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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그 여자의 파리 - 늘 낯선 곳으로의 떠남을 꿈꿨던 17년 파리지앵의 삶의 풍경
이화열 지음 / 에디터 / 2011년 6월
17년간 파리에 살고 있는 이화열님의 에세이.
처음에는 현지인의 파리에 대한 여행 에세이인줄 알았다. 제목만 바라봤던 나의 착각이었던 것.
저자 이화열님은 그래픽 디자이너로 몇년 전부터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쓰고 있다고 저자 소개글에 나와있듯, 정말로 진정한 파리지앵들의 인생 이야기이다.
50년된 가구가 낡아서 수리하는 가격이 그 비슷한 가구 사는 가격과 맞먹는다면 프랑스 사람들은 그 돈을 주고 수리합니다. 그 가구에는 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48p
우리나라 사람들로썬 이해하기 힘든 파리지앵들의 정서. 낡은 가구 수리비가 많이 들어도 가구에 얽힌 추억때문에 수리비를 물고서라도 고쳐 쓰겠다는 그 마인드에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나와 신랑만 해도 수리비가 조금만 많이 나와도 아예 새로 사는게 낫겠다 쉽게 포기해버리고 마는데 (비싼 값에 수리를 하면, 어차피 한번 고장나기 시작한것 계속 고장날것이라는 생각때문에 ) 수리한다고 새것과 같아지지도 않을 낡은 가구를 다시 고쳐 쓴다니, 하나하나의 진정한 차이를 짚어보는 그런 인생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널 내 스카프와 같이 만날 수 있을까? 55p
소개팅으로 만난 올리브, 그 파리 남자에게 먼저 전화해 그녀가 두고온 스카프와 함께 만나고 싶다고 당당히 프러포즈를 한 멋진 여성. 저자는 참으로 당찬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먼저 이야기하고 싶어도 혹시나 거절당하면 무슨 창피람? 하는 생각에 언제나 남자쪽 생각에 초점을 맞췄던 나랑은 한참을 달라도 달랐다. 그렇게 그들은 스카프 한장이 인연이 되어 데이트하기 시작했고, 둘 사이에 이제는 너무나 예쁜 아이들이 생겼다.
크레프와 무가당 요플레에 넣는 크리스털 설탕, 요리에 필요한백설탕, 브렘 브휠레에 얹어먹는 흑설탕, 아이스 설탕도 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떨어지면 올리브는 다급하게 포스트 잇 위에 적는다.
'크리스털 설탕을 살 것, 잊지 말것.'
..중략..
"대충 살아!"라고 할때마다 올리브의 대답은 똑같았다. '아니, 즐거움을 누리는 데 필요한 장치를 왜 철회하라는 거지?"66p
휴가지에서 책을 읽다보니, 또 운좋게도 부모님과 함께 한 여행이라 아이를 돌봐주시기도 해서, 조금은 여유롭게 책을 읽다보니 꼼꼼하게 즐기며 읽을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인생 이야기중에서도 저자와 남편 올리브의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모르는 파리지앵보다 (한국인이라 더 친근감 드는, 게다가 글을 쓰고 있는 저자라 아무래도 본인에 대해 가장 자세히 알 ) 저자의 이야기라 더욱 재미났는지 모른다.
설탕의 종류가 그렇게 다양한지, 그녀 말대로 헝그리 정신에 입각한 우리 사람들에게는 그닥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나 또한 설탕이 없으면, 꿀, 아니면 올리고당, 그것도 없으면..이런 식으로 대체해서 살고 있는 중이고, 크리스털 설탕은 무엇인지 (슈거 파우더 같은건가?) 생소해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남편의 말이 참으로 여유롭다.
어쩌면 지극히 파리지앵스러운 발상인지도 모른다.
벵상과 이자벨, 13구의 라뷔토카이의 큼직한 아파트에 살면서 1년에 12주의 바캉스를 사용할 수 있으며, 불안정한 수입때문에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다. 203p
정말 부러웠던 기나긴 휴가. 유럽인들이 일년에 한두어달 정도의 휴가를 쓴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12주면..음.. 3달인가? 거의 한달에 1주 꼴로 쉰단 이야기가 아닌가? 물론 붙여서 쓰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고, 중산층 정도의 삶을 누리는 사람들의 휴가인 것 같기는 했는데..
올 여름 휴가를 3일로 잡고 있는 우리 신랑을 생각해보니 정말 너무나 부러운 그런 상황이었다.
너무 부러워 그 이야기를 하니, 프랑스 사람들은 돈을 모으기 보다 바캉스에 가서 다 쓰고 즐기는 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듣고 산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것도 같다.
복지가 잘되어 있어서일까? 아니면 정말로 그들이 풍류를 즐기기를 좋아해서일까? 책에는 벵상 이야기뿐 아니라 실제로 연금과 실업급여, 그리고 최소한의 일로 부유하지는 않으나 평온한 삶을 살고 있는 그런 친구의 이야기도 나온다.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 게다가 한국에서도 하루가 다르게 튀는 집을 사고, 또 살림등을 장만하고 미래의 노후 대책등을 위해서라도 일개미처럼 바쁘게 살지않으면 안된다 생각했는데, 파리의 베짱이들은 참으로 행복하게만 보이니 갑자기 12주 12주 하면서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신랑 휴가없다고 나 혼자 놀러다니니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좋지도 않았는데..
그렇다고 같이 놀자고 졸라봤자, 생계 걱정은 않는다며 철부지 소리나 듣기 쉽상이니.. 우리나라의 정서상으로는 힘든 상황일수밖에 없는것같다.
부러운 이야기들, 그리고 어찌 보면 갑갑한 A/S와 너무나 자유로운 방식들, 지금의 내게는 지금의 삶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한국, 이 땅에서의 삶이 말이다.
파리지앵들을 통한 파리의 삶, 저자를 통해 즐겁게 만나볼 수 있어 유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