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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작은 거짓말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언제 읽어도 참 단아한 느낌이 드는 에쿠니 가오리의 책.
냉정과 열정 사이의 작가로 처음 알게 되었던 그녀의 작품에서, 난 항상 여주인공을 보면 그녀 모습을 대입하게 되었다. 약간 비스듬히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에쿠니 가오리의 모습, 여주인공의 섬세한 묘사를 보면, 어쩐지 그녀 자신을 투영한 듯한 그런 모습을 느끼곤 하였다.
그녀의 약간 우울한 정서와 완전히 교감할 수는 없지만, 분명 매력적인 작가이고, 그녀가 내놓은 많은 작품들에 매료된것이 사실인지라 이제는 에쿠니 가오리라는 이름만 듣고도 그녀의 작품을 집어드는 정도가 되었다.
몇달전 읽었던 그녀의 시집에서 결혼 생활 중 느끼는 쓸쓸함과 배우자에 대한 배반의 느낌이 전해져 당혹스럽기도 하였는데..
이번 소설에서는 그런 그녀의 마음이 제대로 소설에 녹아들었단 생각이 들었다.
결혼 3년차의 부부.
나 연애해. 하고 싶지 않은데. 사실은, 남편만 사랑하고 싶어. -아내 루리코
아내 몰래 처음으로 비밀을 만들었다. 딱히 뭘 한것도 아닌데..-남편 사토시.
사토시의 열렬한 구애로 결혼에 골인한 두 사람,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집에는 사랑의 훈기는 사라지고, 겉도는 대화만 가득 채워지고 말았다.
자꾸만 사랑을 확인하고픈 루리코와, 그녀의 그런 구속에서 벗어나고픈 사토시. 둘은 닮았으나 분명 다른 그런 모습으로 서로에게 지쳐가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연애를 해야하였던 루리코와 아내에게서 채워지지 않는 것을 다른 연인에게서 채우고픈 사토시의 모습에서 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바람을 피우면 칼로 찔러 죽일거라는 무서운 루리코의 말, 그 말에 사토시는 숨이 막혀있었는지 모른다.
아이도 친구도 필요없지만, 각자 다른 방에서 비디오와 게임을 상대하는 건 싫었다. 우리 속의 두 마리 고릴라도 성적 쾌락은 나눌 수 있는데.
"두 마리 고릴라만도 못하다면, 역시 솔라닌 밖에 없지." 20p
사토시에게 최선을 다하는 지극 정성의 보모 같은 아내 루리코, 그리고 그런 루리코의 보살핌에 익숙하면서도 자꾸만 아이같이 멀어져가는 사토시의 모습.
우리 부부 또한 어느 순간부터 같은 집안에 있으나 다른 공간에서 모니터를 보며 대화가 줄어들게 되어 사토시의 그런 모습이 낯설면서도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다.
서로의 취향이 달라서라지만, 분명 같이 영화를 보거나 (아기가 자는 동안 각자 할일이 있다면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기 보다 따로 모니터를 보는 일이 정말 허다하다.) 대화를 나눌 시간을 충분히 마련해야 좋으련만, 나 또한 모니터 앞에 앉아 책을 찾는게 즐겁고, 아니면 독서를 하는게 즐겁다. 신랑은 차 동호회에 들어가 차 이야기를 하고,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니.. 이러다 또다른 사토시가 되어버릴까 무섭기도 했다.
이건 아닌데..
극단으로 치닫는 듯한 그들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난 지금의 우리 모습을 바로잡을 필요를 느꼈다.
남편의 바람을 용서하지 못해 죽이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그녀.
루리코가 포기하는 것이 많을 수록 그녀를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남편 사토시.
그들의 어긋나는 사랑이 결혼의 전부가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난 우리 신랑과 평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아. 그럼 인터넷이랑 책 좀 줄여. 라고 스스로에게 읊조리게 된다.)
단아하고 깔끔하고 완벽한 그녀의 모습.
에쿠니 가오리의 결혼생활이 정말 루리코 같을까?
너무 쓸쓸해보여 가슴에 구멍 난듯..찬바람이 들어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