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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키
존 윈덤 지음, 정소연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9월
품절

초등학교 시절 책을 좋아한다 생각했지만, SF 쪽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존 윈덤이라는 이름도 낯설고, 그 밖에 특별히 생각나는 SF작가도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 영화도 SF와 액션 장르를 좋아하게 된건 거의 대학생 이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전에는 특별히 좋아하질 않았다. 지금은 없어서 못 볼정도로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가 되었지만 말이다.
이 책 초키, 다 읽을때까지만 해도 이 책이 1968년 작품인줄 미처 모르고 있었다. 태어나기도 전의 작품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읽는 내내 얼마나 빨리 책장이 넘어가는지 휙휙, 그 다음장을 궁금해하면서 빠른 속도로 책을 넘겨서 거의 잡자마자 금새 다 읽어버린 것 같다.
지능이 하나도 없다는 개념에 대해선 이해하고 있었다.
'그냥 지능이 하나도 없는 거죠. 하지만 일단 지능이 있다면 어떻게 거기에 한계가 있을 수 있어요? 아주 작은 지능을 조금씩 쓰고 쓰면 엄청 오래 걸릴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답이 나와야만 하지 않나요? 어떻게 지능에 한계선 같은게 있다는 거예요?'
35P
평범했던 12살 아들 매튜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부모가 봐도 너무나 낯선 풍경,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와 분명한 대화를 나누고 있고 대화 내용 또한 아이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그런 높은 수준의 대화였다. 아이가 이해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어휘까지 구사해가면서, 막막한 상황을 대답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그런 모습을 접하게 된다. 당연히 부모로서는 아이의 그런 모습을 걱정하게 되고, 아이 스스로도 자신이 만난 '초키'라는 존재에 대해 부모님과 동생 폴리 말고는 아무에게도 누설하지 않고 생활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수영을 전혀 못하던 매튜가 폴리를 구하기 위해 기적적으로 수영을 해내는 (그것도 너무나 능숙하게) 사태가 발생하고 그 일이 지역 신문을 비롯한 여러 언론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또 매튜가 그리는 특이한 시선의 그림이 천재의 그림이라 소개되어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를 한번 전문가와 만나게 한 결과 아이가 귀신들림 현상과 관계있을 수 있다는 말에 부모는 특히 엄마인 메리는 크게 낙담하고 아이를 걱정하게 되고, 더이상 평범할 수 없는 아이를 언론과 사람들은 가만 놔두질 않았다.
한때 개그 소재로 많이 이용되었던 동수라는 가상의 투명인간 친구, 처음에 초키 이야기가 나오기전에 폴리 또한 거의 1년가까이 피프라는 가상의 친구를 만들어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는 대목을 듣고 놀랍기만 했다. 얼마전 읽은 책에도 그런 소재가 꽤 당연하게 나왔었기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아주 한순간이 아닌 꽤 오랜동안을 그렇게 가상의 친구를 만들어 지낼수 있다는 믿음이 우선 놀라웠는데, 중요한 것은 초키는 그런 가상의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귀신들림 현상에 대해서도 매튜의 입장 뿐 아니라 언젠가 봤던 티브이 프로의 한장면이 떠올라 잠시 섬찟해지기도 했다.
사람들이 흔히 미쳤다, 귀신들렸다라 말하는 부분에서 그들이 보고 듣는 세상이 정상인 다른 사람들 귀와 눈에는 전혀 황당하고 두려운 일일 수 있지만, 티브이에서 보여주는 미친 사람들이 보는 영상은 그럴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기때문이었다. 그때의 예를 들자면, 옛날의 한국인의 몸에 더 오래전의 서양 사람의 혼이 씌여서 서양 사람들의 체험을 이야기하게 되면 전혀 다른 환경인 마을 사람들에게는 혼이 씌인 한국인이 정말 두렵고 무서운 이야기만 한다고 들릴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미친 사람들이 봤다, 들었다 하는 그 부분이 아주 오래전 서양의, 혹은 우리가 모르는 세상의 이야기라면.. 하는 것이 그때 그 프로 (아마 서프라이즈나 그런 프로가 아니었을까 싶은데)를 보면서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은 대목이었다.
분명 책에서 매튜는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초키라는 보이지 않는 친구,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게 된다.
다행히 그 부모 중 한사람인 아버지가 초키를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아들을 평범한 부모들처럼 정신과 의사 앞으로만 들이밀려 하지 않고, 진정한 믿음으로 기다려줄 수 있었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이 눈에도 보이지 않는 사람 이야기를 하고, 가끔 그의 의지로 움직일수도 있다고 하는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부모들이 걱정하고 염려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충분히 바르게 처신했다고 믿는다.
순수한 아이의 영혼으로 마음껏 무엇인가를 받아들이고 전파하기까지를 가만 놔두지 않는 현실. 지극히 이기적인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동심으로만 바라볼수있는 그림책 세상에서는 무한한 상상이 가능하지만, 어른들의 책으로 돌아오면 너무나 아쉬운 점이 항상 그것이다. 세상에 더이상 정의로만 돌아가는 것은 없고, 이익집단의 상관관계 등을 고려하여 더이상 환타지가 존재할 수 없게 분석하고 갈취하고 파멸시킬지 모를 눈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으니 말이다.
참, 재미있는 소설이었는데 갑자기 삼천포로 빠져서 급 흥분해서 마무리를 하고 있는 깊은 밤의 내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