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심오 지음 / 자음과모음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우즈베키스탄 보드카보다 더 독한 년을 만났어요. 이건 독한 것도 아니에요. 1부 91p

 

광고계가 워낙 아이디어로 승부하고 힘들게 일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어도 책 속에 등장하는 김준희 대리의 회사는 정말 광고회사의 환상을 깨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힘들게 몰아부치는 회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팀 전체를 이끌어간다 싶을 정도로 주인공 김대리의 실력은 탁월한 수준이었다. 소위 빽이라 말하는 배경이 너무나 빈약했음에도 그녀는 자신의 실력 하나로 어릴 적 꿈이었던 "회사원"이 되어 밤샘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일과 사랑을 모두 손에 넣을 그런 꿈에 다가가고 있는 서른살이었다.

 

어느 날 그녀 앞에 그녀가 가지지 못한 너무나 큰 후광을 뒤에 입은 로열패밀리가 상사로 부임해온다. 부회장의 딸인 사라. 그녀보다 나이도 다섯살밖에 많지 않고, 몸매마저 육감적이다. 많은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다 못해 그녀가 오랜동안 짝사랑하고 고백도 못한 최대리마저 가로채가버린다. 그리고 어디서고 들어보지 못했던 너무나 가차없는 질타와 모욕, 믿었던 라인이 사라지고 난 후 버려진 정도가 아니라 이것은 정말 김대리가 견뎌낼 수 없는 극상의 고통이었다. 물론 나중에 그녀가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친구들의 회사 고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는 정작 명함도 못 내밀 상황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무시 당하고 백으로 통하는 사회에서 사라라는 이름의 로열패밀리 상사 앞에 철저히 뭉개지는 것은 김대리를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아마 김대리만큼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로열 패밀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사 중에 자신의 위치를 충분히 악용해 부하직원들을 괴롭히는 사람 밑에 있어 본적이 있는 터라 김대리의 고충이 참 뼈저리게 느껴졌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은 맘대로 부려먹어도 되고, 일 안하고 뺀질뺀질 잘 놀아도 자기 눈에만 들면 얼마든지 예뻐하는 그런 세태. 물론 이 책에서도 그런 라인을 잘 탄, 그리고 회사에서 하는 일 없이 잘 버티고 있는 조부장과 이차장의 이야기가 그려지기는 한다. 그 후  아무 힘도 못 쓰고 그냥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지란 식으로 회사를 떠났던 나와 달리, 끝까지 남아 당당히 사라에게 맞설 생각을 한 (물론 정면 승부가 힘든 상황이라 그녀처럼 교묘한 술책을 쓰기 시작했다.) 자체가 놀라웠다. 소설이라 가능했을 상황들이 여럿 보였지만 사실 읽으면서 대리만족이 되어 무척이나 후련한 것은 사실이었다.

 

철저히 복수를 하면서도 김대리가 정말 중요한 것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꼬이고 꼬인 드라마와 달리 이 책은 마무리도 참 깔끔해 좋았다. 실천하기는 힘들 그런 대안들이었지만 말 그대로 혹독하게 그녀를 당하게만 만들지는 않아서 그게 더 좋았는지 모른다. 도대체 로열 패밀리에 맞설 생각을 하는 평범한 대리가 과연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을 다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꿋꿋이 그녀의 자리를 지켜 나갔다. 때로는 같이 웃기도 하고, 때로는 직장인들이 처한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져 그 웃음이 씁쓸해지기도 했지만.. 매끄러운 문장력과 스토리에 읽는 재미가 꽤나 좋았던 소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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