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여행책 - 휴가없이 떠나는 어느 완벽한 세계일주에 관하여
박준 지음 / 엘도라도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해줄 거냐고 (뭘 해주겠다는이 아니라, 뭘 해주겠냐는 질문으로 신랑을 곤란하게 하였다.)했다가, 뭐가 받고 싶냐고 떨면서 묻는 신랑에게.. 아주아주 대단한게 받고 싶다면서.. 애를 태운 후에 "평생 나를 사랑해주는거."라고 대답하자, "에이, 그건 당연한 거잖아. 난 또 시간도 없는데 여행이라도 가자고 할까봐 그게 제일 겁났네." 라는 신랑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다. 요즘 우리 신랑은 유난히 더 시간이 없다. 앞으로 아마 몇년동안은 휴가도 제대로 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와 시간이 없이 바쁜 남편, 우리 부부의 행복을 위해 나는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여행을 떠나는 법을 터득해야한다.
여행책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느끼곤 하던 것은 내게 있어 가장 쉽고 편한 여행 중 하나였다. 그 중에서도 아예 책 제목을 책 여행책으로 내걸고, 세계일주를 편하게, 휴가 없이 집에서 하고 싶지 않냐는 유혹적인 문구를 나는 차마 뿌리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웅진의 책, 그래, 어떤 내용일까? 세계 일주라니 모든 내용을 다 담아내기가 무척 힘겨울텐데.. 책 속에서 여행하겠다는 진리로 또 어떻게 책을 써냈을까? 궁금증이 여러가지 겹쳐서 책을 펼치게 되었다.
작가는 유랑을 즐기던 사람이다. 여행을 즐기던 이가 마흔이 넘어 여행 전문 작가로 나서자 오히려 유랑을 하던 과거의 삶이 그리워졌다.
그런 그 또한 직접적인 여행 뿐 아니라 책을통한 여행, 책 여행도 즐기고, 또 여행을 다녀와 쓰는 책인 여행책도 즐긴단다. 이 책은 그 책 여행과 여행책의 만남인 책 여행책이 되어버렸다. 실제 단원도 책을 통한 여행이 시작된 책여행과 (어떤땐 책을 통해서만 여행을 끝낸것인지 실제로 거기를 다녀왔다는 것인지 헷갈리는 문장도 여러 군데 있었다. 헷갈리게 썼다면 그가 너무 생생하게 썼다는 걸까? 아니면 정말 책을 통해 여행하고 실제로 또 전부 다녀왔다는 것일까? ) 여행을 다녀와 쓴 책 , 여행책 두 챕터로 나뉘어 있다.
이 책에 매료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나보다. 강원도 봉평에서 오로지 친구 하나 만나겠다고 버스를 갈아타고 몇시간 이동해서 내려온 친구가..
이 책을 보더니 금새 빠져들어 재미나게 읽고 있는 걸 보면, 누가 언제 어느 때 읽어도 재미난 장소와 추억을 되짚을 수 있는 그런 책이 되나보다.
나는 대부분 다 못 가본 곳들이고, 친구는 캐나다, 미국 등 다녀온 곳이 많아 더 떠올리기 쉬운 곳이 많았을런지도 모른다. 참 재미있다며 잘때까지 손에서 못 놓던 바로 그 책.
숨 막히게 빽빽하지 않은 글씨들, 그리고 여행책에 대한 소개글과 더불어 쉬엄쉬엄 들어가는 그 시작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가 분석하는 책을 통해 나는 또 여러권의 여행책을 새로이 만날 수 있었다. 그동안은 우리나라 작가 중심의 우리나라 여행가 중심의 여행 에세이 들을 읽어왔는데, 외국 여행가의 다양한 여행 서적을 통해 새로운 세계의 여러모습을 만나 볼 수 있었던 것. 일생에 한번 가볼까 말까..어쩌면 평생 못 가볼 그런 곳들도 박준의 책 여행책을 통해 세밀하게 만나 볼 수 있었다. 빽빽하지 않은 글에 매료되었다는 것은, 빽빽하면서 쉼표 하나 없을 듯한 그 꼿꼿한 책들에 이미 질려버렸다는 뜻도 되리라. 분명 많은 내용을 담아내고 있으나 어쩐지 쉼표를 찍어주고 있는 듯한 이 책의 여운은 여행을 즐기는 자의 입맛에 딱 맞는 그런 세심한 배려가 가득 하였다. 재미난 삽화와 더불어 말이다.
알쏭달쏭하던 시각이 뒤죽박죽되어버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의 새로운 충격, 보헤미안의 자유로운 정신적 방랑자의 꿈에 합일되는 샌프란시스코와 파리의 풍경, 그 중에서도 작가가 더 좋아하는 샌프란시스코의 느낌, 게이들의 천국이라 할 수 있지만, 그래도 통념의 끝, 상식의 끝에 있는 정말 밝기만 한 세계 프로빈스타운. 몇시간이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몇십년이고 정직원으로 근무하는 아름다움이 있는 파리의 셀렉트 카페.
중간에 어느 페이지를 열어 그 부분만 읽어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단편적인 그 느낌이 좋았던 책.
페스의 집은 그가 소개한 수많은 여행서적 중에 관심을 갖고 읽을뻔했던 책이었다. 그래서 그의 소개가 더 남다르게 와닿았던 책.
이 도시엔 이곳만의 정서가 살아 있습니다.
모든 것이 밀접하지만 모호하고, 골목길을 걷는 젤라바 입은 노인을 따라가고, 저 노인은 어디로 갈까 궁금하게 여겨지는 겁니다.
그 후 당신은 어떤 집으로 들어가게 되고 안뜰이 나오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메디나에서는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합니다. 166p
그의 소중한 소개글과 여행기를 읽으며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었던 수많은 여행서적들을 잠시 접어두고 여행책으로 넘어갔다.
어디서나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이탈리아의 즐거운 여행, 핀란드에서 고독의 긍정적인 힘을 깨달았다는 작가의 성찰, 맨해튼에서 못 느낀 사람냄새를 할렘에서 느끼고 온 추억담, 낯선 손님을 받지 않는 특이한 문화의 교토 기온의 음식점, 여행의 느낌을 그저 어떻게 어디를 다녀오라 하는 식의 정보지 처럼 접했던 수많은 여행에세이와 달리 그의 여행책은 좀더 특별했다. 여행지에서 그가 느낀 감정에 더 솔직하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 더 민감했던 여행.
진정한 여행은 풍경과 볼거리도 중요하지만 만나는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국에 가고 싶어 돈을 모은다는 캄보디아의 일당 5불 청년부터 여행자의 천국이라는 빠이에서 만난 켄. 그리고 그가 만난 무수한 길위의 사람들.
이제는 안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이순간은 이순간대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없어도 그만이다.
그러니 조급하게 굴지말고 이 순간을 즐길것!
요즘 내가 자주 되뇌는 말이다. 335p
세계 곳곳을 누비는 책여행책을 마무리해냈으면서도 그는 새로운 유랑을 꿈꾸는 진정한 여행가이다. 그의 책여행책으로 나는 책여행을 즐기는 마니아에서 어쩐지 한단계 업그레이드 한 느낌을 받았다. 작지만 소중한 그 느낌.. 그 느낌이 참 좋다. 언제고 다시 펼쳐들며..
짧지만 강렬한 세계 여행을 다녀올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책여행책을 펼쳐들고 나만의 여행지를 꿈꾸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