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 길 내는 여자 서명숙의 올레 스피릿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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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주 할망들은 서둘러 달려오다가 넘어지는 손주들에게 말하곤 했다.

"재기재기 와리지 말앙 꼬닥꼬닥 걸으라게(빨리빨리 서둘지 말고 천천히 걸어라.)'

-들어가며



제주를 여행한지 여러번, 여러해가 되어가지만 올레길에 발을 올려본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최근의 나의 여행은 임신했을때의 태교 여행, 그리고 아기가 6개월, 16개월 정도 되었을때의 여행이었던지라 되도록 쉬는 여행을 하자는 취지로 렌터카를 빌려 그저 숙소에서 쉬고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고 오는 여행에 그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해동안 제주도를 오가면서 올레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실제로도 제주도에 가서도 올레에 대한 플랭카드가 나부끼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가장 올레에 대해 많이 접하고, 변화를 느낀 것은 바로 책을 통해서였다. 올해 들어 내가 읽은 제주 올레책만 해도 이 책 이전에도 벌써 세권에 달하고, 이 책 이후에 읽을 책까지 하면 내가 가진 제주 올레책만 5권에 이른다. 모두 제주 올레만 다룬 책으로, 전국 걷기 여행이나 제주도 100배 즐기기에 실린 제주 올레 코스편을 고려한다면 소장한 책은 몇권 더 늘어가는 셈이 된다.



가보지도 못하고 어느 덧 일상이 되어버린듯 귀에 익은 올레.

책을 통해 여러 코스 소개를 받고, 멋진 코스 설명과 코스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하지만, 정작 올레의 핵심 이야기는 빗겨나간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던차에 만나게 된 이 책.

바로 올레길을 최초로 기획하고, 이 모든 붐의 선구자격인 놀라운 여성 제주 올레 이사장 서명숙님의 이야기인 것이었다. 비록 그분이 낸 제주 올레책은 이전에도 제주 걷기여행이라는 이름으로 한번 더 있었다 했지만, 내가 읽은 그녀의 제주 올레 책은 이번편이 처음이었다.





"와, 지중해는 왜 가니?" "제주도가 이렇게 아름다웠어?" 서로 과격하게 감탄사를 주고 받았다.

서귀포시에서 몇년전 큰 돈을 들여 조성한 돔베낭길에서 시작된 탄성은,

제주올레 첫 탐사대원 수봉이가 삽과 곡괭이로만 만든 '수봉로'와 공무해안에서는

아예 신음소리로 바뀌었다.

"이 길이 훨씬 마음에 드는데요. 이게 진짜 올레길인가보죠?"



현대카드 정태영사장과의 올레길 27p









돔베낭길, 수봉로 .. 마치 키치조지, 다이칸야마 등의 도쿄 지명이 가보지도 않고 내 머릿속에 입력된 것처럼 (역시나 도쿄 여행준비를 하다말고 포기한적이 있어서 치밀하게 준비했던 기억으로 머릿속에 지명이 입력되어 버린 것이다.)제주 올레의 여러 지명들도 내 머릿속에 여러 군데 입력이 되어 있었다. 여러 책을 읽다보니 비슷한 지명 이야기들이 나오면, 다녀온 곳인듯 반갑기까지 하였다. 제주도에서 올레를 만나 감탄하고 흥에겨워 하는 무릇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져있는 이 책.


이제 그만 자요! 우리 근무시간이 넘 길어요. 눈 뜨면 출근, 눈 감으면 퇴근이란 말예요." 55p



인덕이 많은 것인지 안정되고 보장된 직장을 버리고, 제주에 내려와 그녀 곁에 머무는 일꾼들, 그 중심에 있는 세 여성들과 같이 합숙하며 매일 제주 올레에 대한이야기로 꽃을 피우자 종이인형이라는 별명을 지닌 막내 민정씨가 한말이었다.

그 어떤 직장에서 정말 눈떠 있는 모든 시간을 직장을 위해 투자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즐거워 하고 기꺼이 하는 일이기에 가능하다는. 그래서 대기업의 서포트도 거부하고, 정부의 얼마 안되는 찬조금과 이사장의 책 인세 등에 의존한 적은 돈으로 운영될지언정 소중하고 따뜻한 제주 올레 만들기를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그런 따뜻한 이야기들이 채워져 있었다.


믿어지십니까? 저희 부자가 지난 일주일 동안 나눈 이야기가

십칠년동안 한집에서 살면서 나눈 이야기보다 더 많다는거. 129p



이제 갓 두돌을 넘긴 우리 아기, 우리 아기도 사춘기가 될때까지 우리와 한 이야기가 이토로 적다면 어떡하지? 제주 올레꾼의 어느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아기와 더욱 많은 이야기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부모자식사이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권태기가 올 수 있는 부부사이에도 올레는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그저 덤덤하게 올레길을 걷다가 나누기 시작한 대화가 더욱 부부 사이를 단단하게 엮어주고, 하는 일까지 잘되게 했다는 횟집 부부의 사연서부터, 올레길 혼인지에서 최초로 결혼한 부부의 이야기까지.. 올레에서는 정말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줄줄이 흘러나온다.



"비싼 비행기 타고 제주까지 걸으러 오겠어?" 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진짜 미친 짓을 벌이는 건 아닐까. 회의와 함께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던 차에

'사람이 사람답게 걸을 수 있는 길'을 열망하는 이가 있기에 그이가 시대를 꿰뚫는 혜안을 가진 대작가이기에 (조정래 선생님) 큰 위안을 느꼈다.

선생의 칼럼은 전의를 상실하고 비틀거리는 내게 흔들어준 응원의 깃발이었다.

161p



올레가 뭔지도 잘 모르고 있던 내가, 노란 색, 파란색 화살표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감을 잡아갈 무렵, 올레에 대한 모든 것을 확실히 정리해주는 듯한 올레 총사전 격인 이 책을 읽으며 없던 길을 내고, 잊혀진 길을 찾아 무보수로 헤멘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침체되었던 제주도 서귀포를 더욱 살려놓았던 고향의 애국자가 된 서명숙님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도시에서 각박하게 살아온 당신, 인생 무대에서 잠시 공연을 쉬어보는 건 어떠신지. 놀멍 쉬멍 걸으멍. 200p



너무 많은 정보가 오히려 당신에게 독이 되거나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타인의 시선' 타인의 취향' 이기 때문이다.선입견을 갖지 말고, 당신의 느낌과 당신의 감각을 따르기를. 그날 하늘이 당신에게 허락한 날씨를 최대한 즐기기를.



결론은 이것저것 자료만 뒤적이거나 모든 동선을 치밀하게 계산한 뒤에 떠나려고 하지 말라는 것. 최소한의 생존장비와 설레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곳이 올레길이라는 것. 떠난 자만이 목적지에 이를 수 있다는 걸 명심하시길. 207p



여전히 지금도 책을 찾아 정보를 얻고 있는 내게 일침을 가하는 듯한 말이었다. 사실 나도 올레길에 발부터 척하니 올려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아직 어린 아기와 올레길을 횡단한다는게 사실 아직 두렵기는 하다. 하지만 책에 나온 것처럼 초등학교 입학전의 아이도 우비를 입고 할아버지 손을 붙잡고 올레길을 아장아장 걷고 있듯이, 등산을 사랑하고, 걷는 것을 좋아하시는 부모님과 함께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꼭 올레길에 발을 올려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숨어있는 길, 잊혀진 길을 찾아내면 대형 특종을 건진 것처럼 엔도르핀이 팍팍 솟는걸 어쩌랴. 그 맛에 나는 토목공화국 토목 특별자치도에서 오늘도 길쟁이로 살아간다. 252p




올레꾼들은 말한다.

길에서 행복했노라고, 누군가 자신을 위로해주는 것 같았노라고,

몸과 마음의 상처가 치유 받은 느낌이라고.



나는 대답한다.

자연속에 깃든 여성적인 에너지가

당신의 아픔을, 고통을, 서러움을, 고단함을, 외로움을

위로하고 토닥거리고 껴안아주었기에 절로 몸과 마음이 나았을 거라고.



285p







읽기만 해도 그 아름다움이 절로 전해지는 듯한 올레에 대한 그리움.

사실 올레길에 발을 올려놓고 자연이 주는 그 푸근함을 제대로 만끽하기 전까지는 내가 상상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그저 환영에 지나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아주 잘 찍어놓은 사진과 글쟁이들이 멋지게 써놓은 글들로 잔뜩 고무받고 있는 지금이지만..



올레를 진정 사랑하는 최고의 올레꾼 서명숙 이사장님의 글을 읽고 나니..

더욱 올레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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