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만든 여자 1
신봉승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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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흘러나오는 총명일까

출가 전에 이미 사서오경에 통달하였고, 공맹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일에는 다가서지도 않는 기품이라는 소문도 자자했다. 과장에 나간다면 장원급제는 떼어놓은 당상이라는 풍문까지 장안에 자자하였으나 여성으로 태어났으니 과장에 나갈 수는 없다. 7p

 

"아뢰옵기 송구하옵니다만, 지금 과장에 나가신다 해도 능히 등과하실수 있을 것이옵고, 한학은 물론 범어에도 능통하시어 웬만한 불서를 원전으로 보시옵니다."

"효성과 부도는 나무랄데가 없사옵니다만, 성품이 지나치게 곧아서 눈에 들지 않는 일은 그 자리에서 호통치시옵고....하인 종속에게 잘못이 있으면 몸소 회초리를 드시기도 하옵니다." 10p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총명한 여인으로 평가받았던 장차 인수대비가 될 여인 한씨부인. 수양대군의 맏며느리인 그녀의 학식이 여느 여인보다 월등하게 높았음을 시작에서부터 시사해주었다. 그러나 제목과 달리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은 수양대군과 한명회에게 보다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다만 수양대군의 예사롭지 않은 며느리 한씨부인의 기상과 배포가 틈틈이 엿보이는 그런 예가 많이 거론되었을 뿐이었다.

 

어린 조카인 단종을 내치고, 새로이 왕이 된 수양대군의 이야기. 사실 단종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겹쳐 있어서 그런지 수양대군의 입장에서 그의 곤란했던 상황들을 검토하게 하는 1권의 이야기가 편안하지만은 않고, 약간은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권력에 욕심을 내고 접근한 것이 아니라 한명회를 비롯한 주변인들로 인해 처음에는 어린 왕을 보필하는 충신으로 살고자했던 수양이 어쩔 수 없이 왕에 올라야했음을 보여주는 글이라 새로운 해석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내쳐지지 않기 위해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숙적이 될만한 김종서, 황보인, 안평대군 등을 제거해야했고, 그 이후에는 단종을 보필하고자 했으나 피가 피를 부름이었는지 왕위에 오르도록 압력을 가하는 주위 중신들에 의해 어쩔수 없는 선택(?)으로 몰리게 된다. 여기에 수양대군의 부인과 며느리 두 부인의 대조적인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어진 성품의 윤씨부인은 어린 조카를 왕위에서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다는 것이 부당함을 알고 있었으나 며느리 한씨부인은 장차 자신이 세자빈에 오르게 됨에 기대감과 설렘을 갖고 있었다. 띠지 등의 설명에 따르면 여인의 인품 또한 중전의 자질을 갖추고 있음직 하다하였으나 그녀의 야심이 아쉽게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야망과 야심이 없었다면 그녀가 그 자리에 오르지 못했으려나.

 

쓸쓸하고도 비극적인 운명으로 치달아가는 어린 단종이 너무나 애닯게 느껴져 힘겹게 읽어낸 1권이었으나 2권은 좀더 빠른 템포로 (재미면에서도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읽히기도 하였다. 단종의 이야기가 지나갔음이리라. 지나간 역사임에도 다시 읽어도 가슴아프게 할 이야기임이리라.

한씨부인의 꿈과 기상이 큰데 비해 그녀의 부군인 장차 세자가 될 수양대군의 장남은 너무나 몸이 허약하였다. 다행히 그에게서 두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두어 대를 잇게 되었고, 그 중 둘째 아들, 자식들 중 막내인 혈이 왕위를 잇게 되어 세자빈으로는 끝까지 궁에 남지 못했으나 결국 대비에 오르게는 되었던 인수대비, 소혜왕후. 그녀가 바로 이 책의 표지가 되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1부에서 단종에 대한 애닯은 마음으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수양대군 앞에서도 아녀자의 것으로는 믿기지 않을 과감한 간언을 하고, 수양대군을 결국 왕위로까지 이끈 한명회와 가장 뜻이 잘 맞는 그런 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사실 세조의 며느리로서의, 수양대군의 며느리로서의 인수대비에 대해서는 잘 알지를 못했었다. 연산군의 어머니를 폐한 대비로서는 그녀를 강하게 기억했을 따름이었다. 후에 내훈을 집필하기도 하였다는 인수대비. 그녀는 확실히 타고난 인재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여인이기에 그녀가 할 수있는 역할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왕을 만들어내었다. 세조를 만들어내었다 할 수도 있지만, 후에 그녀의 아들이 다시 왕이 되기에 (중전에 오르지 않고도) 왕을 만든 여자라는 것에 두가지 의미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저자 신봉승님은 한때 대하 드라마의 대표작이라 할 수있었던 조선왕조 오백년, 왕조의 세월, 한명회 등의 드라마의 현장을 개척한 사극장르를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분이라 한다. 대하소설 조선왕조 4백년은 자그마치 전 48권에 해당하고, 이후 역사에 대해 집필한 책만도 다수에 이르른다. 밤늦게 하던 조선왕조 오백년에 한때 무척 심취해 봤던 기억이 있기에 그의 소설을 처음 읽는 감회가 남다르기도 하였다. 수양대군 또한 단종에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다 볼수도 있구나. 수양대군, 한명회 그들에게 역사적인 앙금과 감정을 나 홀로 갖고 있었다 한다면, 이 책을 통해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낸 비극일 수도 있음을 새로운 시선으로 그들을 볼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하였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남아있는 것들을 해석하는 역사가들의 해석에 많이 의존해야하는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새로운 시선으로서의 수양대군과 한명회, 한씨부인, (게다가 한씨부인의 학식 등을 처음 알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기에) 등을 이해하게 된 그런 소설책이 되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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