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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소설을 쓰는 내내 소현의 고독이 내 몸속에 들어와 늘 어딘가가 아팠다. 336p 라는 작가 김인숙님의 말처럼 소현은 독자들에게도 가슴깊은 슬픔을 주는 소설이었다. 1년이 넘은 후에 다시 읽은 소현은 여전히 가슴 아픈 소설이었다.
비루함의 너머에 있는 것, 혹은 그 중심에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언젠가는 이루어져야만 할 꿈이었다.
'내가 저들의 세자이다.'
말 등위에서 세자가 속으로만 말했다. 208p
적장 앞에 무릎을 꿇는 아비의 굴욕을 보고, 왕세자의 신분으로 적국에 볼모로 끌려가는 수치의 세월을 살았다. 그동안 그가 나라를 등한시한것도 언행을 함부로 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속으로 삭여가면서 인내하고 또 인내하였을뿐.. 그 무서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임금은 자신의 아들을 버렸고,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참으로 가혹한 현실이었다. 역사에 기록된 사실은 마치 세자에게 문제가 있는 듯 기록되었으나, 인조가 세자비와 원손을 포함한 세자의 모든 아들들을 죽인 것을 보면 분명 세자의 죽음 또한 학질이 아닌 인조의 명을 받은 일일듯 싶었다.
흔에게는 그것이 모든 것이었다. 흔이 자신이나 아비의 영광보다도 더 세자의 영광을 꿈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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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이것이 세자의 보상이란 말인가. 이것이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그 나라의 백성에게 주는 보상이란 말인가. 252p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와 그의 심복과도 같았던 심석경, 그리고 심석경의 연인이자 고관대작의 딸이었으나 적국에 끌려와 적국관리의 여자가 된 흔의 이야기까지 역사에 픽션을 가미한, 그러기에 생생히 펼쳐내질 수 있었던 과거의 이야기들이 우리 곁으로 살아돌아왔다. 잊고 있었던.. 아니 기억 못했던 역사의 슬픈 한자락을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작년에 읽을 적에도 굴욕적인 세자의 이야기가 진실로 가슴아팠으나 더욱 속상했던 것은 그런 세자의 고독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아비의 부덕이었다. 왕은 임금으로써 너무나 잔인했다. 유약했던 그가 유독 자신의 아들에게만은 관대하질 못했다. 물론 아들이 하나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수 있겠지만, 왕의 자리가 그런 자리라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닐지라도 나는 왕의 자리에 오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내 아이의 목에 칼을 겨누는 자리에 어찌 오를 생각이 들겠는가. 소인배의 생각일 수 있겠지만 조선을 사랑한 세자를 저버린 왕의 마음이 참으로 간악하게만 느껴졌다.
세자가 석경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불안이 아니고 노여움도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슬픔이었다.
아비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아비에게버려졌고,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났으나 나라에게 버려진 목숨이었다. 323p
세자와 석경, 그 둘은 다른 몸이나 같은 이야기를 흘려내는 듯 했다. 그래서 더 구슬펐다. 세자가 자식처럼 여기며 의지했던 석경과 칼을 맞고 의식이 흐려지는 순간에도 세자 저하를 외쳤던 석경의 이야기, 세자의 꿈이, 그가 원손과 함께 펼쳐내고팠던 조선을 향한 꿈이 펼쳐질 수 있었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또 바뀔 수 있지 않았을까..
강해져야한다는 것을, 약해지면 언제나 달려들 준비가 되어 있는 수많은 세력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나라도, 나도 모두가 강해져야 함을..
그 이야기가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던 귀하신 분의 이야기, 소현 세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