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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이면 나는 점 보러 간다 - 답답하고 어수선한 마음 달래주는 점의 위로
이지형 지음 / 예담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어느 책에선가 전갈자리를 가진 사람은 별자리 운세 등에 관심이 많고 사행심리도 높다는 글을 읽었다. 그게 온전히 내 모습이 될 수는 없겠지만, 대학 때 특히나 20대 말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때는 사주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는게 그리 부담스러운 일이 되지 않았다. 어릴적에 보던 개그 코너에 부채도사라는 코너가 있어서 개그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사주, 점 등이지만, 막상 직접 보러 가면은 내 운명에 대해 진지한 마음으로 열중하게 되기도 한다. 사실 사주 카페는 일반 점집 등에 비해 좀더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다. 어른들이 보시는 것처럼 어려운 느낌이 없고, 차 한 잔 마시고 인연을 언제 만나게 되나요? 등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넋두리하듯 물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마침 학교 근처에 사주카페가 유독 많기도 했고 말이다.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때는 압구정동 사주 카페에 일부러 찾아가기도 했다. 재미삼아라는 명목으로 말이다.
대학때도 연애운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운세도 궁금하기도 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말은, 열이면 열 모두 재주를 갖고 있으나 그렇기에 한 우물 파기 힘든 형세기도 하다. 연말만 되면 자꾸 뛰쳐나가려고 하는데, 결국 세월이 흐르고 나면 원점이니 그냥 한 우물에 집중하라 라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전부 다 믿을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이미 한번 다니던 대학을 관두고, 다시 수능을 봐서 다른 대학, 다른 과에 입학한 후에 또다시 재수를 망설이고 있었던 터라, 뜨끔하였다. 결국 원점일 수 있다는 거지..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아 만족하지 못했던 결과라도, 더이상 일을 벌이지 않고 현실에서 열심히 해보기로 나자신과 타협을 했다.
점, 운, 사주 등을 모두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주 가볍게라도 스쳐 지나간 말들이 가끔 머릿속에 콱 와박힐 때가 있다. 안 좋은 말보다 주로 좋은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피그마리온 효과처럼, 그래 다 잘 될거야 하는 바램으로 힘든 때가있으면 굳건히 일어날 때도 있다는, 다 잘 될거라는 생각으로 이겨내곤 하였다. 내가 간 곳이 점집이 아니라 사주 카페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유독 좋은 말만 골라서 해주는 느낌이었는데 사주카페라고 다 좋은 이야기만 해주는게 아니라는 것을 일행과 같이 가서 듣고 놀란 적도 있었다.
이 책은 점을 보러다닌 사람이 아닌 점을 치는? 아니 사주를 보는 그런 분의 이야기이다. 서울대에서 경영과 미학을 공부하고 대기업 부장으로 있다가 퇴근 후에는 다른 필명으로 명리연구가로 활동을 했다는 이색 경험을 가진 이지형님의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단순한 에피소드 위주라기 보다는 점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심리라던지, 사주에 대한 지식적인 부분 그런 것들을 두루두루 아우르고 있는 책이었다.
인상 깊은 부분은 아무리 힘든 때라도 6개월만 지나면 나아지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최악의 슬럼프다 하고 잠겨있는 사람이 몇달을 참아내기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봄이 가고, 6개월이 지나면 가을이 오듯이 인생의 사주도 그런 형국으로 흘러간다고 한다. 좋은 일이 있다가 나쁜 일이 올수도 있고, 일이 안 풀리다가 잘 풀리는 시기가 올 수도 있고.. 힘들때 지나치게 좌절하고 잠겨있기 보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처럼 (우리 신랑은 그런 말을 무척이나 무책임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가 많음을 은연중에 믿고 있다.) 자신이 너무 수렁에 빠져있지 않게 어느 정도 추스릴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명리연구가의 조언 아닌가. 누구나 기복이 있듯, 6개월만 버티면 더 나은 시기가 온다는데 말이다.
또 언젠가 들었듯 자기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손금을 강제로 파가면서 성공했다는 사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이 좋지 않다면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그 강한 의지가 그 사람을 성공의 길로 이끈게 아니었나 싶다. 책에서는 운명을 극복한 사람으로 명나라 시기의 원황이라는 사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점을 보러 갔더니 어느 노인이 " 현에서 보는 시험에서는 14등 부에서 보는 시험은 71등, 마지막으로는 성이 주관하는 시험에서는 9등을 할것이다."라고 예언해주었고, 정말 등수까지 딱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그가 다시 노인을 찾아가 평생의 길흉을 듣자, "오십삼 세 팔월 십사일 축시에 거실에서 운명할 것인데 안타깝게도 대를 이을 자식은 없겠소"라는 천기누설에 가까운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대를 잇는게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에 살았던 원황이기에 일찍 죽는것보다 무자식이라는 말이 사무쳤을 것이다. 그런 그의 삶은 다른 예언들이 너무나 노인의 말과 맞아떨어져 더욱 불안한 30대를 보내고 있다가 어느 선사를 만났다. 그는 "지극히 선량한 사람은 운수가 완전히 속박하지 못하고, 지극히 사악한 사람도 역시 운명이 완전히 구속하지 못하는 법이오"라는 말을 듣고 전자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아들을 낳고 일흔을 넘기며 장수했다고 한다.
정말 천기누설과 같은 점괘를 듣고 맞아떨어지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들을까? 사실 점을 보러 갈 적에 좀더 나아진다는 말을 듣고 싶어 보고 싶다가도 미래를 모두 다 맞춰버리고 알아버리면 세상 사는 재미가 없을 수 있겠다.싶기도 하다. 게다가 원황처럼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이다라는 말까지 들으면 세상 사는 낙이 더욱 줄어들고 말지도 모른다. 그가 뛰어난 선사를 만나 운명을 극복할 계기를 마련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후대에 기억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말이다.
점을 보러 가든, 그렇지 않든 (점을 좋지 않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삼성 대기업 회장마저도 유명한 관상전문가를 옆에두고 면접에 임했다는 이야길 들은적도 있다.) 자신의 불행한 운의 개선, 혹은 한치 앞의 미래 등이 궁금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스스로의 힘으로 잘 극복해낼수있는 사람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이야길 들어보고 싶은 사람 등, 기타 등등으로 나뉘겠지만 말이다. 책을 재미로 읽어내리진 못했지만 궁금했던 부분들이 해소되어, 읽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참아내면 되겠지. 지금 이 순간도 이렇게 또 흘러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