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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승에서 가장 이루고 싶은 소원이 무엇이오, 의사선생?"
"꼭 한번 만이라도 만나고 싶은 여자가 있습니다."
"내게는 단 하나뿐인 여자죠.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했던 단 한명의 여자."11p
기욤뮈소의 글 속에는 언제나 평생을 통틀어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연인이 (부부가) 있다. 그 사랑이 너무나 숭고하고 아름다워서 읽는 사람이 다 가슴이 시릴 정도다. 아쉬운 것은 그 엄청나게 빛나는 사랑에 걸림돌이 있다는 것. 삶과 죽음 혹은 그에 버금가는 문제로 두 사람의 사이가 멀어지곤 한다.
현실과 환상 세계를 오가며 사랑을 갈망하는 이야기. 책 한권의 길이가 너무나 짧게 느껴지는 기욤뮈소의 책은 정말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60세의 의사 엘리엇은 캄보디아 구호활동을 나섰다가 귀환해야할 시점에서 세살도 안된 어린 아기의 입술 기형(윗입술이 세로로 갈라진 기형으로 평생 유동식만 먹어야하고 말도 못할)을 보고, 귀향을 늦추고 아기를 수술해주기로 결심한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아이의 얼굴이 정상적으로 돌아오자, 아이의 할아버지였던 마을의 촌장이 다가와 아주 묘한 말을 걸었다.
30년전에 죽은.. 그렇지만, 평생을 잊지 못하는 사랑 일리나.
그녀를 보고 싶다는 마음 속 비밀을 털어놓았던 엘리엇. 그러자 노인은 알약 열개가 든 병을 내주었다.
알약을 먹고 잠이 들자, 엘리엇은 30년 전의 자기 자신 앞에 서게 되었다.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사실 앞에 두 엘리엇 모두 놀라게 된다. 과거로 돌아간 엘리엇은 현재의 물건을 가져갈 수도 있고, 과거의 사람과 말을 할 수도 있다. 즉, 과거에 영향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까지 두 엘리엇 모두 신중을 기하고나서야 비로소 사실로 인정하게 되었다.
현재의 엘리엇은 성공한 외과의사로 일리나가 죽고 난 후 10년이 지나 어느 여의사와의 하룻밤을 통해 딸 앤지를 얻게 되었다. 여자 의사가 자녀양육을 포기해서, 혼자서 앤지를 캐워온 엘리엇은 삶의 방향을 잃고 살아오다가 앤지를 통해 비로소 또 하나의 삶을 얻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평생을 담배를 피워오다보니 그는 현재 폐암 말기. 더이상 손쓸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다시 과거의 엘리엇. 그는 수의사인 사랑하는 연인 일리나와 각자의 일을 위해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진 삶을 선택해 살고 있다. 그리고 가끔 만나는 그 꿀맛같은 행복에 아쉬워하지만, 결혼해 같이 살고 아이를 낳는 일은 두렵다. 병원에서 아픈 아이를 보고 오열하는 부모들을 보며 더욱 그 생각이 굳어지고, 그 밑바탕에는 가정 폭력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그는 사랑하는 일리나와의 아기도 생각하기 힘들었다. 자신 가정의 상처가 있었기에..
과거에 영향을 줄 수 있게 된 엘리엇은 나비효과의 파장을 생각하니 과거의 일을 되돌리기가 무서워졌다. 게다가 너무나 사랑하는 일리나를 구하고 같이 살고 싶었지만, 그런 상황이 되면 타인과의 사이에서 난 딸 앤지는 미래에 없는 사람이 된다.
일리나를 살리려면 앤지를 포기해야만했다. 절대로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175p
현재의 엘리엇이 고민하는 사이, 과거의 엘리엇은 보지도 않은 딸 앤지에 대한 애정이 없기에 현재의 엘리엇을 선택한다. 다른 아이를 낳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다른 아이? 자네는 딸을 낳아보지 않아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나에게 다른 아이는 앤지와 같을 수 없어. 나는 오로지 앤지만을 원한다네. 그 아이를 잃고 싶지 않아! 앤지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네." 190p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아들을 낳기 전에는 말이다.
아이란 또 낳을 수 있지만, 부모, 그리고 남편은 단 한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니, 또다른 아이란 있을 수 없다. 지금의 나에게는 안방에서 예쁘게 잠들어있는 우리 아들만이 진정한 의미가 되는 것이다.
오로지 앤지만을 원한다는 엘리엇의 절규를 나는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너무나 사랑하는 두 여인 사이에서 고뇌해야하는 엘리엇의 고민이 너무나 가슴시리게 아팠다.
누군가가 나에게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알약을 준다면..?
과거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하고 묻는 다면..?
책을 읽으며 잠깐 아주 잠깐 고민해봤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와 남편과의 행복이 있으니, 예전에 생각했던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렇게 해서 나의 현재가 바뀐다면.. 지금의 아이를 만날 수가 없다면.. 이라고 가정해보기도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지금 이대로 행복하게 살겠어요. -러브캣
알약 열 알의 과거여행이 가져다준 현재의 놀라운 변화.
일리나와 앤지,30살의 엘리엇과 60살의 엘리엇, 그리고 엘리엇과 일리나의 절친한 친구였던 매트 그들이 그물처럼 촘촘히 엮여 있는 시공간의 실타래를 기욤뮈소님이 어떻게 놀랍게 풀어내는 지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만이 얻게 되는 해답일것이다.