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라, 외로움도 그리움도 어쩔 수 없다면 - 서른 살의 나를 위로하는 법
이하람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서른 즈음의 여행에 대한 여성 여행 작가들의 책을 벌써 여러편 읽었다. 내가 서른 즈음이었으면 더욱 와닿았을 그런 책들. 나 또한 서른이 되기 직전 29살의 그 기분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친구도 없이 서른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너무 불안했다. 직장이 안정적인 것은 부차적인 것이었고, 당장 결혼할 사람이 옆에 없다는게 나와 내 또래 친구들을 한없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주위 선배님들이 늦도록 결혼안하고 계신걸 많이 봐오기도 했고, 실제 사촌 언니들도 30이 넘어 다들 결혼을 해서, 20대에 결혼하길 바랬던 아빠의 꿈을 이미 난 저버렸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그런 불안감을 친구들과 함께 일년내내 곱씹었던 것 같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도 드물게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와 비슷한 처지로 남자친구가 없이 30을 맞이하는 친구가 많았다. 그 허전함을 나 또한 여행으로 달랬다. 20대 마지막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대학 동기들과는 경주로 처음 여행을 떠났고 (사실 대학때도 내가 한학기만에 휴학을 해서 같이 여행을 즐길 시간이 거의 없었다.) 10월 즈음에는 전 직장 친구, 동갑내기 친구와 함께 우리들의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며 호주뉴질랜드 여행이라는 내 생애 처음으로 가장 먼 여행을 떠났다.

 

그래서 친구들의 결혼 소식에 더 불안하고 막막했을 저자의 심정이 너무나 절절히 와 닿았다.

사실 29살은 너무나 불안정했지만, 오히려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 같은 30이 되자, 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질게 없었다. 오히려 불안했던 마음이 딱 사라져서 너무너무 편해졌다. 딱 하나 졸업앨범을 보고 전화를 걸어온 중매쟁이 아줌마에게 틱틱거리자 (그땐 정말 그런 전화가 너무너무 싫었다.)  "뭐 이제 꽃띠가 아니잖아요.(그러니 너무 튕기지 말라구요 라는 의미가 내포된)" 이런 소리로 나를 열받게 했을뿐. 사실 내가 아는 동료 한분도 워낙 동안이었는데도 결혼이 늦어지니 전화가 와서 "이제 예쁜 나이는 다 지났고.."라는 말로 속을 박박 긁어놓았다 하였다.

 

책 속 저자는 여행 작가로 두번째 책을 내었다. 서른을 갠지스 강가에서 보내기 위해,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먼 곳이었던 인도로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나 또한 멀다고 느꼈던 호주로 떠났긴 했지만 가이드와 함께 대부분 중년 부부인 팀에 끼여서 드문 미혼 여성들로 여행을 다녀왔다. 일주일보다 약간 길었던 우리 여행이었지만 저자의 여행은 훨씬 더 힘들고 고된 자유 여행, 그것도 많은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인도 여행이었다. 다행히 잠자리가 까다로웠던 그녀가 인도에서는 식성, 잠자리 모든 것에서 마음을 놓고 적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 여행을 다닐 수 있었던 것이겠지.하나하나 불평을 하다보면 아마 인도란 곳은 끝도 없이 불만을 갖게 될지 모를 곳이었다.

 

인도는 끝없는 반전의 놀라움이 기다리는 곳이라 했다. 전혀 기대하지 못한 곳에서 친절을 받고 최소한의 친절을 기대한 곳에서는 쌀쌀한 냉대를 받기도 한다. 저자가 적은 그 따스한 경험들이 인도에 대한 내 거부감을 조금씩 상쇄시켜 주었다. 2등석 표를 못 구해, 3등성 칸에 타고, 관광객들을 드물게 볼 가난한 현지인들을 그저 경계의 대상으로만 보았을때 현지 남자들이 그녀의 표를 보고, 자리를 찾아주고 (이미 다른 사람이 앉아있는 것은 기본임에도 일어나라고 해주고) 그녀가 깜빡 잠이 들어 못 내릴뻔 하자, 서둘러 그녀를 깨워 제대로 내리게 도와주기도 했다.

여행사 직원조차 고아행 표를 못 구한다며 모르쇠로 일관할때, 택시기사였던 사람이 그녀의 고충을 듣더니 버스표가 남은 것을 알아내고 그녀를 미터기 요금만 받고 버스터미널까지 태워다주기도 했다. 인도여행을 다녀온 많은 이들이 사기 당한 이야기를 주로 담아내는 것에 비해 그녀가 받은 친절들은 유난히 더 기억에 남는 대목이었다.

 

인도여행 짬짬이 여행을 가기전, 혹은 다녀온 후의 그녀의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갑자기 읽다보면 어느새 그녀의 작업실 혹은 그녀의 글 쓰는 아지트인 여의도 근처 커피숍에 와 있는 가 하면, 한국의 그녀의 전 애인과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혹은 좀 안타깝게 흐르다가도 애슈턴 커쳐와 젊은 시절의 레오나르도를 닮은 인도여행중인 덴마크인 모르텐에게 넘어가기도 한다.

 

그런 서술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 구절 써내려가기가 너무나 힘들다는 그녀. 하지만 그녀의 글은 읽는 이에게는 솔직한 그녀의 심정이 그대로 와닿는 평온함을 주었다. 작지만 알찼던 책 한권이 그렇게 아쉽게 마지막 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서른의 나이를 끝없이 반추하며, 고생길일 수도 있는 인도에서 내려놓는다는 것을 배워간 저자의 이야기가 30이 아닌 사람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주겠지만 특히나 잊혀지지 않았던 29세의 불안했던 나 자신으로 되돌려주었다.

 

지금껏 살아오던 방식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곳

그곳이 인도다. 2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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