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한국의 야생마 - 환경이야기 ㅣ 노란돼지 창작그림책 14
이재민 글, 원유성 그림 / 노란돼지 / 2012년 2월
"엄마, 말 책 읽어줘요."
아이가 요즘 들어 이 책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41개월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책들이 대부분 자동차 관련 책들인 점을 감안하면 안 보이는데 일부러까지 찾아가면서 읽고자 하는 것은 꽤나 아이의 호기심과 흥미를 잘 이끌어낸 대박북이라 할 수 있다. 그림도 세밀화처럼 사실적으로 그려져있고,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좀 어렵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재미나게 이해하는 눈치였다.
한국에 야생마라니.
이 책을 읽기전까지 나도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적인 이야기라는 말에 우리나라에 야생마가 있기는 있었구나 (어디? 제주도인가? ) 했는데 강원도 홍천이라는 말이 더욱 새롭게 느껴졌다. 야생마 하면, 미국 벌판을 가로지르고 인디언들이나 카우보이들의 추격을 받는 미국판 야생마가 더 먼저 떠오르는 세대였는데..한국의 야생마란 어떤 이야길까? 아이 책이면서도 엄마까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책이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한필의 말 그림.
엄마, 아빠 말이 고된 노역을 하는 동안 망아지는 집에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구슬피 울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딱 하루 말 가족에게 휴식이 주어지고, 재롱을 떨며 행복한 하루를 보낸 말 가족이었는데 다음 날 아빠와 엄마, 망아지가 떨어져 각각 다른 농장으로 팔려가게 됨을 알게 되었다.
"말은 팔고, 트럭을 사던지 해야지 원."
그러고보니 우리나라도 소가 아닌 말의 힘으로 일을 하던 그런 때가 있었구나 싶었다. 말 하면 타고 다니는 말만 생각했지 이렇게 농장일을 하는 말이 제주도가 아닌 전국에 있다는 생각(트럭이 있기전)을 왜 미처 못하고 살았을까.
아이는 그나저나 책에 몰두하다 말고 "원"이 무슨 뜻이냔다. 그저 의미없는 감탄사처럼 포함된 원에 대해 설명하기가 아직은 무척 힘들었으나 아이는 참으로 궁금해했다.그리고 웬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이 페이지까지를 유난히 반복해서 다시 읽어달라고 조르곤 하였다. 처음부터 여기까지가 가장 재미나게 느껴진걸까? 몇번 다시 읽어주다가 나중에 끝까지 같이 읽고 다시 보자 이렇게 달래야했다.
고된 일과 아프게 내리꽂히는 채찍보다도 가족과 떨어져 볼 수 없다는 슬픔에 눈물을 흘려야했던 아빠 말.
그 눈물이 사람의 것인양 너무나 아프게 느껴졌다. 어느 날 아빠말은 농장을 탈출해 엄마말과 망아지를 찾아 떠났다. 힘들었지만 세 가족은 다시 만나 행복하였고, 가족이 같이 살기 위해서는 탈출하는 길 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 가족은 강원도의 야생마 원조가 되었다. (맨 뒤의 실화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말 가족의 탈출이 아닌 화천 군부대에서 진지 구축용 자재를 나르던 군마들이 야생마의 원조가 되었다 소개되어 있었다.)
다른 농장에서 더 도망쳐온 말들까지 야생마의 수는 늘어났고 산에서의 삶은 행복했으나 사람들이 말들을 발견하고, 잡아다 팔아버렸기때문에 말들은 더욱 깊은 산속으로 도망을 쳐야만했다. 겨울이면 먹을것도 부족했고 추워서 견디기도 힘들었다. 그런 어느날, 덫이 아닐까 싶은 맛있는 사료와 먹거리가 한가득 눈길에 쌓여있는 것을 보고 망설였으나 사진작가가 야생마를 몰래 찍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말들은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곧 사진사를 믿고 먹을것을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신문 등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야생마의 사연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마을 사람들도 나중에는 말을 잡아 팔지 않고 야생마의 생존권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훈훈한 이야기였다.
세밀한 말 그림이 그려진 동화가 끝나고 나면, 예전에 미처 몰랐던 실제 강원도 홍천의 야생마 사진들이 (동화 속 등장인물이 된 사진작가님의 솜씨로 찍힌) 실려 있었다. 이런 말들이 우리나라 강원도 산에 살고 있었구나. 동화 속 이야기처럼 훈훈한 결말이었으면 너무나 좋았을 것을..지금 강원도 산에서는 야생마를 더이상 볼수 없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아이에게는 그 부분을 읽어주지 못했다. 그저 행복한 결말로, 강원도 산에 가면 뛰놀고 있을 야생마 가족의 행복한 삶을 상상할 수 있도록, 사람들도 아름다운 마음씨를 끝내 간직했음을 그렇게 기억하도록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좀더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직접 읽을 줄 아는 아이들은 작가의 말까지 읽고 슬퍼했겠지만 말이다. 나또한 무척이나 짠한 느낌이었다.
어려서부터 엄마인 나도 말을 너무나 좋아해서 항상 말 그림만 그리고, 그런 시절이 무척이나 오래 갔다. 그때 왜 그렇게 말을 좋아했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말을 길러보고 싶었고, 그저 말과 우정을 쌓아가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았다. 아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동물이 말은 아니었는데 (주로 동물원에 가면 만날 코끼리, 얼룩말, 기린 등의 삼총사를 무척 좋아한다.) 경주 신라 밀레니엄 파크의 마상공연을 보고 온 이후에는 실제 말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없어지고, 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게다가 이 책은 캐릭터처럼 그려진 그림동화가 아니고, 세밀화로 사진에 가깝게 그려진 그림이었는데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데는 더 없이 좋은 그런 책이 아니었나 싶다.
앞부분만 열심히 읽어달라던 아이가 끝까지 참고 몇번 더 읽어주었더니 나중에는 끝 장면을 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다.
망아지가 다 자라서, 아빠말처럼 훌륭히 컸을때 아빠 엄마를 부르며 달려오는 그 마지막 장면, 아이가 좋아하는 장면이 되었다.
히힝히힝..하면서 망아지가 마구간에서 울고 있는 장면을 보면, 아빠, 엄마를 부르며 달려가는 장면은 언제 나오냐고 다시 그 장면을 찾게 되었으니 말이다.
야생마들의 사진을 보며 내가 미안한 마음이 다 들었다. 그들 행복한 말 가족들을 그저 내 주머니 돈으로밖에 보지 않았던 이기적인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나 미안하게 느껴졌다. 야생마로 자유를 누리며 살지는 못하더라도 가족과는 헤어지지 않고 끝까지 살았기를, 그러기가 힘듦을 동화를 읽으며 알았으면서도 무모하게 바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