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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튼
케이트 모튼 지음, 문희경 옮김 / 지니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은 1919년부터 24년까지의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는 1999년 그레이스 할머니의 현재와 과거의 교차된 이야기로 진행되는 소설이었다.
영국의 리버튼 대저택. 그레이스는 14살 어린 나이에 리버튼 대저택에 하녀로 들어가게 되었다. 어머니가 있었던 곳, 하지만 지금은 어머니가 더이상 계실 수 없는 그곳으로 말이다. 엄마의 비밀을 모르고 들어간 그레이스는 그 곳에서 저택의 세 어린 남매를 만나게 되었다. 모두가 숨막히게 아름다운 남매들. 16난 데이비드, 14살 동갑내기 해너, 그리고 10살난 에멀린 . 외동으로 자란 그레이스는 저택의 하녀생활이 힘들었지만, 열심히 해내고 또래인 그들에게 호감을 갖고, 그들의 평생을 섬기는. 특히나 해너의 평생을 함께 하는 하녀이자 친구같은 존재가 되어간다.
규칙 셋, 놀이엔 반드시 세 사람만 참여할 수 있다. 60p
남매는 상상놀이를 하며 게임을 즐겼다. 아이들이 즐긴 이 비밀의 게임으로 말미암아 머나먼 날, 아니 중대한 그 날 바로 그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특히나 아름답고 똑똑했던 해너는 여느 여자애답지 않게 모험심이 강하고, 여성 참정권에 관심을 갖고, 귀족 아이와 다르게 평범한 여성처럼 사무직 일을 하고싶은 요즘 말로 아주 진취적인 그런 여성이었다. 그 당시 현실과는 맞지 않아 갑갑하게 살아야했던..
이 소설은 그레이스의 일대기 이야기이자, 그녀가 바라보는 해너, 에멀린, 그리고 로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쟁으로 많은 남자들이 죽고, 살아 온 남자들조차 상처를 갖고 돌아온다.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었기에,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여럿, 혹은 수십명 죽이면서 미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전쟁 신경증이라는 병명이 붙은 그런 증세를 보이며 예전과 다른 불안함, 악몽 등에 시달리게 되었다.
마커스 생각이 난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온 세상을 허우적거리며 돌아다니는 아이. 시들어버린 여름 꽃처럼 해너와 에멀린과 리버튼의 환영에 짓눌린 내 피붙이. 시간과 공간에서 달아난 아이. 보송보송한 아기였다가어느덧 장성해서 사랑하는 이를 잃고 마음이 텅 비어버린 아이.
그래서 아이에게 녹음 테이프 하나를 남기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그 아이에게는 비밀을, 오래된 비밀을, 긴 세월 숨겨온 비밀을 털어놓을 생각이다. 104p
1924년 리버튼 대저택 호숫가에서 젊은 시인 로비가 목숨을 끊었다. 그 자리에 목격자였던 해너와 에멀린은 그 일 이후로 멀어져 두 번 다시 이야기를 나누지 않게 되었다.
통속소설과 추리소설에 빠져있던 내게 해너는 소설 속 여주인공 같았다. 아름답고 똑똑하고 용감한 여주인공.
우리는 같은 지역에서 한 집에 살던 또래 여자아이엿다. 나는 해너에게서 결코 내 것일 수 없던 눈부신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167p
삼각형에서 한 점이 떨어져 나간 뒤에 나머지 두 점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갔지. 두 점을 잇던 끈이 팽팽하게 늘어져 한계에 다다른 거야. 나는 눈을 질끈 감았지만 끈은 끊어지지 않았어. 668p
하녀 그레이스, 그녀는 해너가 죽은 이후에 모든 진이 다 한 기분으로 한동안 거의 아무런 기운이 없이 살았다. 딸에게도 애정을 느끼지 못했던 그녀는 손자 마커스가 태어나자 그녀가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받들었던 해너 자매에게 느끼는 그런 기분 이상으로 또다른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하녀에서 평범한 주부로 그리고 다시 고고학자라는 길을 선택하게 되고, 그의 손자 마커스 또한 책을 좋아했던 할머니의 영향인지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다.
할머니가 젊은 영화 감독의 제의를 받아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며 마커스를 위해 녹음을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66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함 없이 정말 너무나 재미나게 읽히는 책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궁금했던 그레이스만이 간직했던 그 비밀과 해너와 에멀린 이야기는 거의 끝, 아니 아예 끝 부분에 나온다. 그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도 소설은 무척이나 재미있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결말까지 읽고 나니 가슴이 너무나 갑갑해왔다.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같은 분위기가 풍기고, 그 안에 미스터리까지 감춰진 로맨스 소설. 이 안에서 나는 사랑을 읽었고, 그리고 비극으로 끝나버린 가슴아픈 이야기를 읽었다. 줄리엣과 로미오가 서로의 사랑을 지속하지 못하고 결국 죽음으로 끝을 맺은 것처럼 이 소설 역시 편지의 오해로 인한 비극이었기에 더욱 애닯게 느껴졌다.
재미있는 소설들을 많이 읽었다 생각했는데, 이 소설은 올해 읽은 소설 중 손에 꼽을 소설이 될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