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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요리하라 - 세계 최고 레스토랑 엘 볼리를 감동시킨 한 청년의 파란만장 도전 이야기
장명순 지음 / 미호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요리에 뜻을 품고, 세계적인 셰프들을 찾아 전세계여행을 떠난 젊은이.
여행과 미식 모두를 좋아하고, 특히나 꿈을 좇아 과감히 떠나는 그 용기가 부러워 읽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장명순이라는 이 저자, 사람을 감동시키는 재주가 있다. 여행보다는 그의 노력과 열정이 더욱 돋보이는 글이었는데 푹 빠져들어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읽다보니 어느새 끝이었다.
표지에서부터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외모가, 어느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을 연상케하는 그런 외모를 갖고 있다.
그런 그가 여행경비를 마련하고자 호주 도살장에서 구역질을 참아가며 괴로운 내장 해체 작업을 하고, 여행경비를 아끼기 위해 거리 노숙을 서슴지 않고, 텐트 생활 등을 일관하다 보니 피부도 새까매지고 행색도 초라해져서 한국인 관광객들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다가서니, 눈이 마주친 한국인 부부가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외면할정도가 되기도 한다. 그가 생각한 여행경비의 주 비용은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그에게는 호사라기보다 꿈을 위한 셰프들과의 만남의 자리여서 항공권과 여행경비를 모두 합한 값보다 비싼 식비일지라도 줄일 수 없는 경비였다.)에 들어갔다. 영국 공원 벤치에서 노숙을 하다 주민들의 신고로 쫒겨나기도 하고, 예약을 못하고 간 미슐렝 스타 셋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20일을 텐트 생활하며 기다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가 꿈에도 바라던 엘 불리, 그를 감동시킨 엘 불리의 셰프가 되기 위해 그는 그가 다닌 미식 세계여행 정보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100여개 이상을 뿌리고, 매일 시위하듯 기다리다가 드디어 엘 불리에 입성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동안 만났던 각국의 레스토랑에서 일을 배우는 친구들 중에는 실제로 파이브 스타 호텔을 보유한 이도 있었고, 성을 보유한 이도 있었다. 우리 같으면 '그런 재산 있으면 힘들게 요리 공부는 뭐하러 해? 돈 주고 요리사 부르면 되지'라고 생각할 테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그것이 그들과 다른점이었다.
즉, 그들에게 있어 재산이 있고 없고는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하는데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 남들과 똑같이 시작하고 똑같이 경험하는 것이다. 188p
한국에서도 한번 요리를 결심한 이상 최고가 되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하였다. 군대에 가서도 요리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해외여행 또한 사실은 더 넓은 세상으로 도약하기 위한 그만의 색다른 모험기였던 것. 그가 다닌 여행 일정 중에는 필리핀에서 영어학원에 다니고, 태국과 인도 등지에서 요리를 배우는 등 어느 것하나 즐기기 위한 여행이 아닌 배우고 학습하기 위한 토대가 되는 여행이었다. 유럽에 입성해서부터는 그가 계획하고 준비한대로 미슐렝과 기타 여러 자료를 5년이상 모은 통계자료를 내어, 상위권에 해당하는 레스토랑을 토대로 미식 탐방 여행을 떠나게 되었던 것. 그 곳에서 그는 자신이 최종적으로 엘 불리를 꿈꾸게 되고, 또 그꿈을 이루게 된다.
올바른 생각이 아니거나 솔직하지 않으면 절대 얼렁뚱땅 타협하지 않는 고지식한 내 성격에 국경을 초월해야 하는 일은 거의 모험이나 마찬가지였다. 요리와 사람을 뭉뚱그려 문화로 '학습'해야하니까 말이다. 200p
엘 불리에서의 스타지 (인턴)생활은 다른 분야의 일로 봐도 참으로 고된 일정이 아닐 수 없었다. 세계의 내노라 하는 셰프들도 달려와 들어오고 싶어하는 스타지 자리건만, 일을 가르쳐주는것이 아니라 한가지 파트에서 자신이 맡은 일만 시즌 내 해야하는 자리이고, 보수도 없이 (그건 유럽의 여느 레스토랑들이 모두 마찬가지라는) 12시간 이상 중노동을 하다보니,중간에 떨어져나가는 스타지들이 많았다 했다. 그래서 시즌 말미로 갈수록 비운 자리까지 채워가며 일을 해야하니 한사람에게 걸리는 일의 로딩이 더욱 엄청나질 수 밖에 없었다.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던 그가 일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메뉴지를 통째로 외워가며 버틴 그 정신은 정말 놀랍기만 했다.
한의사를 꿈꾸며 공부했던 그가 정말 행복한 일을 하기 위해 요리사에 도전하게 된 것. 그리고 한번 시작한 일에 최고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존경스러움 그 자체였다.
책에는 엘 불리라는 대단한 레스토랑 외에 무가리츠라는 또다른 레스토랑이 나온다. 그리고 그는 엘 불리의 셰프 자격이 주어짐에도 최종적으로는 무가리츠를 선택하게 된다. 둘다 꿈꾸는 곳이었지만, 엘 불리가 문을 닫는 시즌동안 무가리츠에서도 스타지로 일해봤던 그는 자신과 진정으로 맞는 곳이 어딘지 마음으로부터 결정을 했기때문이었다. 최고로 노력하는 그의 진정한 노력이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인정을 받는 모습이었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미슐랭 별 몇 이상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를 별로 꿈꾸지 않았었다. 우선 유럽 여행을 가 본적도 없고, 값이 너무 비싼 식사를 하기엔 여행 경비에 너무 부담이 된다는 생각에 적당히 타협점을 찾고자 했기때문이었다. 음식 맛이 좋아도 뭐 얼마나 더 좋을까? 저자가 들으면 펄쩍 뛸 그런 발칙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미식을 눈앞에 두고 맛을 음미하는 그의 자세는 지극히 겸허하기까지 하다. 잠도 험히 자가며 그 고생을 하고 맛을 보는 귀한 식사건만, 그에게 음식은 식사 그 이상의 예술이었던 것. 그의 이야기 속에서 진정한 미슐랭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가 최고의 평가를 한 엘 불리와 무가리츠, 두 군데의 음식맛을 모두 맛보고 싶었다.
그런데 엘불리가 문을 닫는다는 6월 17일 기사를 접했다.
식사값이 최고 수십만원에 이르고 2년 이상 예약이 밀려있는데도 불구하고 경영적자로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는 것. 스페인이 울상을 짓게 할 정도인 세계 최고 레스토랑 엘불리의 폐업은, 사실 이 책 첫 부분을 읽자 곧 이해가 되었다. 물론 이 글을 쓸때만 해도 작가는 그 실상까지는 몰랐겠지만 말이다.
50여명의 요리사를 동원해 하루 한 번 저녁에, 그것도 예약된 손님만 받아 서비스를 한다? 요리사인 나도 당시로는 덧셈 뺄셈이 되지 않았다. 34p
게다가 엘불리는 일년 내내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몇달간의 시즌에만 문을 열고 있다. 요리에 대한 셰프의 최고의 자부심이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들에게 감동으로 전해졌지만 앞으로는 그 맛을 보기는 힘들 것 같아 아쉬웠다.
최고의 식재료를 써야한다는 고집과 새 메뉴 개발에 들어가는엄청난 비용때문에 매년 8억원씩 적자를 보다가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는 뉴스였다. 덧글에는 그렇게 비싼 식사값에는 인건비가 대부분일 것이다라는 조롱조의 댓글이 달려 마음이 안좋기도 했다. 나또한 너무 비싼 식사는 꿈도 못 꾸어봤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음식을 정성으로 대하는 셰프들의 마음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대부분의 스타지들은 월급도 없이 일을 하니 인건비가 문제는 아니었을텐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악플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상류층들의 호사스러운 머나먼 이야기라는 생각에 속상한 이들의 댓글이었겠지만, 조금은 남을 배려해주는 그런 참을성 많은 사람들이 되었으면 싶었다. 선의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상처입지 않도록 말이다.
여행과 미식을 꿈꾸는 내게도 소박한(?) 희망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세계라는 무대에 뛰어들어 오늘도 치열하게 살고 있는 그 장명순, 그가 있는 무가리츠에 언젠가 식사를 하러 꼭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