된 모략은 우발적인 살인사건(앤의 죽음)으로 이어져버렸다. 그리고 그 책임을 기완이 몽땅 떠안으면서, 과거의 사건은 깨끗하게 종결된 것처럼 보였다.
내가 널 지켜줄게.그러니까.
"그만 울어."
39p
똑똑한 게임 프로그래머인 해영, 상당한 재력을 뒷받침으로 사업가로 성공한 재문, 유명한 탤런트가 된 주홍, 강력계 형사가 된 진철, 그리고 계속 구치소를 들락거리게 된 전과자 기완, 빼어난 외모에도 오토바이 배달 업무만 하고 있는 유성 등
그들은 앤의 죽음에 있어서 공모자 아닌 공모자가 되어버렸고, 그들 중 누군가는 살인자였고, 다른 이들은 목격자가 되어버렸다. 누가 살인을 했는지 기억할 새도 없이 그렇게 빨리 진행되어버린 일이었지만 말이다. 어찌 됐건 기완이 책임을 졌으나 그는 이후 자신의 빨간 줄 신세를 친구들에게 철저히 의지하려 들었다.
"서운하게 생각하지들 마라. 내가 돈만 바라고 이러겠냐. 난 니들이 우리가 하나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이러는 거야. 한 명이라도 손을 떼면 그대로 가라앉아버리는 배란 것. 그 뭐냐...그래. 운명 공동체."50p
친구들과의 행복했던 과거는 이제 서로가 얽혀버리면 불편한 그런 현실이 되어버렸다. 돈을 잘 버는 친구들도 있었고, 인기를 끌고 있는 친구도 있었고, 경찰로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도 있었다. 기완은 처음 친구들의 재정적 도움을 받고 나서는 아예 거액의 돈을 스스럼없이 요구하고, 사람을 죽이고 시체를 파묻는 일에 친구들을 악용하기도 하였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게 누군가를 죽인 일에 대한 속죄가 될 순 없어."
"우린 앤을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나쁜 놈들이 못되었던 거야." 158p
첫 시작은 살해를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지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다들 너무나 대범해지고,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지키려 하는 것에 대한 집착 또한 무서울 정도에 이르렀다. 나중에는 앤을 죽인 사람이 누구냐는 것은 더이상 중요한 사실이 아닌것처럼 느껴졌다. 다만 양파 껍질 벗기듯 벗겨지는 이야기들이 참 낯설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전아리님의 책을 많이는 아니었지만 몇권 읽어보고 그 빠른 흡입력을 갖춘 글 솜씨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이번 <앤> 역시 짧지만, 재미나게 읽히는 그런 책이었다. 워낙 자극이 강한 스릴러를 많이 읽다보니 스릴러의 느낌이 강렬하진 않았지만, 스릴러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그냥 있는 그대로 편하게 받아들여질 그런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