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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호형사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절판
얼마 전 인터넷 뉴스에서 중국 소녀의 벼룩시장 물품판매가 소개가 된 적이 있었다. 인형, 명품 가방 등을 싸게 벼룩으로 내놓는 자리였는데, 엄청나게 많은 소장품들이 너무너무 비싼 명품들이라 헐값 판매를 의아해하니, 소녀네 집 자체가 무척 부자였고 아버지도 높은 고위직 관리라는 답변으로 되돌아왔으며 사람들은 그로 인해 엄청난 기사 조회와 함께 관심, 혹은 비난들을 덧글로 달았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서민들에게는 엄청난 위화감을 줄 부자들의 행태. 우선은 그들의 돈놀음이 고운 시각으로 봐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여기 떡하니 "부호형사"란 제목을 걸고 나온 소설이 있다.
2000년도를 넘어선 이후의 작품도 아니고, 심지어 1978년도의 작품이다. 아, 자그마치 몇년전이냐. 30년도 훌쩍 넘은 작품이랄까? 그런데 지금 읽어도 전혀 식상하지가 않다. 사실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센세이션이었을 신용카드 등의 이야기가 지금은 다소 대중화되었다는 차이 정도를 빼고는 30년 전의 작품이라는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시간차를 느끼지 못했다. 또한 부호형사라는 엄청난 갑부집 아들의 형사 행세도 그리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전형적인 일반형사와 서민을 대표하는 듯한 고즈카만이 간베 다이스케의 돈으로 해결하는 추리 방법을 못마땅해할 뿐이지만, 책을 읽다보면 간베의 안드로메다로 간 돈에 대한 개념 (그렇다고 아무데나 물쓰듯 쓴다는 것이 아니다. 그 나름대로는 정의 구현을 위한 미제로 남을뻔한 사건 해결에만 충실히 잘 사용하고 있었다. )이 돈으로 해결 가능한 새로운 사건 해결 능력에 어느새 빠져버리게 만드는 그런 새로운 재미를 주기도 한다.
이 작품이 2005년 후카다 교코 주연으로 드라마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한다. 원작소설과 만화의 주인공은 남자였는데 드라마에서는 여자로 주인공을 바꾸어 좀더 황당무계한 돈 놀이를 재현해내었나보다. 캐딜락을 타고 출근하던 간베 형사가 헬기를 타고 출근하고 (아마 30년 정도의 시간차를 넘어서기 위해 드라마에서 좀더 부각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우스텐보스에서 코끼리, 낙타 등과 식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는데, 소설 속에서는 그렇게까지 황당한 장면은 없다?

다만 사건 해결을 위해 없던 회사 하나를 덜컥 차려내고, (유령회사임에도 아버지 기쿠에몬의 전폭적인 원조로 전 호텔 사장 출신을 영업부장으로 내세우고 기타 중역진들도 모두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는 거장들로 구성이 되었다. 덕분에 사건 해결로 시작된 유령회사는 한달만에 기적적인 흑자를 내 아버지 기쿠에몬의 노여움을 사고 말았다. 아니 돈을 쓰고 오랬더니 벌어왔다고? 이 불효막심한 놈..이렇게 말이다.), 최고급 호텔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조폭들을 몰아넣는 정도(?)로 간베의 통을 과시할 따름이다. 물쓰듯 하는 그의 이면에 그를 한심하게 여기는 아버지가 있다면 그도 그렇게 쓸 수 없겠지만 눈물을 절절 흘리며 자신이 과거에 더러운 방법으로 축적한 부를 이렇게 사회정의구현을 위해 써주는 아들이 있어 행복하다며 울다가 눈이 뒤집혀 발작을 일으키는 개그 소재와도 같은 아버지가 등장한다. 현실에서는 더더욱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소설이기에 일어나는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다한들, 99개 가진 사람이 100개를 채우려고 1개 가진 사람 것을 욕심낸다하는 말은 들어봤을 지언정, 돈을 너무 많이 벌었다고 반성하는 아버지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았다. 소설이니까..소설이니까..
하지만 이내 오백만엔이 자신의 일년하고도 몇달치 월급임을 깨닫고 복잡한 기분으로 신음을 흘렸다.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 지 알 수 없었다. 다이스케의 금전 감각은 항상 그의 막대한 재산과 낮은 수입의 광활한 간극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164p
진지함 쯤은 저기 저너머로 보내버리고, 부호형사만의 매력에 빠져 재미난 시간을 보내보았다.
아, 이건 이래서 싫고 어떻고 그런 마음이 나는 들지 않았다.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소설,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라는 작품이 대재벌 가문의 상속녀가 형사로 등장해 집사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라고 하면, 이 책에서는 단지 출신 배경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 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그가 부호형사라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모두가 부러워할 그의 배경 중 하나일뿐.) 그의 재력으로 해결해나가는 사건 해결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볼 따름이다. 그래서 비현실적이지만 더욱 코믹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부호형사의 네가지 에피소드로 진행되는 이야기들.
읽다가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이 갑자기 소설 속 등장인물이 독자에게 말을 건네고, 이야기가 딜러가 카드 섞듯, 시간 순서가 뒤엉켜 버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어나가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들도 놀라웠다. 억지로 변화를 시도해보지만, 습작 솜씨가 부족한 경우에는 정말 어거지란 느낌이 들 정도로 이게 무슨 소리야? 싶은 글들도 있는데, 추리소설만 처음일뿐 SF소설로는 이름을 날리는 쓰쓰이 야스타카의 작품이어서 그런지 그의 새로운 방식은 다소 파격적인 느낌은 들었으나 이해하기 힘들 상황이라거나 어색해지지는 않았다. 어쩌면 30년 후의 미래 독자가 읽어 그런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점은 사건 구별을 위한 행간 구별이 없어서, 마치 두 가지 다른 배경, 사건 등이 뒤엉키듯 바로 연결되어 버리는 점이 너무 낯설었다는 점이었다. 아니 왜 이렇게 씌여 있지? 뭐가 문제가 있었던것 아니야? 라고 하기에는 모든 상황이 그래서, 의도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아니..왜? 였다.
작품해설에 그 부분이 나온다. 전혀 쓸데없지않았던 설명이 말이다.(난 정말 궁금했다구!)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자면, 이 단편집은 장면을 전환할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행갈이'기 없는데 이는 작가가 의도한 것이라고 한다. 321p
사건이 휴지기 없이 바로 그 다음으로 그냥 넘어가버리는 것. 그것이 혼란을 주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만 주는 아주 새로운 느낌이기도 했다.
첫 추리 소설을 내놓는다면서 작가는 참 이것저것 자기 나름의 것들을 많이 시도해본듯 하다. 작가의 유머감각을 마음껏 발휘한 그런 작품 같기도 하고, 30년후의 지금에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앞서나가는 감각을 지닌 작가이기에 (sf작가라 그는 시간 개념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178이라는 그의 놀라운 IQ가 뒷받침해주는 것일까?) 유지할 수 있었던 재미가 아니었을까도 싶다. 그 후로도 비슷한 시리즈를 내놓았을 법도 한데, 부호형사가 이 작품 하나로 끝났다는 것이 좀 아쉬웠을뿐. 2000년대 이후의 부호형사 이야기를 드라마가 아닌 원작 소설로 다시 한번 새로이 만나게 되는 것은 어떨까? 독자의 한 사람으로 업그레이드된 부호형사를 기대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