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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집 - 예 교수의 먹고 사는 즐거움
예종석 지음, 임주리 그림 / 소모(SOMO)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미식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맛집 탐방을 즐기고, 맛집 관련 리뷰, 책 등을 찾아 읽는 사람이라 맛집에 대해 나도 관심이 꽤 높다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나는 그런 축에 끼지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먹고 사는 즐거움에 대해 참으로 들려줄 말이 많은 예교수님의 책.
미식을 사랑하는 아버지, 요리 솜씨가 좋은 어머니의 영향 아래에 각종 진미를 맛보기 좋았던 1950,60년대의 부산에서 생활을 하였던 터라 저자분이 풀어놓는 음식 이야기는 내가 생각하는 아주 한정적인 범위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야말로 방대하기 이를데 없다.
당시에는 흔하게 포장마차에서 팔았다는 각종 고래 고기를 어려서부터 사먹었을 뿐 아니라 최고의 미각을 자랑하는 아버지 덕에 일본 총독부에서 근무했던 요리사의 음식점에서 지금 맛보기도 힘들 그런 일식 요리를 맛보고 자랐기 때문이었다.
최고의 맛집, 최고의 입맛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있겠지만 사실 맛집이야기라는 것이 다루기가 쉬울 것 같아도 무척 어려운게 사실이다.
평범한 블로거인 나 또한 언젠가 맛집 카페에서 내가 다녀온 맛집 이야기를 올렸다가, 긍정적인 댓글들 외에도 형편없는 경험을 하고 왔다는 식의 나무라는 댓글이 달려 당혹스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블로거나 글을 쓰는 작가님들이나 하나같이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점이 바로 그 점이다. 모두가 제각각인 입맛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최상의 맛집을 찾기란 정말 힘들다. 게다가 막상 최고의 맛집을 올린다 치더라도 가격이 너무 비싸서 글을 읽는 서민들이 찾아가기 힘든 곳들도 많기 때문이다. 작가분은 그런 고민 끝에 제철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맛있게 만들어내는 집들부터 차근차근 소개를 하고 있다.
맛집, 음식에 대한 포스팅이다 보니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이 커다랗게 자리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사진은 드문 책이었다.
아마도 작가분의 풀어내고픈 글들이 많아 눈길이 가는 사진을 아예 극도로 줄인게 아닌가도 싶었지만, 그래도 보는 즐거움이 배가 되는 음식 사진이 드문 것은 어쩔수 없는 아쉬움이었다.
맛있는 음식, 그리고 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일반 서적과 크게 차이가 나는 점은 그 음식에 대한 기원과 일화등을 재미나게 싣고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모르고 있던 부분도 상당히 많이 알게 되었다. 꽁치 말린 것이 과메기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 사실은 청어를 말린 것에서 과메기가 시작되었다는 것과 그 청어가 드물어지면서 꽁치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상도 지방에서 멸치 대신 육수를 낸다는 디포리도 멸치보다 조금 큰 새로운 어종으로 알았더니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밴댕이란다. 바로 그 밴댕이를 말린 것들 띠포리라고 부른다 해서 아하~ 하고 무릎을 쳤다.
밥집 책을 읽으며 내심 기대했던 사실 중 하나는 우리 지역 맛집이 혹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맛집 카페나 일반 책들을 봐도 알 수 있듯 내가 살고 있는 대전지역에는 유명한 음식이 그다지 없는 듯 하다. 아쉽게도 이 책에도 대전지역의 맛집은 언급이 되지 않았다. 전국의 맛집을 다루고 있다 해도 꽤 많은 부분이 서울의 맛집을 다루고 있다. 서울에서 몇년 살아봐 알긴 하지만, 확실히 전국 팔도의 사람들이 빼곡히 몰려든 곳이라 그만큼 유명한 맛집도 많고, 맛집을 찾는 이들도 어느 지역보다 많기때문에 어쩔 수없는 결과일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밥집 책임에도 레시피까지 등장한다. 물론 방풍 죽에 한해서였지만,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찾는이이고, 관심이 높은지를 대변해주는 대목이라 소개하고 싶다. 조선 중기의 천재 허균이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 품평서 <도문대작>을 보면 향기가 입에 가득하여 3일동안 가시지 않는다 라고 방풍죽을 설명하고 있다 하였다. 이외 <증보 산림경제>, 최남선의 <조선 상식> 등의 옛 요리서에서는 흔하게 방풍죽의 흔적이 발견되고 평양냉면,진주 비빔밥 등과 더불어 지방의 유명 음식으로 소개되어 있을 정도였다 한다. 지금은 흔적을 찾기 힘든 먹거리라 식당을 찾아보았으나 파는 곳을 알 수 없어 직접 집에서 쑤어보았다면서 최근의 농촌 진흥청에서 나온 레시피를 소개하고 그 맛을 품평하였다. 입안에 은은한 향내나 감도는 것이 참으로 아취가 느껴진다 라고 말이다. 나 또한 맛있는 요리에 대한 책을 읽으면 어떻게든 맛을 보고 싶어 안달하는데 확실히 저자분의 단계는 나보다 몇 수위임을 알 수 있었다.
집근처 맛집이 없어 아쉬웠지만 전국 여행을 다니게 될때 부모님을 모시고, 혹은 남편, 아이와 함께 찾아가고픈 맛집들을 꼽아둘 수 있어 무척 유용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라도에 가면 그 유명한 전라도 진미들을 꼭 맛보고 싶었어도 어느 집이 유명한지 몰라 망설이곤 했는데 교수님이 추천해주는 순천의 대원 식당은 한상 떡벌어지는 상차림임에도 어느 한가지한가지가 모두 나무랄데 없는, 아니 전문점 뺨치고도 남을 솜씨라니, 부모님 모시고 꼭 찾아가고픈 맛집이었다.
젊은 세대의 입맛보다는 좀더 원숙한 입맛을 소개하시는 맛집들이 많았는데, 그래도 밀탑이라는 간단치 않은 빙수 맛은 서울 살면서도 못 본 맛이라 다음에 놀러갈때 꼭 그 시원한 맛을 즐기고 싶게 만들어주었다.
같은 맛집을 다녀오고서도 어떻게 품평을 하느냐에 따라 가고 싶은 곳이 되느냐 아니냐가 갈리는 것 같다. 한끼 밥상에 밥을 해석한다라는 책 뒷 표지의 인상적인 문구처럼 밥상 위의 모든 것이 작가님의 맛있는 인생을 통해 술술 풀어져 나와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덕분에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몹시 허기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