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 1 - 노몬한의 조선인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절판


아이 생각을 하면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아무리 씩씩하다고 해도 겨우 여덟살 아이다. 엄마는 커녕 친척조차도 없다. 제대로 살아갈수 있을까?

우리 아기. 건우야, 어떡하니. 아빠가 널 지키지 못했구나. 많이 울지는 않았니?건우야. 63p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말았다.

사실 슬픔과 고통에 내성이 약한 나는 잔인하거나 슬픈 내용의 소설이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읽기부터 겁을 낸다. 책을 읽으면 고통스러운 마음이 들것임을 짐작하면서도 읽기 시작한 것은 이재익 작가의 소설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카시오페아 공주, 압구정 소년들로 만났던 이재익 작가의 작품은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카시오페아 공주는 공포스러우면서도 다소 기묘한 느낌의 소설이었고, 압구정 소년들은 그의 자화상과도 같은 그런 면이 있었다. 이번 작품 아버지의 길은 그가 처음으로 집필한 역사소설이라는 데 흥미가 가 읽기 시작했다.



어린 네살 아기를 둔 엄마로써, 아이를 두고 일본군으로 징집되어 끌려가야했던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하기 조차 힘들정도로 숨이 막혀서 읽어내리기 힘들 것 같았는데, 잔인하게 슬픈 현실에 가슴이 아프면서도 책을 덮을 새 없이 읽히는 가독성 탓에 어느새 2권을 펼쳐 읽고 있었다.

사실 너무 힘들었다.

아이가 다섯살때 엄마는 독립운동을 위해 집을 나가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어린 아들이었다. 친척하나 없는 아들을 홀로 두고 전쟁터에 끌려왔을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을까. 아들 건우만을 생각하며 어떻게든 살아 돌아가고자 하는 가슴아픈 부정이 소설 내 흘러내렸고, 내 눈에서는 눈물로 흘러내렸다.



이야기의 첫 시작은 아버지 길수가 아닌 건우가 할아버지가 되었을때부터 시작되었다.

본인 자신도 딸과 사위, 손주 등과 함께 탈북을 시도했다가 혼자만 살고 다른 가족은 다 죽게 된 특이한 케이스의 경우로, pd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에게서 듣고자 했던 이야기는 탈북이야기였는데, 그보다 놀라운 아버지 노르망디 코리안의 이야기를 접해 듣게 되었다.



전 세계가 포화로 뒤덮여 있던 당시 그 조선인은 왜, 어떻게 2차대전의 전장을 뚫고 프랑스 유타 해변까지 가서 독일군 군복을 입었을까? 사진은 말이 없다. 인류 전체의 운명이 결정되던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그의 얼굴은 더없이 무심할 뿐이다.

방송팀과 영화팀은 기록을 쫓으며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하며 노르망디 코리안의 스토리를 재구성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와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진짜 노르망디 코리안의 아들이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18p



아버지 길수가 일제에게 끌려갈때 가장 증오하게 된 사람이 바로 아내 월화였다. 아내가 그렇게 떠나지만 않았더라도 어린 아들을 천애고아로 남겨두고 올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나 또한 조국 독립을 위해 자신이 낳은 아기를 팽개치고 나간 월화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설이니까 가능했겠지. 정말 이 세상 어느 어머니가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을까 싶었다. 애국이라는 거창한 대의명분때문에 자신의 피와 살로 만든 어린 아기를 두고 떠날 생각을 한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되지가 않았다. 나는 그저 엄마이기에, 엄마가 아닌 다른 삶을 살고자 했던 그녀가 이해되지가 않았다. 다행히 아이에게는 타인의 어머니와도 같은 사랑을 베푸는 아버지가 있었고, 아들은 아버지를 의지해 자랐으나, 일본군 앞잡이로 환골탈태하신 스기타라는 쓰레기같은 조선인때문에 아버지마저 잃고 말았다.



아이의 삶은 1부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아이가 느꼈을 절망.

여덟살 아이가 어떻게 그 혹독한 시기를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아버지의 길. 아버지 길수가 노몬한 (러시아와 몽골의 경계) 전투에서 일본군에 속해 소련군, 몽골군 등과 전투를 하기까지의 여정이 그려진다. 추악한 일본군의 모습들과 조선인들이 받는 끔찍한 핍박과 냉대, 그리고 상상할 수도 없는 위안부들의 처참함까지도..

길수의 이야기 외에도 정대, 영수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대의 연인인 명선 아씨의 이야기까지도 너무나 슬프게 흘러갔다.



너무 피곤해 잠을 청하려했는데 도저히 2권을 펼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결말로 1권이 마무리가 되어서 2부 앞부분을 펼쳐 정신없이 읽다말고 리뷰를 쓴다.

이렇게 무서운 시절이 있었구나.

머리로만 알고 있던 시절,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받아들일 수 없는 경험하지 못했던 그 시절에 대해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그 끔찍했던 순간을 책으로 만나려니 가슴이 너무나 아프기만 했다. 조국 전체의 고통이 한사람 한사람에게 치명적인 비극이 될 수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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