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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언니들 - 까탈스럽지만 사랑스럽고 제멋대로지만 매혹적이며 열정적이고도 우아한
레일라 드메 외 지음, 이소영 옮김 / 에이미팩토리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파리지엥하면 센 강 옆 멋있는 카페에 앉아 한잔의 커피를 즐기는 아름다운 아가씨의 모습이나, 긴 머플러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바구니 앞에는 종이봉투에 넣은 바게트를 넣고 달리는 연약해보이는 여인이 떠오른다. 사실 파리지엥에 대한 환상(?)은 나만 갖고 있던 것이 아니었나보다. 이 책 빠리언니들을 읽어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언니로 번역을 하면서 웬지 고상하게 자리하고픈 그들의 위치가 평범하게 느껴지는.. 사실상 과격하고 치열한 면이 있는 그네들의 일상에 딱 맞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누가 붙였는지 정말 제목 잘 붙였다라는 생각.) 미국여자들조차 파리에서 왔다는 여자들의 소개를 들으면 부럽다는 눈이 된다고 하니 말이다.
뉴욕에서 우리 아이들이 제일 먼저 배운 말이 '택시'였다면 파리에서는 '개똥'이었다. 한번은 우리 '다 큰 애'가 볼일은 급한데 공중화장실이 보이지 않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괜찮아요. 길에다 쌀 거예요." 이 말에 깜짝 놀란 우리가 절대로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하자 아이는 "아니, 말도 안돼요. 멍멍이들은 되는데 왜 난 안된단 말이에요?" 라고 따지고 들었다. 여기서는 강아지 '메도르'가 꼬마 파리지앵보다 더 많은 특권을 누린다. 54p
파리에 가보지 않은 나는 미처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다녀온 이들은 꽤 많이들 수긍하는 내용이리라. 우리나라에서도 겪지 않은 개똥 천국이라..
그 곳이 내가 너무나도 가고 싶어하는 매력적인 도시 파리란 말인가? 읽을수록 머릿속의 환상은 처참히 깨어지기 시작했지만, 어쩐지 고고하게 느껴지던 빠리지앵들의 실생활이 낱낱이 공개되는 듯한 느낌에 우리나라 케이블 티브이 리얼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서야 비로소 친근감이 드는 듯도 하였다.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매력적인 도시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이나 다름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곳은 걸레가 완전히 분해될때까지 방치하고 개들이 인도에 똥을 눠도 내버려두는 이상한 미술관이기도 하다. 57p
"미안해. 점심 약속 취소해야겠어. 엄-청나게 급한 일이 생겼거든. 이자벨 마랑 프레스 세일이 시작된 거 있지."
71.72p
아주 세련된 분위기의 서른 두살의 마틸드를 일년에 두번 프레스 세일 기간에는 넝마주이 아마존 여전사로 돌변시키는 파리. 패션의 메카라 할 수 있는 파리에 살고 있는 그녀들은 일년에 한 두번씩 있는 프레스 세일을 적절히 활용하여, (아니 심지어 사이즈 맞지 않는 신발과 옷까지도 산다. 왜? 싸니까. 왜? 파리지앵이니까.) 저렴한 쇼핑을 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명품 세일이 진행되는 날은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고 한다. 적은 돈으로 명품이나 예쁜 옷을 사기 위한 파리지앵들의 엄청난 사투, 마치 고고히 헤엄치는 백조의 평온한 모습 아래에는 수면 아래로 쉴새 없이 발을 젓는 생존본능이 있기에 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했다.
"아빠 뭐해요?" 자전거를 수리하고 있는 아빠한테 두 살 반 된 딸아이가 물었다. 뉴욕의 아빠라면 딸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자전거를 이루는 각 부분의 이름을 노래 부르듯이 읊어줄 것이다. 하지만, 전형적인 파리지앵인 내 남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보면 몰라? 당근 껍질 깎고 있잖아." 194p
두살 반 된 어린 아이에게도 적나라하게 적용되는 파리지앵들의 유머와 빈정거림, 갓 두돌 된 아들을 둔 엄마로써 정말 폭소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아니, 어떻게 그 어린 아기에게 그런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하지만, 그게 통하는 게 파리이고, 또 그에 적응해야하는게 파리지앵들이라니.. 잠깐 관광갔다가 이해하기 힘들다고 투덜거리기 보다 그들의 내면부터 속속들이 알고 다시 바라보면 더 재미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다.
깍쟁이도 이런 깍쟁이들이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서울깍쟁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의 서울 깍쟁이는 시크한 파리지앵들에 비하면 너무나 얌전한 축에 속하는게 아닐까 싶다.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길거리에서도 체면 불구하고 큰 소리로 불만을 토로하는 무서운 파리지앵에서부터, 쇼핑땐 치열한 여전사가 되며, 합리적인 가격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아이를 키울때도 남다르게 키운다. 빠리언니들의 본 모습은 더욱 무궁무진하다. 초컬릿 포장같은 붉은 표지로 우리를 압도하며 시작된 빠리언니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의 우아한 외양에 감춰진 실제적인 성격을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는 듯 했다.
빠리 언니들이여. 안녕~
내가 빠리에 갈때까지 거기 있어줘요. 물론 나는 빠리언니들의 독설을 감당하기는 힘들어요. 하지만,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어도 무시무시하게 느끼기 보다, 아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구나 하고 인정할께요. 동경하던 빠리에 대한 아주 색다른 책을 만나서 독특한 체험을 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