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명화의 거짓말 - 명화로 읽는 매혹의 그리스 신화 ㅣ 명화의 거짓말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2월
품절

그림그리기를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것과는 별도로 명화 감상은 어려운 과제처럼만 느껴질때가 많았다. 사실 이 책에 실린 작품에서부터 시작해, 꽤 여럿 작품들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그 웅장함에 깊이 빨려들어갈 것 같은 매혹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감흥을 뒤로 하고, 대부분은 어려운 작품 해설이나 의도 등을 읽어야한다는 생각에 명화감상이 어려운 벽처럼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명화를 보다 더 쉽게 이해하고 기억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책은 없을까? 그동안 많지는 않아도 몇권의 작품 해설서 같은 책을 읽었는데 사실 이 책처럼 재미있는 책은 처음이었다.
이 책의 저자 나카노 교코는 <무서운 그림>으로 유명한 작가라 한다. 난 처음 읽은 작가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말투도 참으로 적나라하고 통쾌하고 쉽고, 그리고 귀에 쏙쏙 들어오게 품위 따위는 벗어던지고 (그렇다고 너무 저속하지만도 않다. 그냥 독자의 시선에서 편안하게 글을 전개해줄 따름이다.) 재미난 소설 읽듯이 편안하게 술술 읽어내려가도! 굳이 어려운 전문 용어들을 거들먹거리지 않아도! 명화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음을 짚어주는 고마운 책이었다.
루벤스, 클림트, 보티첼리 등의 당대 최고 화가들이 그려낸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그 그림이 실제 그려진 상황과는 약간의 차이가 더 있을 수도 있었다. 우리가 미처 이해못하고 있던 부분들까지도 세심히 짚어주어 정말 재미나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어 좋았던 책이다.
제우스의 바람기는 어려서부터 접한 그리스로마신화에서도 무척이나 이해안되던 부분이었다. 어른이 되어 읽어도 정말 이해가 안된다. 신이니 그런 것일까? 백조, 황소, 별의별 동물로 다 변신해 원하는 여인을 손에 넣고 마는 제우스, 그가 한줄기 황금빛이 되어 취한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다나에였다. 렘브란트가 그린 다나에는 1985년 어느 청년의 테러로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가 12년에 걸친 필사적인 작업 끝에 간신히 복원되었으나 그 아름다운 빛나는 색채와 대가의 특유의 필치는 사라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작품은 매우 뛰어났다. 정말 살아움직이는 듯한 여인의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도저히 인간의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는 솜씨였다. 양손이 묶여 몸부림치며 우는 큐피드 또한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솜씨일까싶었다.
뒤에 렘브란트에 대한 소개글도 나왔다.
화가들 중 그만큼 평생에 걸쳐 모든 것을 완벽하게 누리고 간 대가도 없을 거라는..그는 모든 면에서 진정한 천재였다. 거기에 장수까지 누렸다고 한다. 최고의 배우자들도 두명이나 두었다고 하고 말이다.
제우스, 아프로디테, 아폴론, 그외 신화로 크게 분류가 되고, (아무래도 그림이기에 아름다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많은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실제 신화에서 아프로디테의 비중이 저렇게 높지는 않을 것이다.) 그림이 등장하기 앞서서 미리 작가의 설명을 듣고 나서 그림이 뒤에 등장을 하기에 그림으로 미리 눈이 가지 않고, 일정량의 지식과 기대감이 쌓인 이후에 해당 작품을 만나게 되는 구조가 독특하였다. 그림부터 등장하면 아무래도 그림 보랴 글 보랴 정신없게 마련이었는데 이 책은 독특한 구조로 그림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여주었다. 정말 그렇게 설명부터 접하고 그림을 보니 박장대소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루벤스의 작품이 당시 사람들에게 할리우드 영화 같은 구실을 했다면 틴토레토의 그림은 기상천외하고 SF적이고 코믹한, 다소 만화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은하수의 기원에도 만화의 말풍선을 넣으면 재미있을 것이다.
예컨대, 이런 왁자지껄한 화면이 될것이다.
제우스 여보, 미안하지만 이 아기에게 젖을 좀 주시오
아기 배고파, 꿀꺽꿀꺽
헤라 꺄, 뭐하는 짓이야! 얘는 당신 애인의 애잖아요!
큐피드들 잘되었군, 잘되었어.
효과음 (헤라의 젖꼭지에서) 퓻.
(별이 되어) 반짝반짝
27P
진지한 명화 중에 SF 만화 같은 작품이 있던가? 도대체 어떤 작품이란 말인가? 궁금증에 그림이 있는 페이지를 열어보고 정말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앞으론 이 작품을 볼때마다 위 지문이 그대로 떠오를 것 같았다.
명화를 통해 거꾸로 되짚어 읽는 그리스 신화는 참으로 재미가 났다. 아마 나가노 교코의 입담 덕분이겠지만 한편 한편의 이야기가 이렇게 귀에 쏙쏙 남는 명화 설명은 기필코 처음이었다.
유난히 풍만해보이는 미인들의 모습을 보며 당시 미의 기준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참으로 구체적이어서 그림이 있는 그대로 눈에 박히는 듯 했다. 자그마한 가슴, 임신부로 착각할 만큼 부푼 복부, 살집이 두터운 하반신이야말로 이상적인 누드였다18P고 한다. 워낙 말라깽이 예찬 문화에 사로잡혀있는 현대인의 시각이기에 예전의 미인의 기준이 그리 와닿지 않을거라는 설명이 독자들의 궁금증을 정말 알아서 착착 해결해주는 느낌이었다.
피그말리온 왕이 직접 조각한 미녀 조각상이 인간이 되어 그와 결혼을 하게 되는 장면은 장 레옹 제롬의 작품으로 표지에까지 실린 작품이었다. 여인의 몸이 참으로 유려하게 아름답다. 현대의 미의 기준에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런데 잘 보면 희디 흰 상아로 된 그녀의 몸이 다리 아래부분은 아직 석고이고, 윗 부분이 인간의 부드러운 몸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사랑이 정말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이었어야 했는데 생명이 없던 석고가 살아난 (죽은자의 부활처럼) 갈라테아와 피그말리온의 후손은 그렇게 행복하고 평탄한 삶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는 아프로디테가 애초에 관여한 (갈라테아를 인간으로 만들어주었고) 사건이었고, 후에 또한 그들의 후손에게 천벌과도 같은 일을 내렸다가 다시 자신이 그 희생양이 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정말 하나하나의 에피소드가 너무나 재미있어서 명화감상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정말 재미있다는 말이 딱 맞는 책이기에 말이다. 눈이 번쩍 뜨이는 명화감상은 정말 덤처럼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