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50 - 은근한 불로 노릇하게 부쳐 먹는 한국의 슬로푸드
손성희 지음 / 시드페이퍼 / 2011년 1월
품절


내가 너무나 좋아하면서도 또 못하는 음식이 바로 전이다.

명절, 잔치, 그리고 비오는 날 등등 어떤 이유를 대고서라도 전과 함께라면 한국인들은 지글지글 그 고소한 기름 냄새에 정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얼마 전 읽었던 일본 요리 책에서, 일본인들은 채소나 해물 등이 남으면 모조리 튀김으로 만들어 먹는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우리네 전만큼이나 그들에게 가까운 것은 튀김이었던 것. 튀김도 맛있지만, 전만이 주는 그 행복한 포만감은 비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전, 전유어, 부침개, 혹은 지짐이라고도 부르는 그 많은 이름들.

맛있는 재료에 살짝 밀가루 등을 입히고 기름에 지글지글 지져내는 그 냄새는 옆에 있는 사람까지 황홀하게 만들고, 만드는 이의 옷에는 기름냄새가 온통 배이게 하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명절날 허리가 아프게 여인들이 앉아서 부쳐야 했기에 중노동처럼 여겨지기도 했던 전 부치기. 비오는 날에는 어쩐지 밀가루가 땡긴다면서 전을 부쳐달라고 엄마께 조르곤 하던 철없는 미식가였던 나. 전이라 하면 김치전부터, 해물파전, 일본식 오코노미야키까지..모든 전을 다 좋아하건만, 어째 내게는 전을 부칠 솜씨는 떨어지는지 아쉽기만 하던 찰나, 이렇게 전에 대한 총체적인 정보를 망라한 책을 접하고 보니 "나도 한번 또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되었다.


그렇게 좋아하면 사실 직접 만들어먹으면 될일이건만, 이상하게 내가 전을 만들면 뒤집기도 전에 찢어지거나 속이 다 익지 않거나 태워먹거나 등등, 사진 찍을만한 모양새를 갖출 수가 없었다. 신혼 초창기 술을 좋아하는 신랑을 위해 해물 파전을 멋지게 부쳐주고 싶었는데, 밀가루 가 두꺼운 파전은 싫어서, 계란만 가득 넣고 밀가루는 조금 넣었더니 뒤집어지지도 않고 그대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신랑은 오징어, 홍합, 새우 등 재료도 풍성하고 맛있다 했지만, 젓가락으로 잘 잡히지 않는 형편없는 해물파전에 얼마나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가끔 친정에서 식구들과 함께 부쳐먹곤 하는데 구울때는 은근슬쩍 엄마나 동생과 함께 부치며, 재료에만 힘을 쓰는 편이었다

전에 대해서는 거의 달인이다 할 저자.

요리를 좋아하지만 그녀가 특히나 전에 대해서는 수다스러워질만큼 할말이 많았던 것은 큰집에서 자라서, 어려서부터 명절때마다 늘 전을 부치고, 일을 거들다보니 알게모르게 베테랑이 되었다 하였다. 전의 기본 재료 손질과 기본 과정등을 다루어 상세 레시피에 들어가기 전에 기본을 익힐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 고마웠다. 성격이 급해서,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어 볼품없이 만들곤 했는데, 그러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보고, 기다릴줄도 알아야함을 배우게 되었다.

명절에 넉넉히 만들어놓은 전을 어떻게 활용할까로 인터넷에 가끔 정보가 뜨는것을 보았다. 우리집에서도 전골 등에 넣어서 먹는 것은 많이 해봤는데, 책에는 전 비빔밥, 모듬전 탕수, 전볶이, 전 돈까스 등 독창적이고 새로운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맛있는 전을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들, 새로 배워봄도 좋을 듯 하다.


한국식 전 하면 흔히 떠오르는 막걸리.

저자가 직접 만들고 먹어보니 막걸리 외에도 세계적인 술들과도 우리 전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독특하게도 각각의 레시피마다 어울리는 술을 언급해주고 있다. 막걸리만 있는게 아니라 일본의 사케, 호가든 등의 맥주, 와인 등 겹치지 않는 많은 술들이 언급되었고, 정말 어떻게 조화가 이뤄질지 궁금해지는 터라, 술 안주로 맛깔난 전을 만들어서 분위기를 즐겨봐도 좋을 것 같다.



표지처럼 푸짐하게 한소쿠리 가득 부쳐낸 전만 있는게 아니라, 책 속 전들은 깔끔한 레스토랑의 한접시 요리처럼 그렇게 가지런한 모습으로 조금씩 덜어져 접시에 놓여 있다. 푸드 스타일링에도 일가견이 있는 저자인지라, 기름진 전이라도 새롭고 정갈하게 즐길 수 있음을 알려주는 듯 했다. 어느 고급 레스토랑의 와인과 곁들여야할 주 메뉴처럼 말이다.



피자는 즐겨 먹지 않아도 해물파전은 즐겨먹는 신랑을 위해 일상 전 중에서 해물 파전 먼저 찾아보게 되었는데 해물파전과 어울리는 술은 미몽이라는 술이었다. 텁텁함을 제거한 깔끔한 막걸리라니 해물파전 한접시 맛나게 부쳐두고, 신랑 몰래 깜짝 이벤트처럼 사다가 꺼내주어도 좋아할 것 같았다.

한접시 얌전하게 차려진 떡산적은 가래떡에 다진 고기를 채워 부드럽게 만들어낸 것이었다. 약산춘이라는 새로운 술의 튀지않는 단맛이 떡산적의 부드러운 풍미를 더해준다 한다. 전50을 읽으며 술에 대해서도 한수 배우는 느낌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곶감전 또한 그 달콤한 맛을 예상하며 입안에 군침부터 고이게 하는 매력적인 메뉴였다. 어쩐지 와인과 어울릴 것 같더라니, 정말 꿀의 풍미가 부드럽게 풍기는 와인과 어울리는 안주라 하였다. 맛있게익힌 곶감전을 사과 소스에 찍어 먹는다니, 전이 아니라 색다른 디저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일상의 전부터 특별한 날의 전까지..

전은 그저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는 소중한 먹거리이다.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기분좋게 부쳐내는 전, 그 안에 사랑까지 한 국자 가득 담아 부쳐내면 먹는 사람의 입에 저절로 미소가 피어오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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