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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드
무라카미 류 지음, 이영미 옮김, 하마노 유카 그림 / 문학수첩 / 2011년 4월
절판
대학 다닐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너무 예쁜 제목에 선뜻 뽑아들었다가 얼마간 읽고 도로 꽂아놨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읽기엔 좀 선정적이었던 느낌이었기에.. 하지만 그 제목만큼은 아직까지도 귀에 남는다. 책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무라카미 류가 23세 때 쓴 데뷔작인 그 책으로 그는 아쿠타카와 상과 군조 문학상을 수상했고 이후 그가 내놓은 수많은 소설들로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이름이 그렇게 낯익음에도 아직 끝까지 읽은 책 한권이 없었던 것은 데뷔작을 읽다 말았을때의 충격이 남아있어서리라
그가 오랜만에 아이들과 어른들이 같이 볼 수 있는 교훈적인 그림책을 냈다 해서 새로운 기분으로 펼쳐들게 되었다.
류의 소설이 아니다, 전혀 느낌이 다르다라는 후기들도 접했지만 그만의 틀에서 벗어나더라도 편안하게 읽기 시작할 수 있는 그림책이라 내가 고르기는 더 쉬웠던 것 같다.
쉴드, 방패라는 뜻의 이 책의 제목.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는 쉴드, 그 쉴드를 찾아 고민하는 두 소년의 성장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다.
고지마는 어른들 말씀 잘듣고 공부도 잘 하는 아이였지만 정작 혼자 있을때는 자신이 스스로 착하지 않다는 자책감에 힘들어하는 소년이었고, 기지마는 어른들에게 투덜대고 공부도 못하였지만 유독 고지마 앞에서는 활달하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성격이었다. 두 소년은 말 그대로 정반대의 성격과 행동을 보여주었지만 어려서부터 죽이 잘 맞아 단짝친구로 지냈다. 또 재미나게도 둘다 좋아하는 개가 각각 한마리씩 있어서 개와 함께 자신들의 인생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산에 사는 이름없는 노인에게 가 물어보니,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부드러운 것, 마음 혹은 정신이라 불리는 그것을 지켜낼 쉴드가 필요하다는 답을 들려준다.
그래서 인간은 몸 중심에 있는 부드럽고 연약한 그것을 어떻게는 지켜내야해. 지키지 못하면 소중한 그것은 차츰 딱딱해지고 줄어들어서 결국에는 말라비틀어진 개똥처럼 변해버리지 그렇게 되면 인간은 화석처럼 굳어서 감정도 감동도 경이로움도 생각하는 힘도 다 잃고 말아. 30p
스스로 쉴드를 찾아내야한다는 알쏭달쏭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두 소년은 먼저 쉴드를 찾아낸 사람이 상대방에게 꼭 알려주기로 한 후 돌아왔는데 사이좋게 지내던 두 소년이 불량배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난후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체격이 좋은 고지마의 도움을 받아야했던 기지마는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복싱을 시작했고 복싱이 필요치 않았던 고지마는 기지마와 따로 다니는 일이 늘기 시작했다.
모범생이었던 고지마가 상급학교 진학 후에 성적이 떨어지고 실연까지 당한 후에 소심한 아이로 변해버리면서 마치 어릴적 고지마와 기지마의 모습이 완전히 바뀐 것처럼 둘은 바뀌게 된다. 한번 자신감을 잃은 고지마는 성적도 갈수록 더 떨어지고, 자기 자신에게 실망감이 커지자 인생 자체가 거침없이 꼬이기 시작한다. 반대로 기지마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니 대인관계도 좋아지고 하는 일마다 술술 잘 풀려 잘 나가는 자동차 회사에도 떡하니 붙고 성대한 결혼식까지 올려 행복한 인생길로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 했다.
평탄한 인생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초등학교때 공부를 잘했다고 해도 위로 위로 올라갈수록 더 잘하는 학생들을 만나고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럴때 자기 자신에게 쉽게 실망하고 포기를 하게 되어 고지마처럼 성격까지 우울하게 바뀌어버릴 수도 있을테고, 혹은 사소한 운동에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깨달은 바가 있어 자기자신을 바꾸어나간 기지마처럼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 그 무엇인가를 만나 좀더 나은 미래로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소설은 그렇게 두 아이의 바뀐 인생 같은 이야기로 결말이 날것 같았지만 예측 불허한 인생이기에 또다른 삶에 들어가게 된다.
빠르게 바뀌어가는 세상. 그리고 가만히 있으면 자꾸만 등 떠밀어 어딘가로 몰아붙이는 듯한 이 무자비한 세상에서 나 자신을 지킬 쉴드가 필요하다.
하나가 아닌 안 팎의 쉴드로 구분된 고지마와 기지마의 인생.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실 어느 한쪽이 우세하길 바라는게 아니라 안 팎으로 나를 지켜낼 쉴드 모두가 필요함을 다시 한번 짚어주었다. (필자의 맺음말에서)
제목에서부터 당당히 드러난 것처럼 강한 교훈성이 내포된 책이었기에 행간을 읽느라 고민할 필요가없어 부담이 적었던 책이었다. 또한 맑은 수채화 그림(만화같기도 하고 동화같기도 한)과 더불어 읽기가 무척 편안했던 책이기도 했다. 때론 지적인 자극이 뛰어난 그런 책들에 매료가 되기도 하지만 쉬어가고 싶을 때가 많은 요즘은 서정적인 그림과 편안한 글이 담긴 동화가 더욱 와닿을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