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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 ㅣ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식여행 / 2011년 10월
품절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라는 작품으로 처음 만나는 작가였다. 대재벌의 상속녀임을 비밀에 붙이고 몰래 신참형사로 활동하는 여주인공 호쇼 레이코, 그러나 실제 사건을 해결하는 건 자신의 주인을 멍텅구리 취급하는 시니컬한 집사 가게야마, 그리고 여주인공보다는 훨씬 적은 규모지만, 그래도 나름 재벌이라 자부하는 가자마쓰리 경부의 돈냄새 풍기는 엉뚱 활약까지 (가자마쓰리의 엉뚱함은 신참 여형사의 손발이 오그라들게 할 정도다) 세 주인공의 트라이앵글 활약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으스스하고 무서운 미스터리가 아닌 본격 유머 미스터리에 제대로 반했던 작품이었다. 최근 드라마화되어 더욱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한 작품. 작가의 첫 작품은 2002년에 신인 발굴 프로젝트에 쓴 밀실의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바로 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라 한다.
"사이와이 초의 다카노 아파트에서 젊은 여성 한명이 추락했습니다"..
..중략..
귀에 거슬리는 경찰 무전의 목소리가 어두운 차 안에 울려 퍼지자
지금까지 조수석에서 죽은 듯이 조용히 있던 스나가와 경부가 갑자기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사이와이 초라고? 그럼 바로 이 근처잖아! 그렇지?"
스나가와 경부는 몸을 앞으로 내밀어서 무전기 쪽으로 오른손을 뻗었다.
"못 들은 걸로 하자."
그러더니 무선 스위치를 오른손 검지로 눌러서 무전기를 꺼버렸다.
"으악! 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거예요? 경부님, 사건이라고요. 사건! 그걸 무시하는 형사가 어디 있어요?"
"너 아직도 일하고 싶냐? 참 대~단하다. 이번에는 불속에 내던져질 지도 모르는데."
59.60p
컥. 실제 상황에서나 영화 속 어디에서건 형사는 늘 진지하고, 사건 해결에만 몰두하는 그런 역할일거라 생각했는데, 살인 사건 앞에 못들은걸로 하자며 꺼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마치 또 야근이야? 하는 일반 샐러리맨들의 투덜거림처럼 만화같기도 한 이 황당한 설정에 살인사건을 앞둔 긴장감이 꺼져버리고 말았다. 웃으면 안될 상황인데 자꾸 웃음이 나기까지..
자그마치 두 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게다가 마치 한 남자를 지목이라도 하듯, 누가 봐도 그가 범인일 것 같은 유력한 용의자까지 딱 한 사람 등장한다. 바로 류헤이.
추락사한 여성은 타인에 의해 칼에 찔린채 창가에서 떨어져 살해당했다. 그녀는 하필이면 류헤이의 전 애인이었고 헤어진지 얼마안된 실연의 상처가 깊었던 류헤이가 술에 취해 그녀를 죽이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그 소리를 들은 사람만도 100여명이 넘을 상황인지라 그보다 더 유력한 혐의를 받을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하필 류헤이는 사건 당일밤 사건현장에서 가까운 선배네 집에 비디오를 보러 놀러간 참이었다. 대학 선배 모로 고사쿠의 집에 홈씨어터 시설이 워낙 완벽히 잘 갖추어져 있어서 종종 영화를 보러 들르는 곳이었다. 선배와 영화를 보고 술을 한잔 마신후 샤워를 하러 들어간 모로 역시 시체로 발견되었다. 류헤이 앞에서 말이다. 류헤이와 관련된 두 사람의 죽음, 평범하게만 살아와서 경찰 앞에서 진술할 생각만해도 오싹해지는 류헤이는 누가 봐도 유력한 용의자인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비관적이기만 하다. 그래서 그가 구원받으려한건 전 자형인 사립탐정 우카이였다.
"그렇죠. 그러니까 완벽한 밀실이었다는 거죠."
"아니, 그렇지 않아. 오히려 너무 완벽하다는게 허점이지."
....
"그렇다면 체인을 건 사람은....엉?"
"맞아."
우카이가 씨익 웃었다.
"혹시...저예요?"
"너 바보냐?"
154p
사건을 해결해야하는 탐정도 사실 못 미더운 마당에 유력한 용의자인 류헤이는 참으로 허점이 많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지나치게 인간적인 주인공을 대하고 있자니 참 가련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 난국을 그가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궁금증이 밀려왔다.
오로지 탐정 우카이의 활약만으로 해결이 될 줄 알았는데 그 또한 완벽한 두뇌를 갖고 있지는 않았던 터라 허점 투성이의 그의 실책을 막아준것은?
사건을 외면하고자 했던 귀차니즘 형사 스나가와 경부의 활약이 컸다.
작가는 주인공 류헤이의 관점에서만 서술하지 않고, 형사들의 이야기를 재치있게 넣어가면서 사건을 보다 치밀하게 이끌어주었다.
중간중간 재미난 부분들도 많았지만 역시 살인사건, 그것도 완벽한 밀실 살인사건이었다. 누구도 헤쳐나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 밀실을, 두 사람의 어설픈 활약, 그러나 참으로 촘촘한 안목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기도 했다. 우습지만 사건 해결은 더없이 진지하게..
독특한 맛이 강렬한 유머 미스터리였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이카가와 시 (오징어시)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이 나왔는데, 일본의 아주 유명한 몇 지역 외에는 지명조차 잘 몰랐던 터라, 가상의 도시인줄도 몰랐다. 이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첫 작품 이후 같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유머 본격 미스터리 후속작들이 연이어 나왔다고 하니 오징어 도시를 둘러싼 이후의 작품들도 기대가 되었다. 수수께끼와 같은 큰 웃음을 주는 그런 소설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재미난, 그러면서도 사건 해결이 진행되는 방식에 깜짝 놀라게 되었던 그런 소설이었다 말하고 싶다.
제목 자체부터가 아주 코믹하지 않은가? 유머 미스터리라고 해서 처음부터 헛웃음만 기대했다면 잘못된 기대를 한 것이고, 작품은 밀실 살인사건을 다루는데 유머를 가미했을뿐, 사건 해결을 해야하는 본질을 절대 잊지 않았다.
히가시가와 도쿠야. 앞으로 계속 알아가고픈 미스터리 작가였다.
잔인하고 두려운 그런 미스터리보다 나는 코지 미스터리, 유머 미스터리가 더 잘 맞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