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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 백
슬라보미르 라비치 지음, 권현민 옮김 / 스크린셀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냉전 양극화 시대에, 소련이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두려움을 주던 그런 때가 있었다.
소련 국경 근처의 폴란드에 살고 있던 폴란드 군 주인공은 어느 날 집에 돌아왔다가, 소련의 비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어 그대로 극심한 고문을 받은 후,25세 젊은 나이에 25년형 중노동형이라는 극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로 보내지게 되었다.
미친 사람들이 이끄는 미친 재판이었다.
결국 법정은 굶주리고 혹사당한 나약한 폴란드인과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하는 소련 권력기구 간의 인내력 시험장이 되고 말았다. 38p
러시아인 어머니를 두어서 러시아 말을 잘하였던 그였건만, 소련은 그를 스파이로 몰아갔다. 아무리 아니라 말을 해도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 그에게 형을 선고했다.
꽤나 두꺼웠던 이 책이 실화라는 것을 알고 너무나 놀랐다. 너무나 추운 극한의 시베리아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감히 탈출을 감행한 이들, 그것도 변변한 무기나 교통 수단 없이 그저 발로 걸어서 고비사막을 건너고, 히말라야를 넘었다. 11개월 동안 걸어서 6500km를 걸어간 이들의 처절한 사투는 정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인간의 한계가 어디인가를 느끼게 해주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이르쿠츠크에서부터 1천 6백 킬로미터 이상을 행군한 끝에 우리는 이곳에 도착했다.
...두달에 걸친 지독한 행군의 고통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112.113p
형을 언도받고, 화물칸에 실려 짐짝만도 못한 취급을 받아 내린 후에 주인공과 다른 죄수들 모두 쇠사슬에 묶인 채 엄청난 행군을 감행했다. 그리고 끌려간 수용소에서 그들은 아주 적은 양의 빵과 노동에 시달리며 행복했던 지난때를 결코 꿈꾸지 못하는 비참함에 휩싸인다. 놀랍게도 주인공에게 탈출의 문을 열어준 이는 바로 사령관의 아내였고, 위험천만하게 시작된 그들의 무모한 계획은 중간에 극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몇 동료의 죽음을 이끌어내긴 하였으나 결국 성공으로 이어졌다.
순록에서 낙타까지, 이제 내가 안 본 동물은 없어. 251p
폴란드인부터 놀랍게도 소련에서 일했던 미국인까지 참가된 탈출 인원. 사실 그들의 탈출이 워낙 치밀하게 시도되었기에.. 앞뒤 가리지 않고 무섭게 달려드는 소련군의 추격을 벗어날 수 있었음에 읽는 내내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것 같은 길을.. 너무나 무모한 길을 그들이 선택하였기에..소련군은 전혀 다른 쪽을 수색하러 갔을 것이다. 처음에는 수용소에서 최대한 멀어지려는 노력이었고, 갈수록 자기 자신들과의 사투,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괴로운 여정과의 사투가 진행되었지만, 놀랍게도 그 힘든 여정 중에도 서로를 배려하고 더욱 돈독하게 뭉치는 인간애를 보여 힘든 때일 수록 가까워지는 인간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고비 사막의 무서움을 몰랐기에 물이나 식량, 그 어떤 준비도 하지 않고 선뜻 사막에 들어섰다가 그들은 엄청난 고통을 맛보게 되기도 한다.
그 엄청난 인고의 시간을 단지 책 한권으로 편안히 읽고 있음에 죄송스러운 마음까지도 들었다. 나같이 정신력이 약한 인간이라면, 정말 살아남기 힘들었을..그 대단한 스토리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말로 해 다 무엇하랴. 상상하기도 힘든 그 일을 벌여낸 사람들이 이 땅에 있었음을..
그 끔찍한 일을 다 겪고도 다시 폴란드 군 장교로 돌아가길 바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던 놀라운 저자 슬라보미르 라비치.
그들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숙명이었다.
3/17일 트루먼쇼를 제작한 피터 위어 감독의 영화로 다시 태어난 웨이 백.
영화로도 엄청난 대작이 될 이 이야기를 먼저 책으로 만날 수 있었음에 행복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