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5 - 다시 금강을 예찬하다, 개정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5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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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있는 내게 여동생이 아니, 문화유산답사기가 벌써 5권이 나왔어? 라고 물었다.
6권도 나왔고, 이제 곧 7권이 나올 예정이야. 4권과 5권은 북한 편인데 금새 절판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몰랐던거구, 나도 얼마전 6권을 읽고 나서야 다시 5권을 읽기 시작했어. 1권부터 5권까지 다시 개정증보판으로 나왔거든.이라고 답을 했다.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곳, 북한 문화유산답사기는 우리나라나 해외 여행기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저자님이 금강산 답사기를 연재할 즈음에는 북한 금강산 여행길이 뚫리기 전이었기에 대표로 보고 전해주는 느낌으로 써주시다가, 금강산 관광길이 뚫리고 나자 현대 금강호를 타고 다섯차례를 답사하고 나서야 금강산에 대한 문화유산답사기로 새로이 써내게 되었다. 지금 또다시 끊겨버린 금강산 답사길. 이 책에는 분단의 아픔이라는 현실이 여실히 반영이 된 터라, 읽는 느낌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그런 문화유산답사기가 되고 말았다. 읽으면서도 언제 우리가 이 곳을 또 가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함께 하는 그런 느낌.

잠시 열렸던 금강산 탐승길에서도 모든 것을 볼수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다. 금강산 22개 명승구역 중 3.4 코스를 볼 뿐이고, 옛 사람들의 탐승자취가 집중된 내금강 만폭동은 금강산의 백미라 할 곳인데 남한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다 하였다. 유홍준님은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기전인 1998년 두번째 방북때 강력히 주장을 해서 장연사터, 장안사터, 삼불암, 백화암, 표훈사, 정양사, 보덕암, 마하연, 묘길상 등이 줄줄이 늘어서있는 내금강에 들어가는 영광과 행운을 얻게 되었다 한다. 분단 이후 남한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외금강만 다룬 반쪽짜리 책이 아닌 내금강까지도 직접 다녀온 유일한 분단이후 남한 작가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되었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이라는 노래말과 , 장안사라는 제목의 장하던 금전벽우 찬재되고 남은 터에로 시작되는 노랫말은 내 입에서도 쉽게 흘러나오는 노랫말이건만, 정작 금강산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절경에 큰 관심을 두지 못한 까닭이었다.

저자가 보여준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사진 뿐 아니라 무수한 명사들의 감탄과 옛 선조들의 찬미어린 시, 그림 등에서도 그 흔적을 많이 남기고 있었다. 나만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구나, 관심사밖의 일에는 유난히 무심한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금강산을 그린 그림을 모으면 미술관이 되고 금강산에 관한 글을 모으면 도서관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금강산을 읊은 시와 기행문은 많고도 많다. 통일 신라의 최치원 이래 내로라하는 시인과 묵객, 그리고 명인, 명현, 명사 치고 금강산을 다녀가지 않은 이가 없고, 금강을 노래하지 않은 이가 없다고 할 정도다. 26p

1926년 당시 스웨덴의 황태자인 구스타프가 신혼여행으로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을때..중략.. 그는 금강산의 비경을 탐승하고는 감격하여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신 엿새 중 마지막 하루는 오직 금강산을 만드는데 보냈을 것 같다."고 찬미했다. 29p

사실주의, 민족주의, 낭만주의가 하나로 육화되어 내던지는 말 한마디가 곧 시가 되는 신묘한 경지의 시인 고은 선생도 만물상의 기기묘묘한 영봉을 치켜 올려다보고는 이렇게 영탄조로 말했다.
"아! 미치겠구나! 이런 절경을 보고도 실성하지 않는 놈이 있다면 그놈이 실성한 놈이다."31p



금강예찬에 대한 수많은 명사들의 이야기로 금강에 대한 기대감을 가득 채우다가 실향민들과 함께 한 금강호의 여정에서 금강산 관광이 단순 관광이 아닌 뼈에 사무칠 그리움일 실향민들의 가슴 끊어지는 통곡이 글에 담기기도 하였다.

2부와 3부에서 본격적으로 외금강과 내금강에 대한 설명이 들어가는데, 딱딱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정보와 함께 편안하게 구술되는 재치어린 입담들이 참으로 좋았다. 나 또한 언제 가볼지 모를, 어쩌면 평생 가보지못할 금강이기에 남한을 다룬 다른 문화유산답사기들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읽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누군가는 다녀온 곳이고, 옛 선조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우리 땅 그 곳임에도 평생가도록 한번도 못볼수 있는 곳이라 하니,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바퀴를 돌아 가야하는 그 어떤 곳들보다 더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너무 아쉬웠다. 글로, 사진으로만 만나야 하는 곳.

더욱 안타까운 점은 너무나 그 금강이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안심대에서 바라보는 만물상은 기암괴석의 신비로움을 한껏 보여준다. 헤아릴수없이 많은 봉우리들이 저마다의 표정을 갖고 장대하게 펼쳐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온갖 만물의 상이 저기 다 있다고 해서 만물상이라고도 한다. 본래는 하느님이 천지창조를 할때 각 물체의 상을 초 잡아본것이라고 해서 만물초라고도 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만물초를 일본어로 발음하려면 음상사 현상이 생겨 초를 상으로 바꾼 것이 오늘날까지 만물상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183p

아무리 보아도 만폭동의 산과 계곡은 더없이 잘 어울리는 조화의 극치였다. 팔담의 여러 못은 저마다 크기와 생김새에 어울리는, 혹은 곧고 혹은 누운 폭포를 어깨자락에 척 걸치고 있는 것이 보기에도 신기하다. 게다가 향로봉 산마루에는 쭈그리고 앉아있는 사자바위가 있고, 법기봉 꼭대기에는 참선 자세로 앉아있는 부처바위가 있으니, 그 기발하고 신기함은 산과 계곡이 서로 뒤지지 않는다. 그러니 만폭동에 오면 유람객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가슴이 놀라 맥박이 빨라진다고 한 것이 전혀 과장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답사객의 혼을 빼앗는다. 323p

짧은 글로는 차마 유홍준님의 금강산 예찬을 평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가보지 못하기에 그 아름다움을 글로 사진으로 상상할 수 밖에 없는 곳.
금강을 구구절절 예찬하고 있는 유홍준님의 혼이 담긴 글을 그저 읽고 상상할 수 밖에 없었다.
중국과 일본의 절경과는 또다른 멋이 있다는 우리만의 금강산.
조선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그 아름다운 명소가 북한만의 명소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명소가 될 날이 언젠가 오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책에 대한 홍보글이 아닌 소신껏 작성한 서평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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