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 세계사 - 역사의 운명은 우연과 타이밍이 만든다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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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읽을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마치 반쪽짜리 역사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것과 같은 충격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 책은 역사는 딴지일보에서 전문가적 지식으로 무방한 군사 분야 논객으로활약했고, 2006년 엽기 조선왕조 실록으로 역사 대중읽기의 새모델을 제시했던 이성주님의 글이다. 예전 책들을 읽어보지는 못했으나 이 책 한권만으로도 작가분의 입담을 인정할 만 하였다.

 

역사 속 우연으로 벌어진 아이러니한 일들을 더욱 와닿은 느낌, 재미나게 만든 것은 과거의 일이지만, 현대의 시점에서 풀어낸 용어와 표현들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지금 이 상황에서라면 이런 대화가 이어졌을 법하다라는 것을 재치넘치는 발상으로 어색하지 않게 이루어내었다. 그러다보니 읽는 사람도 너무나 쉽게 공감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아, 이런 뜻이었던거야? 충격적인걸. 하고 말이다.

 

제목만으로도 어느 정도 재미는 있겠거니 흥미로운 주제겠다 정도는 짐작하지만, 실제 책을 잡고 나니 여느 소설보다도 빠른 흡인력으로 끝까지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아니 여느 소설보다도 훨씬 재미있었다. 소설은 어느 정도의 사건에 빠져들기까지의 과정이 필요하지만, 하나하나의 단막극을 보는 양 사건들을 짧고 굵게 다뤄낸 이야기들은 그 하나만으로도 눈이 휘둥그레질, 혹은 아, 이런 거였구나 싶은 그런 사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절정으로 치달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처음부터가 절정인 느낌이랄까.

하마터면 미국내에 프랑스령이 반토막 들어있을뻔했던 사실에 재치있는 편지 한통으로 온전한 미국이 될 수 있었던 이야기도 있었고, 반쯤은 알고 있었으나 남은 반쪽을 몰라 완성되지 못한 이야기 등, 다양한 역사 속 아이러니를 만나게 되는 책이었다.

 티브이 방송에 모자이크처리된 방송화면을 보다보면 참으로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이 올 누드여서 음란논란에 휩싸이다가 그의 제자에 의해 자체 모자이크인 속옷을 입게 되었다는 사실부터가 재미난 시작이었다.

 

아이엄마다보니 아이 양육에 관련된 문제들이 더욱 눈에 쏙쏙 들어왔다. 마치 임산부 눈에는 지나가는 임산부들만 보이고, 구두를 사고 싶은 사람 눈에는 지나가는 사람 구두만 눈에 밟히듯. 유모의 유래에 대한 배경도 재미났다. 젖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귀족의 품위를 위해 시작된, 아니 사실은 수유시 섹스 금지를 주창한 고대 로마의사 갈레노스의 주장이 가톨릭 교단에까지 이어져 젊은 아빠들을 간통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의 젖, 즉 유모를 구함이 어떠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상류층은 비싼 돈을 물어 유모를 구했고, 중산층은 식민지 여성, 해외 유모들에게 자식을 맡기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고아들을 위한 수유가 문제가 되어 동물의 젖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 당나귀와 염소젖이 모유 대체제로 선택되었다 하였다.

 

대문호 톨스토이의 문란한 사생활 이야기도 내게는 충격이었다. 그의 아내 소피아가 3대 악처로 소문난 여성임도 처음 알았다. 그러나 소피아가 과연 악처였을까? 톨스토이의 심각한 바람때문이었을까? 생각했던 의문을 마저 책을 읽으며 금새 해결되었다.

20대를 거의 술과 여자로 흘려보낸 그가 결혼에 눈길을 돌리며, 첫눈에 반했던 여성이 바로 친구의 딸이었다. 친구는 펄쩍 뛰었으나 톨스토이의 절실한 구애로 결혼에 성공하여 18세의 소피아와 34세의 톨스토이가 결혼을 하였는데 모든 걸 보여주겠다며 톨스토이가 일기를 교환해보자 하였건만, 그의 일기 속에는 거의 야설과도 같은 그의 방탕한 연애사가 적나라하게 담겨, 소피아를 질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톨스토이이의 여성 편력은 어려서 일찍 잃은 엄마로 인한 모성애 결핍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그의 모성 집착은 과도한 것이어서, 아내를 목석과 같다 표현하면서도 피임을 못하게 한 결과 열 세명의 아이들을 계속하여 낳게 되었다 한다. 유모를 절대 들이지 않겠다는 톨스토이의 고집으로 인해, 배가 꺼지는 날이 없던 소피아는 젖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애들 걱정은 안해? 빨리 크려면 젖을 많이 먹여야하는데, 겨우 두개 가지고 저 많은 입을 어떻게 감당할거야?"

톨스토이의 고집때문인지, 아니면 원체 허약하게 태어나서인지는 모르나 태어난 열세 명의 자식들 중 여섯은 어려서 죽게 된다. 72p

거기에 악필로 소문난 톨스토이의 원고를 사람이 볼 수있는 글로 교정하는 것도 소피아의 몫이었다. 육아에 교정작업까지 떠맡고도 참았던 소피아가 악처가 된 까닭은 따로 있었다. 소피아의 인생을 읽다보니 그녀가 악처 소리를 듣는게 참으로 억울할 일이었다.

 

잔다르크의 원래 죄목 중 마녀 부분은 영국군에 의해 제기된 것이었고 진짜 죄목이었던 "반바지, 남성복 착용"이라는 것은 정말 헛웃음밖에 안 날 일이었다. 전쟁터에 나가 싸우기 위해서 치마를 입을 수 없었던 잔다르크, 그녀가 반바지를 입었다는 것이 주요 죄목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비슷한 이야기를 어려서 이런 비슷한 책에서 보기는 하였으되 거기에는 잔다르크가 마치 남성이 되고 싶어했다는 식으로 매도되어 있었다. 이 책에서는 그녀가 싸우기 위해 반바지를 입기도 했지만 감옥에서까지 반바지를 고집했던 것은 교도관에 의해 강간을 당할까 염려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녀에게는 치마보다 안전한 반바지였건만 중세 사회의 눈으로는 그녀를 마녀로 몰아가는 황당한 이유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또한 퀴리부인을 노벨상 공동 수상자로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피에르 퀴리의 노력 등이 소개되면서 충격적이었던 마리 퀴리의 불륜 이야기까지 접할 수 있었다. 작가 말 마따나 우리는 반쪽짜리 위인전을 읽고 있었던 것이었다.

강압적인 인구 증가 정책을 펼쳤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의 아이들 이야기도 읽는 내내 충격적이었다. 국민이원해서가 아닌, 국가 인구 증가 정책을 위해 육아 대책은 마련되지 않은채 무조건 출산만 강조, 장려했으니 그의 비참한 말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많이 들어 책에 몰두하기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흥미로운 이야기에 정신이 쏙 팔려 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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