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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사진관 - 카메라로 쓴 어느 여행자의 일기, 개정판
최창수 글 사진 / 북하우스 / 2011년 11월
내가 만나고 온 지구인들의 사진이 걸려있는,
여기는 '지구별 사진관'이다. 프롤로그
유명한 명승지의 사진이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사진으로 담긴 여행기. 부제에 적힌 카메라로 쓴 어느 여행자의 일기라는 말에 딱 걸맞는 그런 책이었다.
1년 반 정도의 여행을 다니며 저자는 돗자리만큼 큰 지도에 스스로 여행한 지역을 실선으로 그어가며 만족감을 채워나갔다. 집에 걸어두고 바라보고 있으면 믿기지 않을만큼 뿌듯한 여정이리라. 게다가 그가 열심히 담아낸 사진은 이렇게 책으로 완성이 되어 우리앞에 멋지게
등장했다.
한편 집착에 가까웠던 사진 찍기는 어느덧 억압이 되었다. 여행을 하는게 아니라 마치 촬영대회에 참가한 것 같았다.
실로 마음을 비우고 사진과 여행을 조화롭게 즐기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충분히 공감했다. 짧은 일정이라도 여행을 가서 사진기로 찍다보면 눈으로 직접 감상할 기회를 많이 놓치게 되고 사진을 위해 다른 것들을 경험할 기회를 많이 없애는 느낌도 받는다. 또 좋은 사진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으로 (저자처럼 사진욕심이있는 경우는 더더군다나) 더욱 집착을 하게 될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찍고 추렸을 책을 보면서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되었다.
베트남 여행 말미에서 인물 사진에 소질이 있음을 스스로 발견한 저자는 이후로 유명한 관광지, 풍경보다는 사람사는 동네에 들어가 사람들과 사진으로 소통하고 인물 사진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한번도 배운적 없던 저자가 티베트 라싸 책방에서 스티브 매커리의 사진집을 보고 충격과 공포 그 자체로 빠져들어 그는 느려터진 동남아의 인터넷으로 스티브 매커리의 사진을 모아 보고 또 보며 350여장의 그 사진들을 외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노력한 덕분인지 그의 사진에서도 인물 사진에서 생생히 살아있는 그 무언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몽골을 시작으로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 미얀마, 네팔,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예멘을 거쳐 머나먼 아프리카 대륙 에티오피아까지 총 17개월을 여행했다. 그가 여행한 이 나라들은 일반적으로 잘 사는 나라에 드는 나라들이 아니다. 선진국 아이들처럼 배불리 먹거나 훌륭한 교육 환경에 노출되어 있진 않아도 아이들 표정은 너무나 티없이 맑고 예뻤다. 물론 개중에는 관광 문화에 익숙해져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피사체가 되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하고 흥정하는 아이들도 있어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말이다. 찍는 사람은 하루 한번 정도겠지만, 그들이 주고 간 팁이나 용돈이 꽤 짭짤한 수입원이 된다 생각한 마을 어른들과 특히 그 돈이 더욱 클 아이들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식일수도 있겠다. 동심을 잃게 만든건 아이들을 찍고 싶은 관광객들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말이다.
가난할 망정 늘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행복을 찍는다라는 제목의 사진에 덧붙인 저자의 말 중 하나였다.
인도에서 찍은 그 사진에는 때마침 아기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행복한 표정과 어미개에게 응석을 부리는 강아지의 귀여운 재롱이 한 컷에 잘 잡혔다. 아기엄마다보니 늘 이런 사진이 가장 인상이 깊다. 오늘 여행하고 온 경주 밀레니엄 파크에서도 수많은 토우 중 딱 하나가 한 눈에 쏙 들어왔다. 바로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사진을 찍었던 인도의 조드푸르는 영화 김종욱 찾기의 여주인공 지우가 간직한 첫사랑의 기억이 푸른빛으로 감도는 곳이라 한다. 영화를 보고 다녀온 여행이었으면 첫사랑의 기억을 찾았을텐데 하면서 아쉬워하는 저자의글귀가 인상적이었다. 메헤랑가르성에서 내려다본 조드푸르의 풍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하나하나의 벽은 이렇게 파란칠로 되어있었나보다. 멋진 풍경보다도 벽틈 조그만 창으로 밖을 내다보던 아이의 모습이 더욱 눈에 와닿았다.
서커스 기예 연습을 하고 있는 줄 알았던 소년의 모습은 고무줄 넘는모습이었다한다. 내 또래 여자들이라면 많이들 하고 자랐던 (요즘은 할 시간도 없고 더 비싼 장난감이 많아 여아들도 고무줄 하며 자랄 시간이 부족하겠지만) 고무줄을 소년이 하고 노는 모습이란다. 다리가 어쩜 저렇게 올라가도 해맑게 웃을 수 있는지.. 운동신경이 둔해 고무줄에 큰 재능을 보이지 못한 나도 입을 떡 벌리게 한 사진이었다.
모든 여행자의 로망,
중국과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높고도 아름다운 길,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넘어 그 유명한 파키스탄의장수마을 훈자에 왔건만 흥분은 커녕 담담하기만 하다.
여기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배경이 된 곳이라는데,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헉, 정말 다시 보니 눈이 집중할만한 풍광이었는데, 여행이 너무 길어져 감각의 역치가 높아진 탓인지 그의 반응은 무덤덤하고 무료하기만 했단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라 읽는 내가 다 흥분하고 있는데 말이다. 반지의 제왕의 배경이 된 뉴질랜드 남섬의 풍광에 대한 기대만 컸는데, 모든 여행자의 로망은 따로 있었구나. 여행의 깊이가 얕던 나는 처음 알았다. 이런 멋진 곳이 더 가까이 있다는 것을..
그만큼 나는 '여행'을 살고 있었다.
..마지막 여행지 미얀마 바간이라는 동네에서 수백 년 된 불탑 위에 올라 저 멀리 지는 해를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 내가 이 지구에 태어났을 때부터 주어진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여행을 마치며
여행, 사랑, 청춘을 결합한 국민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꿈을 꾸고 있는 저자는 현재 예능 pd로 살아가고 있다.
긴 여행 동안 많은 사진을 담아왔고 그 사진들은 수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우리에게 같은 하늘아래 살아가고 있는 또다른 지구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진을 읽는 내내 행복한 기분이 감도는 시간이었고, 편안하고 안정된 여행을 추구하는 내가 보기 힘들 장소와 풍경의모습들이었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