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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밥상 - 밥상으로 본 조선왕조사
함규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품절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임금의 자리, 그 왕의 밥상은 정말 산해진미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만을 골라 진상하는 것인줄로만 알았다. 이 책 왕의 밥상을 읽기 전까지는...
왕의 식사란 자신의 입과 위장을 통해 세상을 돌아보는 행위였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태종은 18년동안 적어도 아홉 차례 이상 (반찬의 가짓수 또는 식사의 횟수를 줄이는 감선보다 사적인 성격이 조금 더 짙은 철선, 즉 고기 반찬을 들지 않는 행동은 일일이 기록하지 않았던 흔적이 있다) 철선했으며, 감선은 열 다섯차례, 술을 마시지 않는 철주는 아홉차례 시행했다. 43.44p
철선, 감선, 각선(신하들의 당파 싸움을 다스리기 위해 시행한 국왕의 단식 투쟁) 등을 통해 밥상을 자제함으로써 왕의 강력한 뜻을 표명할 수도 있었으나 그로 인해 자신의 건강은 돌보는데 무리가 가기도 하였다. 태조에서 순종에 이르는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밥상을 통해 밥상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 그리고 왕의 식사 습관과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 건강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2010년 조선일보 논픽션 대상 수상작이라는 이 작품은 사실 읽으면서 전혀 지루함이 들지 않는 재미난 문학 작품 같은 책이었다. 조선왕조사를 밥상으로 풀어내어 읽는 이들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사실 호기심으로 일관된 일반인들에게 왕의 밥상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역사와 함께 풀어내니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왕의 백성 사랑에 더욱 애틋한 마음이 들게 하는 좋은 책이었던 것같다.
태종 스스로는 철선, 감선 등을 시행하면서 아들인 세종의 건강을 염려하여 유언으로 "주상은 본래 고기가 없으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 너희는 주상이 무리하게 철선, 감선하거든 반드시 간곡히 말려서 일찍 복선하도록 해라"를 신신당부하였다 한다.사실 태종의 유언과 세종의 식습관, 질병 등에 대한 이야기는 어렴풋이나마 어디선가 듣고 기억했던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알게 된 것이 이 책이었다.
하지만, 세종은 아버지만큼이나 철선, 감선을 감행하였고, 대신 하지 않는 날에는 폭식을 감행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 뚱뚱한 몸매를 갖고 있었다 한다. 그러기에 30의 젊은 나이에 당뇨에 걸려 장년이후에는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 되었다 한다. 글을 읽기 좋아하나 운동을 싫어하고 육식을 좋아하며 폭식을 즐겨했으니 그의 건강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세종의 밥상은 사실상 요즘의 현대인들의 밥상과도 닮아 있었다. 다이어트로 인한 절식, 또 그 이후의 육식을 하는 폭식 등. 또 운동량이 적으며 사무활동에 치중한 습관 등등.. 나 또한 세종의 예를 생각하여 건강을 되돌아볼 필요를 느꼈다.
대부분의 왕들이 밥상을 개인의 사사로운 입맛에 고정하지 않고 각 지역의 민생을 살피는 정치의 연장으로 생각했던 반면, 13대 명종은 어린 나이에 사슴 꼬리라는 희귀한 식재료를 좋아하고, 사치스러운 외삼촌과 대책없는 어머니때문에 망신을 겪었다 나와 있었다. 어머니가 직접 차려주진 않았겠지만, 아들의 밥상 안전여부를 확인하고 상에 올린 숙종의 밥상은 어머니 생전에는 건강이 지켜졌으나 말년에는 야참을 즐기는 식습관으로 건강을 해쳤다 하였다. 숙종이 세자 시절 우유를 마시다가 송아지가 우는 소리를 듣고 불쌍한 마음에 우유 먹기를 그만두웠다는 일화가 있을만큼 본래는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였음도 배울 수 있었다. 127p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커피를 즐긴 고종의 이야기도 눈여겨볼만했다. 고종은 커피를 마신 최초의 한국인으로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최고의 왕의 위치이기에 산해진미를 누릴수도 있는 위치였지만, 음식에서 사치스러움보다는 정성을 추구한 조선시대 왕의 밥상.
요리사가 전장의 장수처럼 대결하는 손님사이의 한판 승부같은 것은 조선 궁중음식에 없다.
먹는 사람이 즐겁게 먹고 건강이 좋아지기를. 식재료와 음식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마음도 생각하면서 마음까지 따스해지기를 바라는 정성이 깃들어 있다. 210p
왕은 서민, 대신보다 높은 등급으로 먹는다는 전통적인 예법을 지킴과 동시에 온 나라에서 올라온 식재료를 밥상에 펼쳐놓고 먹으면서
조선 천하에 군림하여 만백성의 생활을 살피는 군주의 미각과 시각을 가질 수 있다.
팔도에서 바친 식재료가 밥상에 펼쳐져 있으므로, 백성들의 일반적인 생활 사정을 알 뿐 아니라 각 지방별로도 고충을 살필 수 있었던 것이다.
230p
밥상 하나에서부터 민생을 살피고, 도리를 다하려 했던 왕의 노력이 엿보이는듯 하였다. 가장 원초적인 즐거움일 수 있는 먹는 것부터가 왕에게는 지극히 사사로울 수 없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밥상 하나부터 온 백성의 피땀으로 이뤄진 것을 알고, 백성을 생각하고자 했던 옛 통치자의 지혜와 도리, 그것에서 오늘날의 우리가 배울 점은 정말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