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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내 아이와 내 남편과 내가 살았던 이 집은 이 지상에서 가뭇없이 사라지면서, 내 고운 아이와 내 착한 남편과 내 행복한 웃음소리도 함께 데려갈 것이다. 18p
삶의 벼랑끝에 내몰린 여자가 있었다.
사랑하는 아이가 물놀이에서 죽고, 남편은 얼마 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에 덜렁 혼자 남은 여자는 막걸리와 빵으로 삶을 연명하며 그대로 시들어갔다.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 지도 모르게 아무 말이나 중얼거려야했던 여자는 어느 날 남편이 인세를 다 갚지 못한 정섭이라는 선배에게 연락해 되도 않는 말을 한다. 그녀의 본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영란이 여자의 이름일 것 같은데 (책 읽는 나를 넘겨보던 동생이 영란이 누구 이름이야? 하고 물을 정도로..) 영란은 후에 그가 묵은 영란 여관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밝혀진다.
그 여자 때문이 아니라, 그 여자의 슬픔 때문에 정섭은 지금 울고 싶다. 한 여자의 슬픔이 그곳이 어떤곳인지도 모르고 차박차박 걸어와 나를 좀 도와주세요. 라고 노크했다는 것을 정섭은 이제야 깨닫고 화들짝 놀란다. 93p
친구의 장례식장이 있던 목포로 내려간 정섭을 따라 얼떨결에 따라 내려온 여인은 목포에서 자살을 시도했다가 영란 여관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두고 그대로 떠나버렸던 정섭은 갑자기 그녀가 걱정이 되어 찾아 헤메다가 불현듯 목포에 있지 않을까 하여 다시 목포로 내려오게 되었다.
목포가 이렇게 따뜻한 곳인지 몰랐다.
그들은 각자 목포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롭게 얽히며 자신들도 모르는 새에 같은 사람들과 얽히는 그런 관계가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채..
영란이란 이름을 주고, 그녀를 받아들여준 영란 여관 사람들. 그리고 그런 '영란'을 꽃보다 아름답다며 가슴 설레게 한 완규, 죽은 아들을 생각나게 하는 완규의 조카 수한
거기에 그려지는 남도사람, 남도 선비들의 말의 아름다움과 품격이 정섭의 가슴을 아리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아름답고 격조있고 정답고 고운말이 어느 순간, 과장되고 거친 '조폭'말의 대표처럼 되고 있는 것이 무슨 이유일까, 가 궁금했다. 96p
전남 곡성 출신의 작가 공선옥님은 남도 사투리의 구성지고 따뜻한 말투의 잔재미를 잘 살려주었다. 사실 나도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본 남도 사투리가 따뜻한 어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상황 설정으로 낯설게 느껴지고, '나'와 '정섭'이 느끼는 남도에 대한 애정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다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의 말처럼 그들의 사투리와 따뜻한 마음씨에 한없이 마음이 기울어지게 되었다.
그저 슬픔을 치유해야 할 극한 상황의 '나'와 그에 못지않게 힘들게 지냈던 '정섭'을 따스히 맞이해주었다는것만으로도.. 목포는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정섭은 이제 영대라는 우직한 동생과 웬지 보듬어 안아주고 싶은 귀여운 동생을 한꺼번에 얻은 것 같아, 비록 일단 내려보내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102p
그녀의 슬픔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비극의 끝에 서 있는 듯한 그녀를 삶으로 끌어내려준 계기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사랑이 다가와도 사랑했던 남편과 아이가 생각나 쉽게 자신의 마음을 다 보여줄 수 없는 그녀가 안타깝게 이해되었기에 그런 그녀를 살게 할 힘이 무엇인지 더욱 궁금하였다.
내 글의 독자들이 슬픔을 돌보는 동안 더 깊고 더 따스하고 더 고운 마음의 눈을 얻게 된다면, 그리하여 더욱 아름답고 더욱 굳건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슬픔의 사람' 에 대한 이야기를 쓴 사람으로서, 많이 기쁠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녀는 슬픔의 극한에 처해있는 많은 독자들을 치유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주인공 '나'와 '정섭'이 목포에서 새로운 인연, 가족들을 만나게 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앗아간 세상이 결국 새로 살게 할 힘을 내어 줄 수있다는 가능성을 비추어 주는 것으로..
힘들어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에게.."그래도 살아보라" 며 토닥여주는게 아닌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