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도시
패트리스 채플린 지음, 이재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11년 9월
절판


성배의 전설 하면 영화를 보러 극장에 두번이나 가게 만들고, 책까지 사서 너덜거리게 보게 만들었던 다빈치 코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로서는 꽤나 충격적인 그런 이야기였다. 이후로도 성배 전설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고, 여전히 성배는 놀라움을 가득 안겨주면서 호기심 가득한 그런 소재가 되었다. 어찌 그 놀라운 소재가 오랫동안 비밀로 묻혀있다가 대중 앞에 떡 하니 등장하게 되었는지 소설의 이름을 빌었다 해도 정말 대단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또다른 성배의 이야기, 그것도 실화를 바탕으로 씌였다는 이 책 비밀의 도시를 읽게 되었다.

"물론이야. 여기는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니까."
"전쟁이요?"
하지만 전쟁은 답이 아닌 듯 했다.
"시공을 초월하는 영적 여행. 지로나를 지속적으로 다른 영역들과 연결하는 여행." 131p

15살의 어리고 당돌한 소녀 패트리스는 친구와 함께 과감히 집을 떠나 정착하게 된 스페인의 지로나에서 운명과도 같은 연인 조세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평생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이해하기 힘든 그런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진실로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 둘이면서도 둘은 각각 다른 사람과 결혼해 다른 사람의 아이를 낳게 되는 그런 운명을 지니고 있었던 것. 조세는 "보관자"로써, 중요한 비밀을 간직하고 언제나 베일에 쌓인 사람이었던 반면, 너무나 예리한 감을 지녔던 패트리스는 그런 조세 주변을 맴돌며 자꾸만 더욱 많은 비밀에 접근해가고자 한 그런 인물이 되고야 말았다. 그래서 어쩌면 둘은 너무나 사랑하면서 평생 물과 기름처럼 겉돌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그때 나는 그곳에 있어서는 안될 것을, 심지어 사나운 악몽에서도, 갈 데까지 간 몹쓸 상상 속에서도 있을 수 없는 것을 보았다. 사제 옷을 입은 시커먼 형체였다. 그 형체는 '십자가의 길'이라는 조각 앞에 웅크리고 있었다. 사제의 눈빛이 칼처럼 내 눈 속에 휘둘려 꽂혔다. 수백년동안 상상 불허의 방식으로 존재하면서 쌓이고 쌓인 괴력으로 가득한, 칠흑같이 검은 눈이었다. 그리고 사제 뒤에 있는 먼지와 어둠 속에서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
..사제가 진하고 깊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오직 황금 잔만을 통해서." 179p

책의 표지에서부터 성배전설이 언급되어 있기에 조세가 숨기려했던 진실이 사실 성배를 둘러싼 것임은 일찌감치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그의 연인 패트리스만 뒤늦게 알았을 뿐이었다. 연인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싶은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없이 감추고 드러내질 않았다. 심지어 정말 중요한 목걸이를 그녀에게 줬으면서도 그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 그녀가 그와 헤어졌을때 소홀하게 그 물건을 팔아버리게 만들기도 하였고 말이다.

성배전설의 진실을 담은 실화라 하였기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는데, 초반에는 성배진실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연인의 사랑, 그것도 비밀에 지나치게 얽매인 조세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궁금증 아닌 궁금증만 쌓이게 만들어 읽는 속도를 더디게 만들었던 점이 아쉬웠다. 그들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게 되고, 그 와중에 실제로 많은 성배에 대한 비밀이 누설된 이후에 비로소 조세도 그녀에게 성배에 대한 이야기들을 흘리게 되었다. 물론 그녀도 다른 책들을 통해 성배와 갑자기 부유해진 프랑스 신부 그리고 조세 주변의 의아한 많은 인물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고 말이다. 실재했다는 두 연인을 다룬 이야기라 성배보다 어쩌면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더 초점이 맞춰져야했는지 모르겠지만, 생각외로 성배의 진실은 손에 잡힐듯 말듯 하다가 여전히 그 자리에, 지로나의 그 곳에 남겨진 것 같아 안타까웠다. 사실 성배 전설을 다룬 책이 완벽한 결말에 가까워지기는 너무나 힘든 일이겠지만, 그래도 뭔가 더 독자를 확 끌어당길 그런 흡인력은 떨어졌던 것 같다.

사실 성배전설로 읽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이 이 책의 작가가 찰리 채플린의 며느리가 쓴 책이라는 점이 나는 더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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