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 콘크리트 정글에서 진짜 정글로
제니퍼 바게트.할리 C. 코빗.아만다 프레스너 지음, 이미선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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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28이라는 숫자는 20대 초반에는 결혼 적령기로 받아들여졌지만, 막상 내가 그 나이가 되자 갑자기 결혼이라는 현실이 막막해졌고, 언제 다가올지 몰라 애태우는 그런 미래의 순간이 되고 말았다. 직장생활은 하고 있으나 결혼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새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 그런 나이였다. 내 친구의 경우에는 그 나이에 아니 29세던가? 아뭏든 과감히 회사에서 보내주는 대로 미국 지사 발령에 동참해 2년이었는지 3년이었는지 하는 기간동안 나름 고속 승진을 하고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 되어 돌아왔다. 결혼을 하지 않고는, 혹은 결혼할 상대가 정해지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새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나와 달리 말이다.

 

여기 스물 여덟, 세 청춘의 이야기가 있다. 당시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던 세 명의 여성 이야기이나 그들이 미국 그것도 뉴욕에 살고 있는 여성들이라는게 차이라면 차이일뿐. 남자친구가 있는 이도 있었고 없는 이도 있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또 떠나보겠냐는 일념으로 셋은 의기투합해서 일년여간 세계 일주를 하기로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라는 제목이 그래서 붙었나보다.

사실 제목만 읽고서는 좀 비극적인 인생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표지와 내용이 여행기여서 놀라기도 했다. 

 

 한 사람이 아닌 세 사람이 돌아가면서 여행기를 쓰고 있어서 읽다보면, 누구의 이야기인지 다시 밑을 확인해 이름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하기도 했다. 여자 셋이 모여 그런지 정말 할말이 많아 여행기가 글로 빼곡히 가득차 버렸다. 첫 부분은 여행기라기보다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일어나는 갈등 같은 구조까지 담아내고 있어서 여행기에 들어가기까지 좀 숨을 골라야 할 정도기도 했다. 그리고 인상깊었던 부분은 돌아가면서 여행기를 쓰다보니, 앞서 말하기는 정말 최선의 최고의 숙소였다고 대만족했던 호스텔이 뒤에 다른 친구가 말하기로는 최악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서로의 입장차가 분명히 존재함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돌아가면서 글을 쓰다보니 헷갈리는 부분도 많았지만, 생각의 차이가 있으면 그 부분에 대해서 서로의 입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해, 아만다와 젠, 할리의 각각의 입장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그 점은 신선하다 느껴졌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친구와 셋이 함께 떠난 2박3일의 짧은 홍콩 자유여행이었다.

기간도 지역도 이들에 비해 무척이나 짧았지만 나이는 비슷한 또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 해외여행에 많이 들뜨고 설렜던 나는 거의 한달을 준비해 가고 싶은 곳들, 가야만 할 곳들(?), 그리고 부족한 외국어 실력을 보완해줄 보다 완벽한 정보를 찾아 자료를 수집하고 또 수집했다. 친구들과 성격이 달랐던 탓인지 여행 준비는 거의 나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졌고, 여행지에 가보니 그 많은 곳들을 다 가볼수는 없었지만 참고하기에 충분히 도움은 되었다. 다만, 그 짧은 기간에도, 또 죽이 잘 맞는 친한 친구들이었음에도 여행지에서는 서로 취향의 차이로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 명품 가방을 사고 싶었던 친구들, 그러나 명품엔 전혀 관심이 없어 그 시간에 다른 관광이나 특이한 소품 등을 사보고 싶었던 나, 욕심만 앞서 빽빽히 여행하다가도 또 쉬고 싶은 친구들 마음에는 그런 일정이 고되었을 테고, 어느 누구 하나라도 인상이 굳어질 무렵에는 다 같이 웃으며 간식이나 먹고 갈까? 하면서 망고 주스를 찾아 허유산으로 가고 시원한 주스 한잔에 (다들 맛있는 음식앞에선 금새 기분이 풀어졌다.) 기분이 누그러져서 다시 호호 웃으며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가장 궁금했던 점이 세 친구가 (아만다와 젠은 워낙 기존에 알고 있던 친한 친구였고 할리는 아만다의 어시스트였나? 직장 동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행을 더욱 좋아하는 할리였기에 과감히 떠나는 여행 앞에서 가장 박수를 보내고 적극적으로 동참해준 친구기도 했다.) 그 긴 시간 동안 험난하다면 험난할 일정 속에서 충돌 없이 보낼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나 뿐 아니라 세계 많은 곳의 여행지에서 그들의 여행행로를 들은 타인들이 "세 친구가 거의 싸우지 않고 보낸 일년"을 거의 불가사의하게 여겼다 하였다. 사실 갈등이 없을 수는 없었다.

 

워낙 일욕심이 많아서 이번 여행조차도 여행작가를 꿈꾸는 자신의 발판으로 삼고 싶었던 아만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런 기회를 노트북 등의 문명의 이기에 보내는 시간에 맡기는게 너무나 무모하다 믿었던 젠,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었으니 여행을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이런 가치관의 차이가 오는 것은 정말 당연할 수 밖에 없었다.

또 어디서 묵건 크게 신경을 안 쓰고 잘 자는 아만다와 젠과 달리, 어느 오지라도 적응 잘하는 줄 알았던 할리는 오히려 잠을 자는데 있어서는 다인실의 공용 게스트하우스보다 3인실을 원하거나 독실을 원하는 등, 철저한 개인 공간을 원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놀땐 확실히 즐겨도 수면 공간은 제대로 보장되지않으면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말이다.

 

 많은 여행기가 사진과 더불어 짧은 감상 등으로 이루어졌던 것에 비해, 말 많은 세 여성의 가득찬 입담으로 글이 채워지다보니, 속을 알 수 없었던 (경험해보지 않은 뉴요커들이기에) 미국 여성들의 생각과 일상 등도 조금씩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모든 미국인들이 그렇게 여행을 다니는 것은 아니겠지만, 주로 한국인들의 여행서를 접하다 미국 세여성의 책을 읽으니 그들의 생각이 미국인들의 일반적인 것으로 오해살만하기도 했다. 파티문화를 즐기지 않는 나(친구들과 조용히 즐기는 파티는 좋아한다. 그러나 술마시고 춤추는 광란의 밤은 나와 너무나 거리가 멀다)와 달리 그들은 파티 문화를 좋아하고 여행지에서도 그런 기쁨 누리는 기회를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감정 조절도 이성 문제가 섞여 있어서 그랬다고는 하지만 좀 기복이 큰 편이었다. 20대 후반의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라기 보다는 천방지축 통통 튀는 대학생 같은 면이 있기도 하고...(생각과 표현이 다소 극단적일 때가 있어서 놀랍기도 했으니 말이다.) 읽다보니 그들이 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었기 때문이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아마존, 브라질, 케냐, 인도, 태국, 베트남, 뉴질랜드 호주 등 참으로 많은 곳을 경험하고 돌아왔다.

관광일정만 짜여진 것이 아니라 케냐 오지마을에서는 십대 여학생들을 위하 자원봉사를 하기도 하고 인도 요가학교에서 심신 수양을 배우기도 한다. 모두의 취향이 아닌 단 한사람의 바램이 있어도 그것이 반영된 것이었기에 할리가 꿈꾸었던 요가는 결국 두 친구의 완성된 동참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혼자만 완료하는 것으로 끝나기도 했다.

 

여행의 전후는 분명히 달랐다. 일년여의 과감한 세계일주를 추진하지 않았더라면 아만다는 4계단을 건너뛴 초고속 승진으로 캐스팅되지도 못했을테고, 젠은 예전의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이어졌을 것이지만, 그와는 힘들게 결별했어도 운명적인 이끌림으로 한눈에 반한 사랑에 빠져들기도 한다. 두 친구에 비해 안정적인 현실(아파트와 남자친구)로 돌아올거라 믿었던 할리도 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애로 끝이 났지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이루고 그 꿈을 지속해내기 위해 여전히 박차를 가하며 살고 있다. 

 

내가 다시 28살로 돌아간다면 나도 이렇게 과감히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대학때 못 간 유럽 배낭여행을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경비 마련을 위해) 한달동안 같이 떠나자고 절친한 친구와 굳게 약속을 했었는데, 약국을 다녔던 친구가 직장을 그만두었던 것과 달리 쉽게 그만두기 힘든 직장(들어가기도 나오기도 힘들었다. 무서운 상사의 눈 부라림에 시달렸달까) 을 다녔던 나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그녀를 초면의 룸메이트와 함께 여행을 하게 만들었다. 한달 후 친구가 가져온 사진에는 너무나 밝게 웃는 한층 더 성숙해진 그릇의 친구가 담겨 있었고, 고생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다시 못 올 그 기회가 너무나 만족스러웠단 말에 나도 꼭 가봐야지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니 한달은 커녕 며칠도 짬내기가 어려움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아마 평생동안 나는 그런 여행은 못 가보게 될 것이다. 포기할 것이 많은 그런 모험이 많은 미래를 꿈꾸기에 나는 너무나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삶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래도...

그녀들의 에필로그에는 또다시 설레였다.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다. 길을 잃는 것을 피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여라. 틀에 박히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해 익숙한 생활을 두고 완전히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 경험을 통해 우리가 배운 것은 믿고 뛰어내리지 않으면 결국 후회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6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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