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그래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8월
품절


무척 힘들었던 한동안.. 무척이나 징징거리면서 살았던 때가 있었다. 나도 그렇게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내가 싫었지만 입밖에 내놓지 않으면 참 참기 힘들었던 때였다. 옆에서 듣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왕 만나는 사람들, 웃고 떠들고 (물론 세상 살다보면 웃고 즐길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즐겁게 만나고 싶은데, 만날때마다 인상 찌푸리게 하면 아마 만나는 사람도 무척 힘들었을 듯, 그러던 때가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어 죽겠다 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어도 정말로 죽어야겠단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다.
죽지그래.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아사미라는 한 여자가 죽었다.
그리고 겐야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원불명의 남자, 스스로는 사회적 무능인인 머리도 나쁘고 직업도 없고 아르바이트도 수시로 짤린다는 젊은 남자 하나가 아사미의 죽음을 캐고 다닌다. 아니, 아사미의 지인들에게 아사미에 대해 묻고 다닌다.

아사미에게 유일하게 기댈 마음을 가졌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농락하고 만 무능한 직장 상사, 드러내놓고 내세우지도 못하면서 결과적으로는 1000건도 넘는 문자로 지독하게 아사미를 괴롭힌 옆집 여자, 아사미를 물건처럼 건네받고 거의 물건취급하다시피한 야쿠자 애인, 무능한 형편에 언제나 남을 원망하고, 딸마저 헐값에 야쿠자에 팔아버린 생모, 그리고 아사미와는 사체로 만난 형사까지..
그들에게 겐야가 찾아가 물어보는 것은 아사미에 대해 듣고 싶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사미와 관련된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변명을 하기에 급급하다.
나는 죽은 아사미의 누구가 아니라, 아사미가 나의 어떤 관계일 따름이다라고..
지독히 이기적인 발상으로 그들은 자기 자신을 변명하기에 바빴다.
사연도 구구절절하지만, 이야기를 듣다보면 아사미가 불쌍해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죽음도 안타까운데, 그녀의 삶 자체가 더 지독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자기 변명에 급급한 이들을 보면서, 겐야는 "죽지 그래." 라는 말한마디로 그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어버린다.
그 전까지는 그래도 좀 얌전하게 들어주고 맞장구쳤던 그였지만 죽지 그래, 그 말이 마법의 힘을 지닌듯, 그는 하고 싶은 말들을 나름 조리있게 늘어놓으며 화자의 말의 허점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다시금 짚어준다.

새로운 느낌이었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책은 처음 읽는 책이었는데.. 그 이전의 그의 소설과는 느낌이 좀 다른 책이라 한다.
어쨌거나 너무나 독특한 두 주인공(?) 아사미와 겐야의 이야기가 몹시 색다르게 다가온 그런 책이었다.
죽지 그래.
죽음이란 그렇게 쉽게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나보다.
힘들어죽겠다. 짜증나 죽겠다.괴로워죽겠다.이젠 그런 말을 하기전에 좀더 생각해보고 말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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