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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떠나보내기
이승욱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9월
구판절판
정신분석이란 사실 뭐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철저하게 아는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런 경험을 통해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반드시 따라오는 또 다른 소득이다.7p
사실 우리의 고통과 상처는 대부분 본질적으로 같다. 그리고 그것은 최초의 출발점이 있다.
그 상처의 시원을 알아가는 과정은 힘들다.
하지만 그것에 관해 다 알게 되었을때, 고통에 장악당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게 하는 그것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럴때 우리는 흔들림없는 삶을 살 수 있다. 8p
나도 고통에 대한, 특히나 정신적 고통에 대한 내성이 무척이나 약한 편이다. 이별을 두려워하고, 상처입기를 두려워한다. 이런 나이기에 상처 떠나보내기를 접하면서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이 책에는 저자의 상담 사례중 다섯 명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가 뉴질랜드에서 심리치료사로 활동하면서 치료했던 제니스의 사례, 그녀의 관계 집착으로 인한 자해 시도는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거의 너덜너덜해지다시피한 손목, 아이와 동반자살을 꾀해 너무나 사랑하지만 제대로 만날 수도 없는 딸, 갓 임용된 심리치료사로서 저자는 훌륭히 제니스를 우뚝 서게 만들었다. 사실 그녀의 사례를 읽으면서 저자만큼이나 힘든 느낌을 경험해야했다. 치료받는이의 고통은 심리치료사에게 전해지고, 그 기분은 100%까지는 아닐지라도 책을 통해 독자에게도 어느 정도 전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두번째 사례는 순간의 실수, 여성에게 실연당했다는 충격으로 갑작스럽게 속도를 낸 후 벌어진 교통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어버린 한국인 청년, 갓 스물 안팎의 청년 은철에 대한 이야기였다. 종손이었기에 할머니 할아버지께 소식을 전할 수도 없어 돌아가실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손자가 되어야했고, 아들의 처참한 소식에 아버지는 큰 한숨을 내쉬고 그것은 아이에게 또다른 충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청년 은철이 서서히 자신의 마음을 열어가는 이야기.
예기치 않게 닥친 재난 앞에 그로 인한 절망에 무릎 꿇지 않고 고통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일'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61p

비운의 가정사로, 아버지와 다른 남편을 선택해 살고 있으나 그 선택 역시 도피처였을뿐 그녀와 맞지 않는 짝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채영씨의 이야기. 평범한 주부의 우울증 같은 고민과는 좀더 다른 그런 상처가 있는 고민이었지만 저자만큼 그녀에게 철저히 공감하기는 조금 힘들었다. 그래, 많이 힘들어 보여 그런 생각은 들었으나 그럼에도 그녀가 선택하는 것은 그녀 자신을 분노하게 만드는 일 뿐이었다. 뭔가 스스로 다른 대안을 찾을 수는 없었던걸까. 많이 힘들었기에 분석가를 찾았을 것이고, 그녀는 분석의 끝에 몹시 앓고, 다시 부활했다.
그녀는 우울로 힘들어했지만 사실은 삶의 중요한 대목마다 분노로 힘들어했다. 자기인생을 참혹하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분노. 그렇다. 분노가 자신을 향할때 우울이 된다. 왜, 누구에게 분노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납득하지 못한다면 우울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도사리고 있는 평생의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교활'하게 행위해왔는지 통렬하게 깨닫고 그것을 멈추겠다는 결심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144.145p
또다른 주부 강미영씨의 이야기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지나치고 경제적으로 무능력해 자신을 자꾸 힘들게 만드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깊은 그런 이야기였다. 그녀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전차같은 면이 있어서 특히나 분석가까지도 힘들게 만들 정도로 저돌적인 그런 면이 있었고 그녀가 전하는 꿈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골룸처럼 늘어붙어 찍찍대는 남자라니..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졌다.
끝으로 어느 성직자의 환속과 재출가에 대한 이야기로 매듭이 된다. 사실 성직자의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기까지 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받고 싶은데 그 사랑이 이뤄지지 않아 상처를 입는다. 앞서 말한 채영씨도 술취해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싫어했지만 딱 한번 머리를 쓰다듬어준 그 사랑의 기억만은 너무나 또렷이 기억을 했다. 사랑받지 못한다는것이 그녀를 슬프게 하는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마지막 성직자의 경우도 그랬다. 낫기 힘든 병에 걸린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가 나으시면 신께 귀의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신기하게 나으시자, 정말 그는 귀의를 했다. 그런 그의 출가의 의도를 몰랐던 어머니는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서도 아주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나는 네가 사회에서 할 일이 없어서 출가한 줄 알았다." 256p 본인의 삶이 힘들었기에 언제나 항상 튕겨내듯 살아온 어머니였기에 아들에게 주는 상처도 너무나 많았다. 특히 아들이 어릴적부터 말이다. 아들을 하나 둔 엄마로써 어린 아들에게 내가 상처를 주지 않는 엄마가 되도록 무던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게 하는 그런 사례였다. 분석가 역시도 초등학생 시절 엄마에게 반항하다가 집을 나가겠다 하니 옷까지 다 벗어놓고 가라고 해서, 팬티까지 벗고 말았다는 굴욕적인 사례를 들었는데, 마침 집에 와있던 아빠네 회사 누나들 앞에서 알몸을 보여야했던 그 수모를 잊지 못하노라고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그를 수모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의 고집을 꺾기 위해서였을텐데 아들은 끝까지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모습에 어머니는 더욱 화가 났을테고..
아이가 아닌 부모 입장이 되고 나니 아이 훈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깨닫는다. 네살밖에 안된 어린 아들인데도, 고집이라는게 생겨서 말을 잘 안들을때가 있는데 그럴때 엄마가 해야한다는 쪽으로 자꾸 주장을 해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나까지 화가 날때가 있다. 아이에게 화난 모습을 보이는게 좋지도 않고, 극단적인 표현을 하는 것도 정말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가 내 말을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램에 쉽게 화를 내곤 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더군다나 아이가 점점더 성장하는 앞으로는 그게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일임을 깨달았다.
상처 떠나보내기를 읽으며 내 마음의 상처를 되돌아볼 시간이 될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닿지 못했다. 다만 상처입은 사람들의 근원을 들여다보면서 공감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던 시간이었는데 아이에게 상처가 될 말이나 행동은 부모로써 참으로 조심해야할 부분이라는 것을 깊게 깨닫게 된 책이었다. 길 가던 임산부는 임산부만 눈에 띄고 신발 사고 싶은 날은 신발만 눈에 띈다는 이야기처럼, 내 눈에는 아이와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눈에 들어올 그런 때라 그런지 모르겠다.
심리 분석에 대한 책이라 지루할 줄 알았는데 날을 거의 새다시피해 몹시 피곤한 때에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긴장과 흥미가 높은 그런 책이었다. 일반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책이겠지만 특히나 심리분석 초년병들에게는 다른 사람 상담 사례를 참고할 수 있는 중요한 지침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