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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여행 - 다르게 시작하고픈 욕망
한지은 지음 / 청어람장서가(장서가) / 2010년 8월
어제와 똑같은 하루였는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만 어색해서 어쩔줄 모르고 있었다.
아무런 준비없이 다짜고짜 서른이 주는 의미에만 매달려 있던 내가 아무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건 당연한 일이었다. 왜 그렇게 그 나이에 집착했던 걸까. 무작정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특별한 서른을 맞이하겠다며 떠나온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
...아무런 변화도 없다고 투덜댔던 서른의 시작이
사실은 엄청난 변화의 시작이었던 것을 지금은 알고 있다.
87.88p
스무살이 되었을때는 설레임이 있었을 지언정 두려움은 있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나 가장 아름다울 나이인 꽃다운 이십대가 지나고 서른이 되는 시기는 자의 반 타의반의 두려움과 걱정을 갖게 되는 시기였다. 아니,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랬다. 결혼도 않고 직장에서도 아직 특별한 경력없이 이렇게 서른이 되어버리면 어떡하나. 서른이 되면 대대적인 지각변동이라도 일어날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29세에 그렇게 부단히, 나와 함께 마지막 20대를 보내는 친구들과 함께 이런 저런 여행을 다녔다. 물론 직장을 포기할 용기가 없어 짧은 휴가를 내어 경주에도 가보고, 10월에는 친구와 함께 큰 맘 먹고 호주에도 다녀왔다. 최대한 길게 휴가를 만든 것이 일주일이 조금 넘는 일정이었던 것 같다.
여기 나와 같이 고민을 하고, 또 나와 달리 결정을 한 여인의 30대 진입 고군 분투 여행기가 있다. 바로 서른 여행. 노래가사처럼 이별여행은 아니지만, 직장에서 우연히 서른 즈음에라는 유행가 가사가 귀에 꽂히는 바람에 불현듯 그녀의 나이를 실감하고, 회사를 과감히 그만두고 (사표낸지 거의 일년 만에.ㅠ.ㅠ 너무나 바빴기에..) 250일간의 동남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용기있는 그녀 레인.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 그녀가 순수하게 모은 돈만 그러모아 (보험까지 해약해가며) 장기여행을 가려니 경비를 아끼고 또 아낄수밖에 없었다. 인도를 거쳐, 네팔, 태국, 캄보디아 그리고 보라카이.
그녀의 진솔한 인생 이야기만큼이나 이어지는 250일간의 여행기 또한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나라면 이렇게 혼자 불현듯. 떠날 수 있었을까? 절대로 못한다. 나같이 주저앉은 사람들을 위해 그녀는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을 잊지 않는다.
바쁘고 나름 잘 나가는 여행기자가 여행이 하고 싶다며 사표를 내었을때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취직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이드는 일이었다. 길에서 얻은 에너지를 바탕으로 그녀는 이대 앞에 레인트리라는 여행을 테마로하는 카페를 열었다.
오늘도 레인트리 언니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지도를 펴면 내 여행은 그들의 여행이 되고, 그들의 여행은 나의 여행이 된다. 레인트리에 앉아 있는 동안 여행은 일상이 된다. 아니, 일상이 여행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매일 다른 잠자리에서 새로운 꿈을 꾸며 지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리면 여행은 '떠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이제 눈만 감으면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운 것들이 스쳐지나가고 보고 싶은 얼굴들이 오버랩되고 그 위에 길이 펼쳐지면 내 여행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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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장을 보고 열두시간씩 청소와 요리 등 가게 보기를 하는 삶이 힘들었을텐데, 그녀는 그 생활이 즐겁다 한다. 힘들면서도 자신의 에너지가 가득찬 그 곳에서 활기를 얻는 모습이었다. 오픈한지 오년 정도 된 카페라 한번도 가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 시간동안 나는 서울이 아닌 지방에만 있었기에..
책을 읽고 나니 처음 알게 된 그녀와 가까워진 느낌.
그렇게 레인트리 언니는 사람들 곁에 다가오고 있었던 것 같다.
눈이 시릴만큼 구름 한점 없이 맑은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을 따라오는 향긋한 공기와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식혀주는 찬 바람이 감동적인 날이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마감과의 전쟁을 치르느라 정신없이 바빴을텐데 이렇게 한가롭게 풍요로운 자연을 느끼며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 어색하기도 하고, 사치를 하는 양 느껴져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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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혼자서 사기꾼이 넘쳐나는 인도와 연약한 여자 하나는 쉽게 패대기치는 무서운 나라 베트남 등을 다니며 여행한다는건 그녀의 일화등을 읽어도 절대적으로 위험한 일 같았다. 태국은 그래도 관광 인프라가 잘된 나라라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덜 고생스러워보였는데 인도에서의 그녀의 고군분투기는 읽는 내내 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아, 이 고생스러움. 어찌할 것인가. 온천탕 안에서 머리감는 긴머리 여인은 어찌할 것이고, 100루피가 100달러라며 우겨대는 여관 주인은 어쩌란 말인가.
그래도 당찬 그녀.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지혜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저 평온한 일상에서도 행복감을 갖고, 만족할 줄 아는 겸손함을 배운다.
이 책 읽는 내내 재미있었어요. 저 이 카페 언니 알아요 등등의 이야기를 들었었다. 읽기도 전에, 만나보기도 전에 그녀에 대한 관심을 먼저 들으니 나 또한 욕심나는 이야기기도 했다.
서른이 주는 의미.
이미 중반으로 치달아버린 지금 되돌아보면..
오히려 29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했던 30임을 깨달으며.. 지금의 29세들에게 더이상 불안해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하지만, 나의 이런 미약한 조언보다 29세에 과감히 인생을 개혁한 멋진 여성의 이야기가 더 실질적으로 와닿을 수도 있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