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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여행, 길 위에서 달콤한 휴식을 얻다
정인수 글.사진 / 팜파스 / 2011년 6월
절판
직장 생활을 할 적에 무척이나 바쁜 날에는 오전 나절 정말 눈썹이 휘날리게 일하고, 점심때 밥을 먹다보면, 일하는 속도로 전투적인 자세로 밥을 우겨넣어 이건 먹은 건지 마신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성급히 구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었다. 체할 것만 같아서 정신 좀 차리고 먹자고 나 자신을 추스리고 나니 그제야 잠깐 숨을 돌릴 여유가 생기던 그런 날들. 결혼 후 일을 쉬고 아기를 낳고 살림만 하면서 그때 일을 생각하면 참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신랑이 밖에서 혼자 일하고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하는 것을 백분 이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 나름대로 반복되는 육아와 살림이라는 일상을 벗어나고픈 마음에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나들이 좀 갔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된다. 쉬고 싶은 신랑과 코에 바람 좀 넣고 싶은 아내와 아들. 주말마다 놀러가지는 못하더라도 가끔 신랑이 짬을 내어 가족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줄때는 아무리 가까운 곳만 둘러보고 와도 참 행복한 느낌이 든다.
사실 그랬다.
대학 졸업 직전 과에서 가장 먼저 결혼했던 친구가 결혼 후 바로 아이를 하나, 둘씩 낳고 다른 친구들이 바쁘게 일할때 혼자서 프로 주부가 되어 가면서 그런 말을 했었다. "신혼 초에는 신랑과 집앞 수퍼에만 같이 나가도 무척 행복했었어. 아이들 낳고 나니 그럴 짬도 없네." 라며 말이다.
결혼 후 정말 신랑과 마트 나들이, 산책, 아니면 집근처 드라이브 등만 해도 어찌나 행복하던지.. 거창한 해외여행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바쁜 신랑과 함께 하다보니 얼굴 보고 손 잡고 같이 걷는 그 길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바쁘단 이유로 평일의 그 여유도 갈수록 사라져버리고 있지만..
지금도 아이 유모차를 끌고 같이 아파트 한바퀴만 돌고 와도 (그리고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즐겁기만 한데, 조금 더 눈을 넓혀 혼자 보기 슬플 정도로 아름답다는 그런 명소들을 가족과 함께 둘러보고 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 모두는 늘 바쁘다. 그래서 소풍 같은 여행의 맛을 잊어가는 것 같다. 이곳 상당산성에서라면 그 맛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천천히 걸으며 풀과 나무, 새들의 노래를 듣는거다.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숲속 벤치에 앉아 쉬고, 출출하면 산성마을에 들러 맛난 음식을 먹는거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가볼 거예요." "돈만 있으면 누군들 그렇게 못합니까?" 이런 말을 참 많이 들었다. 하지만 좀 바쁠때 시간을 내려 노력해보고, 약간 모자란듯해도 여유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얻어가는 것이 있다.
137.138p 청주 상당산성
청주라면..
나보다 더 길치인 신랑이 금강 휴게소에 데려다 주겠다며 고속도로를 탔는데 하행선을 타야하는데 상행선을 타서.. 청주로 들어가버렸던 기억이 난다. 상당산성이라는 멋진 곳이 있음을 알았더라면 여유있게 시간을 갖고 방문해서 좀 걸어보고 느껴보고 왔으면 좋았을 것을.. 낯선 길을 가다보니 얼른 원래의 길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헤메다 돌아왔던 기억이 남아있다.
여행 장소보다는 어떻게 여행하느냐에 초점을 맞춘 책. 쓰면서 다시 여행하는 느낌이 들어 무척이나 즐거웠다는 작가의 이야기.
너무나 아름다운 장관 앞에서 혼자 걷는 그 길이 가슴아프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접하며 그런 고독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라도 가족과 함께 꼭 여행을 가고픈 곳들이 무척이나 많아졌다. 봄이면 흩날리는 벚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그 유명한 쌍계사 십리 벚꽃길은 다른 곳의 가랑비 꽃비와 달리 연분홍 소낙비 수준이라 한다.
길, 숲, 물, 곳의 네가지 테마로 소개되는 잔잔한 쉼표 여행기, 쉼표라는 이름이 붙어서일까? 아니면 바쁜 일정으로 쫓기듯 훑고 오는 일정이 아니라 여유를 찾기 위해 쉬다 오는 여행이라서 그런 것일까? 이 책을 읽는 순간마저 참으로 편안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멋과 운치가 있는 곳곳을 느끼면서 길을 걷고, 쉬어 가고 하는 여정들.
바쁘고 힘든 일상이라도 잠시 쉼표 하나 찍고, 추천해주는 그곳을 여유있게 둘러보고 잘 보았다, 환하게 웃고 돌아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