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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사는 법
박완서.한말숙.김양식 외 지음, 숙란문인회 엮음 / 연암서가 / 2011년 5월
평점 :
박완서 작가님이 타계하시고 나자 비로소 유작들을 찾아 읽게 되었다. 학창 시절 열심히 읽던 책을 중학교 이후로 놓아버리고, 그 이후에는 한참 시간이 흐르니 인터넷이나 티브이, 영화처럼 손쉽게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영상 매체에 비해 책은 한참의 집중을 요하는 일인지라 다시 책을 손에 들게 되기까지 시간이 꽤 흘렀다. 그렇다고 해도 핑계를 대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집은 박완서님의 유작이자 이 책의 제목인 <행복하게 사는 법>을 포함해 박완서님의 숙명여고 동문인 많은 선후배 동기 여성 작가들의 주옥같은 수필, 시 등이 실린 책이었다. 한 명문 고등학교에서 이렇게 많은 유명한 작가분들이 배출되었음이 놀라웠다. 다양하게 한국 문학사에서 활약중인 숙명여고 출신의 동문들이 모여 숙란문인회를 만들고, 이렇게 책으로까지 낼 정도가 되었으니 그들의 쟁쟁한 이름과 작품을 접함에도 우선 부러움이 들었다. 아마 예전에 시험을 쳐서 어렵게 들어갔을 학교였을지라 (우리때처럼 평준화가 되어버린 연합고사와는 또 다른 분위기일) 학교에 대한 자긍심도 무척이나 뛰어났고, 그 자긍심은 학창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 속에 잘 녹아나와있어서 지방에서 평범한 고등학교를 나왔기에 대학에만 명문이 있는줄 알았던 내게 또다른 발견을 하게 해주는 일이었다.
박완서님의 <행복하게 사는 법>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관계 속에서 남의 좋은 점을 발견해 버릇하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기적이 일어납니다.서로 사랑하게 되는 거지요. 사랑받을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42p
상대방의 단점이 아닌 장점만을 보려하는 시도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나보다 특히 남에게 인색한 요즘 풍토에는 더욱 힘들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행복을 대하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기로 하였다.
흔히 개성 사람은 깍쟁이라고 하지만 선생님은 제게 단 한번도 깍쟁이셨던 적이 없습니다. 제가 서울에 갈때마다 손수 밥을 해서 먹여 주셨습니다. 제가 서울에만 가면 선생님께선 손수 빨간 냄비에 김치찌개 끓이시고, 제주도에서 갓 올라온 싱싱한 갈치를 구워 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그렇게 귀히 대해 주시니까 작년에는 큰 따님 원숙씨까지 저를 자기 집에 불러다 삼겹살 넣은 묵은지찜과 굴비를 구워 주었습니다. 186p
박완서님의 작품 뿐 아니라 그 분을 기리는 작품도 소개되어 박완서님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지인이자 숙란 문인회의 또다른 멤버인 이영주님의 글 <옳고 아름다웠던 박완서 선생님> 글 중 한 대목이다.
어렵고 멀게만 느껴진 대작가님의 따뜻한 마음씀씀이까지 느낄 수 있게 하는 수필이었고, 다른 작가님들의 여러 수필 역시 연륜이 뭍어나고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그런 글들이라 느끼는 바가 컸다.
이경희님의 <현이의 연극>은 앞부분부터 너무나 낯익어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던 글인데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중학교 국정 교과서에 게재되어 교과서로 만났던 글이었던 것, 읽으면서도 참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글이다 싶었는데 아이엄마가 되어 다시 읽으니 여학생일때 읽었던 느낌과 새삼 또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숙란문인회의 전공은 참으로 다양하다. 대부분 국문학과 출신이 많으셨으나 영문과, 언어학과, 게다가 약학과 출신도 세분이나 글이 실렸고, 지리교육과, 간호학 등 문학과 무관한 전공을 하신 분들도 참으로 많아보였지만 그들의 작품은 전공을 불문하고 빛이 났다. 같은 대학 같은 학과의 선배님 글이 두분이나 실려 있어서 반가움을 금치 못하기도 했다. 같은 과 동기 중에서도 글을 쓰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아직은 평범하게 아기엄마로 지내고 있다. 글을 읽는 것은 좋아해도 쓴다는 것은 너무나 대단한 창조작업이라 생각하는 나로썬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지만, 다양한 전공에도 불구하고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엮인 숙란문인회의 여성 작가분들을 만나니 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친구들의 글 또한 책으로 만날 날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 준 사람들은 많이 기억하고 있다. 그것으로 족하다. 내 것이지만 나보다 다른 이들이 더 많이 쓰는 이름, 내 이름을 노래처럼 다정하게 불러 준 사람들이 많았던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고 싶다. 그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특권이며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축복이기도 하니까..... <이름에 관한 단상>, 김미라 255p
재미를 위해 쓰여진 글들이 아니었지만 인생을 느낄 수 있는 에세이가 주를 이루어 꾸미지 않은 깊이가 있어 좋았다.
글을 읽고 인생을 만나고, 그리고 내 추억 속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책, 지금 나의 여고동창들, 대학 동기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깊은 밤, 잠도 못 이루고 오랜만에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