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 -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쏘다 우리시대의 논리 12
서형 지음 / 후마니타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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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극장 흥행작으로 저예산 영화인 <부러진 화살>이 엄청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접했다. 국민 배우 안성기 주연이라는데 눈길이 갔고, 어떤 내용이길래 흥행몰이를 하는지 궁금했다. 검색해보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리고 무엇보다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쏘았던 김명호 교수를 이야기한 영화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판사를 향해 석궁을 쏜 교수가 있다는 뉴스를 접했던 것 같다. 자세히도 아니고, 제목으로 말이다. 시사와 뉴스에 문외한이었던지라 더이상 깊이있게 알아보지 못하고 넘어갔던 사건이었는데 소설 도가니가 영화 도가니로 개봉되면서 실화 사건이 다시 부각되었듯, 이 책도 김명호 교수와 석궁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정확히 짚어주는 계기를 마련해준 책이 아닌가 싶다.

 

책 <부러진 화살>은 소설이 아니다. 저자 서형님이 우리나라 3대 권력기관(청와대,국회, 대법원) 앞의 일인 시위자들을 인터뷰한 기록들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김명호교수에 대해 알게 되었고, 석궁사건과 그 자세한 재판 진행과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객관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노력한 책이다. 저자가 만난 김명호 교수는 주변 사람들을 편하지 않게 만드는 불편한 성격을 갖고 있다 하였다. 옳다 생각한 것에 대해서는 굽히지 않는 소신과 강직함을 지녔지만 주위와 타협하고 부드러운 언행을 구사하는 것은 결핍되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를 나오고,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후 성균관대 수학과 조교수로 부임받아, 부교수 발령을 코앞에 둔 그가 갑자기 왜 사법부를 상대로 투쟁하는 전사가 되어버린 것일까?

1995년 성균관대 본고사 입시에서 수학 문제의 오류를 발견한 김교수가 문제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수학과 교수들의 눈밖에 나서,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하게까지 되었다. 이를 부당하다 여긴 김교수가 대한수학회의 검증을 받고, 법원의 공정한 판결을 받고자 소송을 냈으나 대한수학회는 답변을 거부하였고, 법원에서는 "승진 임용은 학교 자유 재량 행위"라는 이유 하나로 기각했다.

 

크게 실망한 김교수가 해외에 나가 새로운 인생을 살려고 했으나, 이마저도 수월하지않았다. 그의 사건이 과학 저널 사이언스지와 수학저널에 실려 "정직한 답변에 대한 비싼 대가" 등의 제목으로 소개되니, 외국의 김교수 상급자들은 그를 약자로 인식해 그의 연구 실적을 마구 가로채기에 이르렀다. 10여년을 고생만하다 돌아온 그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싶었기에 이 문제를 다시 제기했으나 일은 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자꾸 꼬여갔다. 그러다 석궁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판사를 향해 석궁을 쏘았다는 사건의 진실, 부러진 화살은 어디에 있을까 하는 그 진실 말이다.

 

소설이 아닌 실화라 믿기에 그의 인생과 도전은 정말 계란으로 바위 치기식으로 너무나 무모해보였다.

정정당당하게 법으로만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재판 과정은 읽는 이까지 안타깝게 만들었다.

 

며칠 후 대법원 판결문 2008도2621이 도착했다. 4쪽에는 부러진 화살이 언급됐다. 박훈 변호사는 피고인에게 불리할 결정적인 증거물을 수사기관이 일부러 폐기 또는 은닉할 이유가 없으므로 라고 읽다가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피고인에 불리한 부러진 화살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게 왜 피고인에게 불리하냐? 유리하지!" 161.162p

 그저 씁쓸하기만 했다.

교수노동조합 소속으로 김교수 석방을 촉구하며 여덟번째로 일인시위를 한 최갑수 교수의 말에 이런 말이 있다.

내가 김명호 교수라면 다른 방식으로 싸웠을 것 같아요. ..김명호 교수는 한국 현실에 대해 약삭빠르지 못한 사람이거든요. 차라리 그랬으면 자기 살 길 찾았을지 몰라요. ..우리는 김명호 교수를 통해 현대사의 기막한 한 부분을 보고 있는 거예요.193p

 

현실과 철저하게 타협하며 살아왔던 내가 그저 부끄럽게만 느껴진 김교수의 투쟁이었다. 본고사 입시 문제 오류 지적에서 시작된 사건은 17년이 지나는 동안 그의 인생을 꼬이게 만들었고 결국 구속되게까지 만들었다. 최근 뉴스글에 보니 대한 수학회에서 이제야 당시의 입시문제 오류를 인정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너무나 늦은 발표와 인정이 아닐 수 없었다.

 

영화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이 있고 나서 (2009년판이 이번에 새로 개정되어 나온 것이다.)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법정실화극이라고는 해도 영화이기에 주인공의 이름도 살짝 바뀌었고, 내용도 완전히 같을 순 없다고 하였다. 사실에 더 가까운 기록은 그러니 책이 될 것이다. 실화의 기록이라기에는 너무나 처절했던 한 사람의 약하지만 강한 투쟁이야기. 부러진 화살에 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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