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도 아프다
연송이 지음 / 민트북(좋은인상)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신은 모든 곳에 함께할 수 없어서 엄마를 보냈다고 했다.

엄마 하면 누구나 고결하고 성스러운 존재로 생각하면서 왜 아줌마는 몰상식하고 힘만 센 염치없는 여자로 생각하는 걸까. 따지고 보면 엄마는 '아이를 낳은 아줌마'이다. 엄마와 아줌마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선호하는 면이 다를 뿐이다.

10.11p

 



 

며칠전 다녀온 여행에 앞서 전자항공권을 끊었더니 내 이름 뒤에 ms가 붙어 있었다. 미즈의 약자겠지만, 신랑이 그걸 보고 한마디를 한다. "색시 이름 뒤에 ms가 붙대? 모빌 슈츠의 약자인가? 핫핫.." 대충 못알아듣고 넘어가면 좋았으련만, 사실 그러면 신랑이 재미없었겠지..일본 만화를 좋아하는 신랑 만큼이나 나도 대충 어깨너머로 보아온게 있어서 모빌슈츠가 전투용 로봇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웃어넘기긴 해도 어쩐지 씁쓸해지는.. 자기는 웃자고 한 이야기라는데 같이 웃어주긴 해도 속은 쓰렸다.

 

세상에 만능 아줌마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남자처럼 똑같이 공부하고, 똑같이 직장에 나가 일을 하다가 어느날 결혼하고 나니 아이 엄마가 되어 있고, 살림에 육아에 때로는 직장까지 힘든 일을 도맡아 해야하는게 아줌마다. 책 제목을 보았을때는 그래, 어느 아줌마의 하소연, 나도 아파 아프다구..이런 내용일까 싶었다.

 

하지만, 친한 이웃인 님의 리뷰를 먼저 읽고 나니 이 책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정말 오랜만에 내 속에 들어있는 울컥한 기분을 토해낼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읽어내려간책..

 

정말 솔직하게 아줌마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잘나가는 영상 번역작가이자 모 포탈에서 의사마누라라는 닉네임으로 인기리에 활동하기도 하였고, 현재 대치동 엄마로써 두아이의 뒷바라지에 고군분투하느라 16년 결혼 생활에 지쳐가고 있는 아줌마의 솔직한 이야기. 그 이야기가 첫 남편과의 만남에서부터 이어져 너무나 재미나게 설명이 되어 있었다. 누구더러 웃으라고, 재미있으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닌 정말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더욱 호감이 갔다.

 

장장 60여차례나 선을 본 남편의 12개의 조건이 적힌 간택지에 11개나 부합하는 여성으로 당당히 간택이 된, 그리하여 아줌마가 된 나. 그 아줌마 신랑의 항문구조까지 알게 했다는 리뷰글을 보고 무슨 내용인가 (본의아니게 )궁금해지고 말았는데, 너무나 외계인같고 여자 같다는 남편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정말 아줌마의 솔직함에 웃음부터 났다. 나라면 이렇게 솔직해질 수 있을까? 아마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줌마~ 정말 멋지고 당당하다. 남편이 붙여준 쌈닭이라는 별명의 동기가 된 언쟁서부터 몰래 숨겨두고 먹는 먹거리의 고백까지.. 화끈한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정말 쌓여있는 앙금이 싸그리 내려가는것 같다.

 



 

아, 나름 주위 친구들이나 사람들에게는 "나 행복해요. 결혼해서 잘 살고 있어요. 늬들도 결혼해보세요." 라고 결혼 홍보대사처럼 활동했던 나조차도 결혼 5년차 (12월 결혼후 직장 문제로 1월부터 살게 되었으니 실상은 4년차)에 이르다보니 슬금슬금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나보다. 이 책을 읽으며 아, 난 정말 행복하거든요? 하고 말할 아줌마가 몇이나 있을까 싶었다. 어느 대목에서는 맞아 맞아, 정말 그래 하며 무릎을 치기도 할테고, 어느 대목에서는 같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올 초 신랑을 따라 내려간 학회에서 장 트러블이 심하게 생겨 너무너무 아팠던 때에, 신랑이 미처 배려해주지 못하고 당연하다는 듯 나에게 아기를 안고 후딱 호텔로 들어가라고 말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얼마나 서운하게 느껴지는지 모를 것이다. 또, 계속 화장실만 들락거리며 아파하는 내 배위에 아기가 올라타서 (거의 내 배위에 타는 일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 연신 발을 구르며 재미있다고 호피티 타듯 뛰는 아기의 진동 탓에 나중에는 정말 대성통곡하고 말았던 걸 생각하면 좀 진상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신랑의 배려가 아쉬운 순간이기는 했다.

 

내가 좋아 떠나자고 하는 여행인지라 모든 준비에서부터 가서 대처 상황까지 모든 것을 내가 떠안아야 한다는 것도 항상 여행 다닐때마다의 스트레스였다. 같이 즐기고, 같이 공유하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얼굴에 "나 힘들어요. 나 가기 싫어요. 재미없어요." 써있는 신랑을 보면 짜증이 솟구치는걸 어쩔수가 없었나보다. 아마 그런 마음이 쌓여있다가 아줌마가 아프다를 읽으니 정말 나도 모르게 같이 울컥울컥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많이 쌓인 탓에 쏟아낼 응어리가 많았던 그 이야기들을 읽으며 같이 공감하고, 너무나 재미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그 시절 외국인이 운영하던 사립 유치원을 나왔고 초등학교 시절 서울 어린이대공원 건립 때 고 육영수 여사와 함께 첫 삽을 뜬 대단한 어린이였던 것이다. 그런 남편한테 아이들이 성에 찰 리 없었다. 그때부터 우리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85p

 



 

사실 신랑에게도 이 이야기를 들려주니, 연예인이나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평범한 사람 이야기라 그런지 더 실감나게 느끼는 것 같았다. 게다가 사실 거의 지방사람들에게는 신화처럼 전해지는 대치동 엄마들의 애환이라거나 말로만 듣던 이야기가 기정 사실화되는 대목에서는 아이를 둔 부모로써 사실 걱정도 많이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반감이 생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치동 이야기는 다른 어디서 들었던 것보다 더욱 생생했던 경험담이었다.

 

로또만 돼봐라. 내가 너하고 사나

기도하는 심정으로 일주일을 기다린다. 남편에 대한 소심한 복수를 할 수 잇기에 나는 오늘도 나의 미래가 달려있는 편의점으로 발길을 옮긴다. 74p

 

로또를 매주 사는 아줌마의 귀여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건 내 안에도 그런 마음이 조금은 있었다는게 아니었을까 싶다. 45이라는 나이에도 여전히 귀여움을 간직하고 계신 아줌마, 연송이님의 글을 너무나도 재미나게 읽었다.

 

아쉬운 점은 표지나 제목이 이 책의 재미를 제대로 살려주지 못한 것 같아 독자들이 서점에서보고 고를때 이 좋은 책을 간과해버릴수 있을 것 같아 안타까웠다는 점이다. 읽어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그런 책인데 말이다~!!!읽으면서 아, 이 책은 정말 친구들과도 두고두고 같이 이야기해볼 우리의 미래의 모습이 될 수도 있고, 또 지금의 모습에서도 발견이 될 수 있는 같이 공감하는 아줌마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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