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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이에게 배운다 - 부모와 아이가 모두 행복한 엄마 성장 에세이
김혜형 글 그림 / 걷는나무 / 2011년 10월
품절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네 살 우리 아기도 참 어른같을 때가 있다. 이미 한 인격체로 자라나고 있는데, 내가 어른이라는, 부모라는 이유로 자꾸 나의 뜻대로 좌우하려 할때가 많다. 내가 부모니까 가르쳐야지 하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쉽게 화를 내기도 하고, 일관된 모습을 보이지 않을때가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말문이 늦게 터진 편이었다. 엄마라는 말만 일찍 시작하고, 그 이후의 다른 말들을 쉽게 하지 않았다. 밥을 먹일때도 싫다고 안 하고 잘 받아먹다가, 너무 많거나 먹기 싫으면 뱉어내고서야 아기가 먹기 싫었구나를 알 수 있었다. 그 습관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서 먹기 싫은 음식이 입에 들어오면 자꾸 뱉어낸다. 그러지 말라고, 음식 뱉어내면 못 쓴다고 몇번 이야기를 했는데, 습관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이틀 전쯤 친구네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였는데, 6개월 빠른 친구네 딸은 자리에 앉아서 잘 먹었다. 우리 아이는 자꾸 장난치고 특히 입에 있는 음식을 자꾸만 뱉어내서, 나중에는 정말 내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던 것 같다. 그럴때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내곤했는데, 어느 육아서에서 "아이도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혼을 내거나 야단치지 말고 사람들 없는 곳에서 조용히 타일러도 충분히 알아듣는다."라는 말을 읽었던 기억이 나서, 아이를 얼른 안고,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 헤메었다. 아이는 "엄마, 왜 안고 가? 어디 가요?" 했는데 너무 화가 나서 "너 혼내러 가." 하고 무섭게 대꾸를 하니 아기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뷔페라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적한 곳이 드물었는데 그나마 조용한 곳에 가서, 조용히 타이르질 못하고 단호하고 따끔하게만 지적한다는 것이 좀 화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엄마는 또 금새 후회가 되었다. 아이가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화를 내었을까. 정작은 내가 부끄러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날밤 안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이 책을 읽다가 마음이 더욱 시려오고 말았다. 참 맑고 순수한 아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 아기에게 내가 너무 못나게 군건 아닌지.. 고칠 건 고쳐야 한다고 믿는 엄마지만, 훈육 방법이 너무 감정적이었던 것은 아닌지..어린 아이가 얼마나 놀랬을까 하는 마음에 너무 가슴이 아팠다. 자꾸 뒤척이는 아가 옆에 누워 살짝 아기를 안으니 아기가 잠결에도 푹 내게 안겨온다. 아기의 품이 그렇게 따뜻하고 보드라울 수 없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기는 "엄마, 내가 너무너무 예뻐?" 하면서 꿈결에도 그런 말을 했다. 평소에 너무너무너무 예쁘다고 꼭 안아주곤 했더니 엄마가 안아주면 그런 감촉과 느낌이 살아나나보다. "응, 너무너무 예뻐. 그리고 엄마가 낮에 화내서 미안해. 뱉어내면 안되는건데 그래서 엄마가 화가 났네. 그래도 엄마가 너무 화를 내서 미안해." 하니..아이가 더욱 꼭 안으며 괜찮다고 한다. 겨우 세돌을 넘긴 아기가 말이다.
이 책의 아이 이야기를 읽으며 엄마, 아빠가 곁에 안계실 미래를 불안해하는 귀여운 모습에서는 어릴 적 내 기억도 떠올랐고,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부모님이 안계실 상황은 생각조차 하기 싫다. ) 마치 동시처럼 아름다운 말들, 놀라운 말들을 내놓는 아이 앞에서는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었다.
사실 아이의 부모 또한 대단하다.
출판사 부장으로 꽤 높은 직급에서 유능하게 일을 해왔음에도 일에 치여 자꾸만 육아에 소홀하게 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경쟁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갑자기 벽을 느끼게 된 엄마의 소통이 시작되었다. 올라가기 힘든 그 위치를 선뜻 내려놓고 아이의 곁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은 자기 성취면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말이다.
아이를 일반 학교에 넣어 일반 가정과 똑같이 가르쳐도 아이는 자신처럼 모범생으로 자라날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와 다른 선택을 한다. 그렇게 차근차근 밟아온 자신의 생이, 마흔 다 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행복하다는 생각이 절대 들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사춘기인 아들은 다른 아이와 다르게 지금 언제나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놀랍게도 아이는 미안해, 고마워 라는 말도 순수하게 잘 하는 그런 아이로 자라났다. 아이가 얼마나 맑고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춘기 아이들이 얼마나 반항적인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도 지금은 이렇게 맑고 순수한 우리 아기가 사춘기가 되어 엄마 하는 말과 생각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하면 어떡하나, 우리 사이에 벽이 생기기 시작하면 어떡하나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곤 했는데 저자는 적어도 그런 벽을 느낄 새가 없이 아들과 남편과 행복하고도 소박한 일상을 펼쳐나가고 있는 듯 싶다.
사실 그들 가족은 어려운 결정을 했다.
대입과 취직 등을 목표로 끊임없이 몰아세우는 공교육을 떠나 초등학교때에는 대안학교에 보내는 결정을 했고, 학교가문을 닫고 난 후 시골학교에서의 3년을 보낸후, 중학교 이후는 홈스쿨링으로 마음을 정한 것이었다. 아이는 스스로 홈스쿨링을 선택하였고, 학교는 이를 포기라 불렀다. 아이는 EBS 교육 만으로 무난히 고입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스스로 선택한 일어 공부, 기타, 레고 동영상 제작 등을 재미나게 즐기며 전원 생활의 여유를 만끽하며 보낸다. 사춘기를 이렇게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가득 채우고 있는 아이가 우리 나라에 얼마나 될까?
아이는 애어른 같은 말을 특히나 잘 하였다.
선생님을 위로하기도 하고, 그랬다가 네가 선생이냐? 하는 냉소어린 답변을 받기도 한다. 나도 어릴 적에 동생이 뭐라고 하면 언짢아했던 기억이 있다. 하물며 어른이 자존심이 상했을법하다. 그러나 아이의 엄마는 달랐다. 아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잘못은 반성하고 뉘우칠줄 알았다. 엄마라고 해서 아이 앞에서 무조건적인 어른으로 군림하려 들지 않았고 아이가 옳으면 아이 말대로 하려고 노력을 했다.
아이는 치매 외할머니의 짜증이나 똑같은 질문 앞에서도 단 한번도 화를 내지 않은채 받아들였다. 화를 왜 내냐면서 오히려 화를 내는 엄마에게 할머니께 화를 내지 말라고 말을 하였다.
나도 참 화가 많이 늘었다. 자꾸 이렇게 화내는 모습이 익숙지도 않고 무척이나 싫다. 하지만 화를 내지 않으면 내가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아이는 이런 감정의 불필요한 소모를 없애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벌써 명상 수련을 할 줄 알고, 엄마에게 그럴듯한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네살 아기, 아직 어리다고 나의 소유물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착각하고 살았던게 아닌가 싶다.
아이는 작은 어른, 하나의 또다른 인격체인데, 아이를 바르게 가르쳐야한다는 착각으로 불완전한 내가 순수한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아이가 잘못하거나 하면 화를 내기에 앞서 화를 가라앉히고 조곤조곤 타이르며 바른 행동으로 이끌어주는 말로 아이에게 다시 일러주어야겠다.
그리고 저자처럼 아이의 말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조금더 귀를 기울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