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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를 으깨며 ㅣ 노리코 3부작
다나베 세이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날의 일상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딸기를 으깨며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를 고민하고 있는 노리코. 그녀는 35세의 돌싱 여성, 돌아온 싱글이다.
결혼 생활을 형무소에 비유하며 (그렇다고 불행하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고 사랑하는 이와의 결혼이었음에도) 돌아온 싱글이 되자, 결혼 전의 불안감과 결혼 중의 생활을 모두 잊어버리고 오히려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며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겨울에도 커다란 딸기를 으깨 우유를 부어 먹고 (어떤 맛일까? 새콤하면서 고소할까? 집에 딸기가 한팩있는데 우유를 사다가 한번 으깨넣어봐야겠다.) 샤워 후 알몸으로 마음껏 돌아다니고, 더이상 남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친구들도 마음껏 만나고 하고 싶은 일과 생각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런 지금의 자신이 너무나 좋다는 그녀. 아, 정말 행복해 행복해를 외치고 있는 그녀.
남자의 찬미로 아름다워진다는 말도 확실히 맞긴 하지만, '반짝반짝 빛이 나는 서른다섯'이란 자기가 자기를 찬미하는 말이다. 28p
보통의 사람들이 결혼 후, 아니 이혼 후 겪게 될 스트레스 등에 대해서도 그녀는 아주 짧게 언급은 하고 있으나 예상밖에 그녀는 지금 너무나 행복하다는 그런 이야기가 줄곧 흘러나왔다. 부잣집 도련님이었고, 구속이 심했던 신랑이었던지라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있는 지금의 현실이 편안하고 자유로울 수는 있겠지만 그게 다일까?
'혼자 사는 행복'을 음미하면서 그대로 쉰, 예순, 일흔의 나이를 맞이하는 것이 가장 멋진 삶일지 모른다. 남자를 좋아하면서 '혼자 사는 행복'을 알고 있다면, 그야말로 최고가 아닐까! 29p
생각의 차이가 있으니 그녀의 행동이 옳고 그르다고 나의 잣대로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상이 그저 우울하거나 암담해있을 거란 편견을 깨버리고 너무나 맑은 자기자신의 자유로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에 소설 속 표현, 있는 그대로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그냥 그렇게 고개를 주억거리게도 되었다.
혼자 먹고 살 정도로는 벌고, 만나고 싶은 남자가 생기면 만나고 (애인이라기보다는 친구인 남자들을 여럿 알고, 또 친구인 여자들도 몇 알고 있는 그런 노리코), 생각의 규제없이 사는 돌싱의 생활을 즐기다가 아주 우연히 비오는 날 전남편인 고를 만났다. 그리고 여전히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남아있음을 느끼고, 그러면서도 다시 형무소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는데 고를 멀리할 수는 없다.
이제는 호감이 가는 남자들 중 하나이자 그 중 약간 더 특별한 느낌을 갖고 있을지 모르는 전남편이라는 존재를 곁에 두고 그녀는 또다른 주변의 남자에게 눈길을 살짝 돌리기도 한다.
그냥 그렇게 현재의 평안을 즐기던 노리코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은 죽음을 임박했을때 주변을 지켜줄 이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실제 친하게 지내던 여자친구가 갑작스러운 사고를 맞아 세상을 떴을때 주위에 친구 하나도 남지 않은 모습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절망했던가. 그렇다고 다시 가족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도 않고, 다만 자신의 죽음 이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라는 저자의 또다른 작품은 제목이 무척 귀에 익은데 아직 못 읽어본 책이었다. 그녀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으나 '연애소설의 여왕'이라는 표현을 듣는 저자의 책이기에, 또 그녀의 이번 책이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주인공 노리코를 다루고 있기에 읽어보고픈 책이었다.
그리고 가보지 않은 두 갈래의 길 중 하나를 간접 경험하게 해준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나로선 선택하고 싶지 않은 길이지만, 노리코는 과감히 선택을 하였고, 그 상황에서는 어쩌면 정당한 선택이었을 자신의 선택을 믿고 현재를 편안히 즐기고,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생기기 시작한 노리코의 이야기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 그런 소설이었다. 딸기를 으깨어 우유에 넣어 먹는 방법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나와 다르더라도, 그런 상황이더라도 그녀를 알아갈 수는 있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