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지엔느
이기주 글.사진 / 무한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감성 포토 에세이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있는
파리에 파리지앵이 있다면 서울에는 이들이 있다. 서울지엔느.
처음에는 이 표지의 글을 읽고 서울의 멋진 곳들을 담은 일상 여행 산문집 같은 책이 아닐까 했다. 여행이라면 책으로 읽든 직접 다니든 사족을 못 쓰는 나인지라 파리지앵이 아닌 서울지엔느의 모습을 어떻게 작가가 그려냈을까 호기심 가득하게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작은 이유 하나를 더 달자면 내 나이 또래의 작가가 쓴 글이라 하는 점도 한가지 더 추가가 되었다.
비슷한 또래, 성별도 다르고 지금은 사는 지역도 다르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아기엄마로써 나를 많이 잃고 살고 있는 현재의 내 모습을 되돌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책을 읽고 나니 전자보다는 후자의 이유로 선택함이 옳았다는 것을 알았다. 여행 이야기가 아닌 인생 이야기였던 것. 치열하게 살아 온 그가 선배라면 선배일 수 있는 입장에서 또 나이를 먹어가며 겪는 이런 저런 고민과 사색에 대한 이야기가 멋진 사진들과 함께 책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따뜻한 어조로만 씌여진 글이 아니라 기자출신답게 따끔한 일침이나 충고도 잊지 않는다.
참, 작가는 경제부, 정치부 기자를 거쳐 2010년 헌정 사상 최초로 공채모집한 청와대 행정관 공채에 합격해 대통령 연설문을 작성하기도 한 일꾼이다. 그의 경력을 생각해보면 글이 참 딱딱하게 느껴질 것 같았는데 의외로 그는 글에서 읽는 재미를 주어야함을 놓치지 않았다.
긴 산문으로 질책하기보다 마치 시와 같은 쉼과 여운이 있는 글들로 (시는 아니지만 글은 마치 시와 같은 구성으로 쓰여있었다.) 읽는 독자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행간을 생각하듯, 그의 글을 읽으면 사이사이 내 생각도 끼워넣을 수 있는 그런 여백이 주어지는 것이다.
"아침에 테이크아웃 커피 마시면서 출근하는 게 내 직장생활의 유일한 낙이야. 허허."
(외모상으로는 전혀 커피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육중한 체구의 선배가 커피 한잔을 신주단지 모시듯 들고 가는 모습은 늘 경쾌했다. 건장한 개구쟁이 스머프가 '랄랄라랄랄라 랄라랄라라~' 콧노래를 부르며 스머프 마을로 걸어가는 모습이 연상되곤 했다. 156p
어쩐지 생생히 상상이 되는 그 모습, 자꾸만 생각이 나 웃음이 나게 만들었다. 스타벅스 커피서부터 자판기 커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커피를 모두 좋아한다는 서울지엔느 작가였기에 그의 일상 이야기 속에서도 커피는 곧잘 등장하곤 했다. 또 그의 직장 이야기들을 통해 내가 직장 다닐때의 모습은 어땠던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딱 30살을 채우고 그만두었던 그때까지의 일상을 말이다.
지금은 집에서 아기엄마로 어떻게 나이먹는지도 모르고 아이가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만 바라보고 살고 있지만, 나도 한때는 그에 못지 않게 바쁘고 치열한 삶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한잔, 나의 그 때의 즐거움은 무엇이었을까. 입사 초기에는 고문관같이 신입사원들을 쥐어잡는 계장님 덕분에 아침에 눈뜨고 출근하는게 지옥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적응될 무렵에는 미숙하면서도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후배들 덕에 골머리가 썩기도 했다. 내가 떠나 있는 지금 남아있는 이들은 그 몇년의 텀동안도 바쁘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 곳이 어떻게 변했을까? 아니 여전히 그대로일까?
때로는 충고같고, 때로는 유머가 담긴 듯 한 그의 이야기들, 그 속에는 사랑과 일과 그 모든 인생이 다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