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펍, 영국의 스토리를 마시다 - 창조적 여행자를 위한 깊이 있는 문화 기행 ㅣ Creative Travel 1
조용준 지음 / 컬처그라퍼 / 2011년 5월
절판
맥주 한잔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내가, 이 책을 처음 펼쳐들게 된건, 가보지 않은 도시 런던의 이야기를 펍이라는 특정 장소를 통해 한권의 책으로 풀어 설명했다는데서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작가가 이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는 실로 우연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남들과 다른 관찰력을 가진 데서 온 창의적 발상이랄까?
2005년 런던을 비롯한 여러 유럽 도시를 단체 관광으로 여행중이었던 작가가 마침 런던에 있을 무렵, 올림픽 유치의 환호성으로 들끓어올랐던 런던이 대 테러에 휘말려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장소로 변하고 말았다. 교통이 마비가 되어 공항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워낙 더디게 나가는 버스 안인지라 바깥의 시내 풍경에 눈길을 둘 수 밖에 없었다. 그때 펍의 간판에 공식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작가는 (모든 간판이 하나의 간결한 그림으로 표현돼 있었던 것.) 매우 강렬한 호기심을 갖고, 영국을 펍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때의 관심이 도화선이 되어, 그 이후로도 수 차례 런던을 방문하여 펍의 역사와 유래, 펍 간판의 의미에 관해 문헌부터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나 펍에 대한 개인의 에세이가 아니다. 펍이라는 하나의 문화적 단면을 통해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탐구한 인문학 여행기이다. 12p
영국의 웬만한 펍들은 100년을 거뜬히 넘기고, 1000년의 역사를 넘겨 기네스북에 등재된 곳도 있다고 한다. 바로 늙은 싸움닭이라는 펍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그네들의 여러 문화자산들을 볼때마다 사실 속상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문화유산들은 정작 외침 등에 의해 철저하게 파손된적이 너무나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평범해보이는 펍마저 수백년의 역사 동안 변치 않은 채 그자리에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펍의 오랜 역사가 이어진데에는 브리튼 섬의 원주민이나 침략자나 할 것 없이 모두 술을 매우 좋아하고, 그런 분위기를 즐겼으며 이런 역사적, 사회적 환경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역대 왕실도 술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 정책을 펴왔다는 것을 알수 있다37p라고 밝히고 있다.
펍을 이야기하면서, 영국의 비틀즈를 이야기할 것은 예상했지만서도 상당히 많은 이야기거리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데서는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작가의 말대로 인문 에세이라 어떤 부분은 딱딱하게도 느껴졌지만, 대부분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국부의 원천으로 쌓인 것은 해적질에 의한 것이라는 것. 사략선이란 제도를 종용해서 실제로는 다른 나라의 배를 약탈하는데 나라가 더 힘을 기울이고있었다는 것들도 새로이 알 수 있었다. 펍과 관련하여 아주 유명한 해적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펍으로 시작했는데, 영국의 역사와 문화가 한자리에서 펼쳐지는 느낌이랄까?
그저, 펍에서 주고 받는 명인들의 이야기, 혹은 사람들의 대화 수준의 스토리일까? 했는데, 예상을 뒤엎었다
신사의 나라 영국이 식민 정치를 펼칠때에는 그다지 신사답지 못했다라는 부분도 많이 지적되는 부분이었는데, 굳이 식민 계층에 가지 않더라도, 술에 빠져서, 환란의 시기처럼 흔들리던 때가 있었다.
집단 사형의 이야기가 많고, 교수형이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까지 간주된 것은 당시의 사회상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의 실상을 생생하게 반영하고 있는 판화가 윌리엄 호가스의 유명한 판화 두장, 맥주의 거리, 진의 거리가 있다.
17세기 영국의 노동계급이 알코올에 굶주리던 시기에 진이 싼 값에 들어와 맥주를 판매하는 펍을 위협하게 되었다.
진 값을 마련하기 위한 범죄는 무시무시했다. 판화 그림이상으로 충격적인 크리스토퍼 히버트의 저술 <악의 뿌리>의 묘사는 참담할 정도이다.
아기 엄마인 나는 이 부분이 계속 끔찍하게 맴돌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아기에 대한 부분을 차마 언급하지 못하더라도, 일부 인용하자면. 아래와 같다.
동물학대는 인기가 높은 스포츠였다. 고양이로 캐치볼을 하고 곰이나 소를 매놓고 맹견을 부추겨 덤벼들게 하는 행위가 오락으로서 인기를 모았다. 153p
펍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들 중에 반지의 제왕의 톨킨과 나니아 연대기의 c.s. 루이스가 깃발든 양이라는 펍에서 이뤄지던 잉클링스라는 모임의 회원이어서, 자주 만남을 갖고 집필중인 작품을 서로 읽고 토론하거나 친목을 다지는 모임으로 시작하였다 한다. 또 비틀즈가 케이번 클럽에서 공연 후 근처 펍인 포도송이에 와서 맥주로 목을 축이곤 하여서 유명해진 포도송이 펍도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만한 곳이었다.
만약 리버풀에 갈 일이 있다면 펍 포도송이에 꼭 가보기를 바란다. 맥주 한 잔을 시키고 자리에 앉아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펍의 시끄러움 속에서도 비틀스 멤버들의 속삭임이 들려올 것이다. 우리 역시 불투명한 때가 많았노라고. 우리 역시 미래의 불안감에 두려워했노라고. 다만, 음악을 할 때가 즐거웠고, 행복했기에 계속 했노라고. 성공은 우리가 잘 모르는 단어였으며,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다 보니 우연하게 따라온 것이었노라고. 208p
술을 좋아하지 않아, 펍의 이야기에 내가 귀를 기울일만한게 얼마나 있을까 싶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재미가 더해졌던 것 같다. 기억하고 싶어 접은 곳들이 마구 늘어났으니 말이다. 수많은 펍 이야기를 소개받으며 입맛을 다셨을 맥주광들을 위해서는 또 친히 뒷 편에 부록으로 펍 안내서를 달아놓았다. 지도와 함께 지역별 여러 펍들이 소개가 되었는데, 맥주를 상당히 좋아하는 신랑과 런던에 함께 가게 된다면, 꼭 유서깊은 펍에 한군데 이상 꼭 들러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기가 그런 곳이구나 다시금 느끼면서 말이다. 그곳에서 마시는 맥주는, (연상되는 스토리가 있기에 ) 아무 이유없이 마시는 맥주처럼 쓰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