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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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책의 목차가 모두 이소룡의 영화 제목으로 되어 있었다. 이소룡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그와 혼연일체가 되고 싶었던 짝퉁 인생, 영화만 보고서도 스스로 무술을 닦아가면서 무도인의 길을 걸으려 했던 나의 이소룡 삼촌의 영화와도 같은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책 초반에 서출 이야기가 나와서, 설마 홍길동전의 그 서출? 했더니 역시나 ..내가 잘못 읽은 것이 아니었다.

공부는 잘했지만, 남의 감정 고려않고 불쑥 말 내뱉기를 좋아했던 형이 밥상머리에서 삼촌이 서자출신이냐고 물었던 것처럼, 삼촌은 나와 우리 형과 몇살 차이 나지 않은 형제같은 연배였으나 할아버지의 숨겨놓은 아들, 즉 이 집안의 서자 출신이었다. 그러다보니 문중 사람들이 대부분인 씨족사회 농촌에서 삼촌은 어려서부터 늘 아이들의 놀림 대상이었고, 눈치를 주지않아도 스스로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신세기도 했다. 그런 그를 받아들여준건 할머니였고, 살가운 정을 베풀어주진 않았어도 늘 울타리처럼 삼촌에게 기댈 그늘막이 되어주는 존재기도 했다. 공부는 잘 못했지만 몸 쓰고 싸움 하는 일에는 재능이 있어, 이소룡의 무술 영화에 심취하여 혼자서 영화를 보고 무술을 닦은 솜씨가 제법이 될 정도로 짝퉁이지만 그 나름대로는 처절한 나름의 인생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어릴때 문중 제사에 나서야 해서, 그 후로 말을 심하게 더듬게 되었고, 사람들 앞에서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도 아닌터라, 자신의 무술 솜씨를 과시하지도 않았다. 그런 그에게 괜히 시비를 걸어온 도치를 비롯한 여러 불량배 앞에서 나중에는 아비요~ 소리를 절로 내며 홀연히 상대하고 사라지는 학원계의 전설과도 같은 인물이 되기도 한다.

 

초반은 그렇게 쿡쿡 웃음을 주는 일들이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독극물의 귀재가 되어버린 오순이, 하루 호떡 100개씩을 먹다 결국 토사물로 장관을 연출해낸 도치와 수렁에 빠진 토끼 등등, 삼촌과 그의 주변상황이 알고보면 힘든 인생사들임에도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입담이 무척이나 재미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소룡을 갈망하는 그가 앞으로 어떤 역경을 헤쳐나갈지 모르겠다는 암시의 글들을 읽으면서도 배우가 되지 못한채, 혹은 단역배우가 되어 코믹한 일상을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잠깐 착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그리 밝은 분위기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 어두운 면은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것이기도 하고, 어렸을때부터 언제나 그랬듯이 삼촌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는 상황인데도, 그냥 지나가던 그를 삼청교육대로 끌고 가 거의 사람을 반 죽음 상태로 만들어 돌려보내기도 한다. 운좋게 살아남았을뿐, 거의 재미삼아 혹은 본보기로 죽임을 당해야했던 무고한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연관없는 사람이 읽어도 치가 떨리고 두려워질정도로 극악 무도함만이 남아있었다.

 

피해갔으면 좋았을 그런 시절을, 삼촌은 아무 잘못도 없이 수렁처럼 엮여 모진 고초를 겪고 나오기도 한다. 삼촌의 인생에 전과라는 것이 생긴것도 사실 우연과도 같은 일이었다. 자꾸만 꼬여가는 인생, 단지 그는 이소룡을 흠모하고 무도인의 길을 걷고 싶었을 뿐인데 자꾸만 인생은 평범함을 넘어서 시련으로만 치닫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화자는 그보다 몇살어린 나, 조카인 나 상구였다.

그러기에 삼촌의 이야기 속에 중요한 화자로 등장함과 동시에 나의 친구인 종태의 이야기또한무시못할 비중으로 등장했다.

사실 나와 종태는 참으로 가까운 친구라 할 수 있었는데, 나의 치졸한 질투의 희생양이 된 종태는 아버지가 농약먹고 자살한 아들은 교도소나 들락거리는 인생이 되는 거라는 그의 말처럼 처절한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어린 소년의 질투어린 장난이라고 하기엔 많이 지나치기도 했다.

그럴수도 그럴수도.. 하고 주억주억하던 고개가 차마 더이상 주억거릴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꼬여버린 삼촌의 인생만큼이나 종태의 그것도 참으로 안타까움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이것저것 재어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순박하기만 했던 삼촌과 종태가 어둠의 그늘로 깊이 빠져 앞이 보이지 않는 듯 보이는데,2부에서는 어떻게 그들의 이야기를 이끌어낼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모든 소설은 결국 실패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주진 못하더라도 그리고 구원의 길을 보여주진 못하더라도 자신의 불행이 단지 부당하고 외롭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의 불행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요? - 천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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